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좋은 사람이 있음에

20260225(D+50)_인도/칸야쿠마리

by 박대희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장소로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 대혼란에 빠졌던 것이 불과 만 하루 흘렀을까. 나는 다시 같은 일을 겪었다. 오늘은 아침 6시 50분 버스였고 한 번 넋이 나간 우리는 40분이나 일찍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현지 사람들에게 표를 보여주며 확인을 시작했다. 장소가 맞는지, 시간이 맞는지. 당연한 것을 확인하는 내 모습도 우스웠지만 그만큼 나는 이 나라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고 그럼에도 목표한 곳에 가야 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돌아오는 모든 답은 일치했다. 우리는 표에 쓰인 장소에 서서 약속 시간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6시 45분이 되자 나는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때를 놓쳐 버스를 영영 보내 버리는 상황은 피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50분이 되기 전에 아까 물었던 사람 중 한 분에게 다시 한 가지를 요청했다. 표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 한 번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전화를 몇 번 했지만 전화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계속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면서도 다행인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통화가 되었고 그냥 이 자리에서 기다리면 된다는 답을 들었다 했다. 끝이 있는 기다림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것 만으로 충분히 화가 나고 항의할만한 사안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나타나만 준다면야 그래도 참아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20분이 흘러도 버스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우리가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안절부절못하자 대신 전화를 해주셨던 분이 다가왔다. 본인이 다시 확인해 봤고 이곳에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또 한 번 넋이 나가려는 찰나에 그는 말을 이었다. 대신 한 차가 와서 우리들을 태우고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이동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 차가 올 때까지는 다시 20분을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우리에게 그 소식을 전하자마자 마침 그가 기다리는 버스가 도착하여 우리의 은인과는 헤어져야 했다. 그는 자신이 통화한 번호를 우리에게 넘겨주었고 행운을 빈다는 표정으로 떠나갔다.


그가 떠나가고 30분이 또 흘렀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1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에게 여러 가지 지침을 알려준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사람이었지만 이미 질릴 대로 질려버린 나는 그의 이야기 역시 계속해서 믿고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또 버스를 놓친 것이라면, 예약한 버스가 오지 않을 것이라면 나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즈음, 극적으로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그 운전기사는 뭘 그리 걱정하고 있느냐는 표정으로 손을 까닥거리며 우리에게 차에 타라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를 20분가량 떨어진 곳으로 안내했고 그곳에 도착해서 5분쯤 기다리자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유유히 나타났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황당했다. 표에는 어디에도 누군가 우리를 태우고 픽업 장소로 이동할 것이라는 말이 없었고, 당연히 그 사람이 픽업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날 것이라는 말도 없었다. 만약 우리를 도와줬던 그 남자가 없었다면 나는 또 지난번처럼 황량한 길거리에 서있다가 버스가 멀리 떠나간 다음에야 버스가 떠났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쯤 되자 이제는 나를 의심하게 되었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내가 부족해서 남들 다 타고 다니는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자문하고 또 자문해도 내가 잘 못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인도에 들어온 지 닷새가 넘어가고 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너무 이들을 증오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모습이 아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이다. 어떤 나라에 대해, 어떤 국민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하는 건 내가 여행하면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모습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고 그리 유순한 사람이 아닌데 이 상황을 화내지 않고 어떻게 견뎌야 한단 말이가. 게다가 모든 상황을 아들도 옆에서 함께 보고 있으니 내가 분노하는 모습은 일면 타당해 보일 것이고 그가 스스로 내리는 결론과 맞물려 인도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더욱 확고해질 터였다.


아직도 인도 일정은 한 달 가까이 남았고 수없이 많은 문제에 봉착하리라 강하게 확신하고 있는 중이다. 사회가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면 닷새 동안 겪은 많은 문제들이 당연히 우리를 따라다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음에 희망을 갖는다. 첸나이의 새벽에도, 마두라이의 새벽에도 우리를 곤경에서 구해준 건 좋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도움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지금까지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느낀 인도는 하염없이 뒤죽박죽이었지만 사회가 그렇다 하여 구성원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는 것 역시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도 난 이곳을 욕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이미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내가 견디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등장하는 좋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모든 것이 엉망 같지만 이곳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러니 나와 함께 욕할지언정 우리에게 다가왔던 좋은 사람들도 기억하자고 말이다. 그게 내가 인도에서 아들에게 균형 잡힌 시선을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