20260224(D+49)_인도/마두라이
어젯밤 글을 쓰면서 불신의 장벽을 해체해 보겠노라 다짐했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불신의 장벽은 더 높고 두터워졌으며 정말 이 장벽을 허물거나 넘을 수 있는지 강한 의심을 품게 되었다. 길었던 지난밤의 이야기를 해보자.
어제부로 첸나이의 일정을 마친 우리는 마두라이로 이동하게 되어있었다. 이동 방법은 슬리핑 버스, 픽업 시간은 새벽 1시 10분이었다. 인도의 시간 개념에 대한 악명 높은 소문을 수도 없이 들었기에 나는 0시 40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해 30분을 기다리겠다 마음먹었다. 약속 장소에서 대기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수십 마리의 모기가 나와 아들의 주위를 돌며 호시탐탐 피를 빨 기회를 엿보는데 모기 기피제를 뿌려봐도 소용이 없었다. 몇 마리는 죽이고 몇 마리는 쳐냈음에도 엄청난 포위망을 상처 하나 없이 뚫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몇 군데가 부어올랐지만 그 정도야 견딜만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시 10분이 되었다.
그들이 정시에 등장하리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모기와의 싸움이 아니라 심리적 압박과의 전투였다. 결국 30분을 더 기다린 나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내가 소유한 온라인 티켓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 달라 요청했다. 새벽 1시 반에 지나가는 행인을 만난 건 이 엄청난 불운의 밤에 그나마 행운이었다. 그는 어렵사리 버스 회사와 통화가 되었다. 나는 그래도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를 기대했다. 끝이 있는 기다림은 언제든지 견딜만하니까.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돌아온 답은 그 버스는 이미 떠났고 마두라이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지만 다음 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버스회사와 통화를 하던 은인은 코얌베두라는 생소한 터미널을 일러주며 막차가 2시 20분에 있으니 빨리 가면 탈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때 시각이 1시 50분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 드라이버를 소개해 줬는데 그 드라이버가 그곳에 왜 대기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따져 물을 상황이 아니었다. 분명한 건 우리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고 시간 내에 빨리 그가 얘기한 터미널에 가서 막차라도 올라타야 마두라이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올라탄 차의 차주는 분명 전문 택시 기사는 아니었다. 그의 차에는 그 흔한 내비게이션 거치대 하나 없었고 한 손에 핸드폰을 쥔 채로 운전을 시작했다. 다음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했다. 내가 들은 막차 시각은 2시 20분, 남은 시간은 30분이었지만 곁눈으로 흘깃 본 구글맵의 이동 시간은 1시간 반이었다. 3시도 빠듯해 보였다. 한 마디로 타지도 못할 버스를 위해 택시비를 지불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하지만 기사 아저씨는 자신을 믿으라며 '노 쁘라블롬'을 연발했다. 나는 '매우 쁘라블롬'인데 자꾸 '노 쁘라블롬'을 외쳐대니 그건 그것대로 약이 올랐지만 이 모든 원인이 그에게 있지 않으며 지금 기댈 곳이라고는 기사 아저씨 밖에 없어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그는 든든한 기댈 곳이 아니었다. 내비게이션 보는 것에 익숙지 않은지 같은 곳을 뱅뱅 돌았고 시곗바늘도 뱅뱅 돌았다. 결국 목적지를 한참 앞둔 시점에 2시 20분은 이미 지나버렸다. 나는 그 시점에 다시 버스를 탈 수 있냐 물었지만 그는 무슨 생각인지 또 '노 쁘라블롬'을 뱉어냈다. 그때부터는 그냥 자포자기한 것 같다. '될 대로 되라지. 안되면 그냥 버스 터미널에서 노숙하고 내일 아침 가면 되는 거 아냐?' 아들이 있는 것이 부담이었지만 그도 이제 이 정도는 버텨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목적한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 55분이었다.
터미널에는 한 분이 나와계셨는데 놀랍게도 마두라이행 버스가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다. 우리를 태우고 온 기사 아저씨는 운전 내내 누군가와 통화를 했는데 혹시 버스를 출발시키지 말고 잡아 놓으라 했던 것일까? 그게 가능한 일인가? 머릿속에는 오만 생각이 지나갔지만 정답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우리는 다시 이용료를 지불하고 버스에 탑승했고 우리가 타자마자 버스는 마두라이를 향해 떠났다. 내가 버스에 오르자마자 마주한 녀석은 내 자리에 먼저 타고 있던 작은 바퀴벌레였는데 그 녀석도 운이 없었던 모양이다. 분노한 한국인 여행자의 검지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끓어오르는 화보다 피곤함이 앞섰는지 버스가 떠나자마자 잠들었다.
오늘은 대단한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다. 소화할 기분도 아니었고 그럴 체력도 없었다. 마두라이의 유명한 곳을 스치듯이 구경했다. 일찍 들어와서 낡았지만 시원한 방에서 쉬려는데 들어와 보니 정전이다. 숙소 직원에게 물으니 로비를 가리키며 우리도 정전인데 왜 호들갑이냐며 기다리라는 반응이다. 15분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면서. 믿지도 않았지만 당연히 15분 만에 해결되지 않았다. 어둡고 더운 방에서 1시간을 보낸 다음에야 아들과 나는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 회사에서 한 선배의 남편분이 인도 사람들과 일을 하는데 그렇게 '노 쁘라블롬'을 외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노 쁘라블롬'은 무슨, '또 쁘라블롬'이다. '또, 또, 또 쁘라블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