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8(D+43)_스리랑카/해튼
스리랑카의 마지막 여행지 해튼으로 가는 날이다. 기차를 이용할 계획이었지만 작년 말 사이클론으로 기찻길이 모두 망가졌단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사설 버스로 이동한 캔디까지의 여정이 못마땅했던 우리는 이번에는 일반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비 내리는 아침에 버스 터미널까지 걷는 것이 꽤나 고된 과정이었지만 막상 해튼 가는 버스에 올라탄 후에는 사설 버스보다 여러 모로 좋은 점이 많았다.
우선 놀라운 가격 경쟁력이 그 첫 번째다. 담불라에서 캔디까지의 이동거리, 캔디에서 해튼까지의 이동 거리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10분의 1 수준이었다. 게다가 좌석 간 거리도 지난번 이용한 사설 버스보다 넓었고 버스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맨 앞 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쭉 펼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이동하기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태우기 위해 우리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지 않았다. 차체가 높아서 그런지 매연의 유입도 사설 버스보다 덜했고 버스 기사는 물론, 버스와 함께 이동하며 표를 받는 직원도 친절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그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해튼까지의 이동거리 총 70km 중, 약 35km를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 버스는 우리나라의 광역 버스 같은 역할을 하니 이동 간에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우리는 출발 지점에서 버스를 탔기 때문에 쉽게 앉을 수 있었지만 자리가 모두 찬 후에 버스에 오른 이들은 통로에 서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앞에는 한 어린아이가 타고 있었는데 내 앞에 서서 한참을 온 뒤였다. 이름 모를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자 자리가 났고 그 아이는 본인이 앉는 대신 뒤 쪽에 서 있는 할머니를 불러 앉혔다. 꼬마가 기특하다 생각하고 있던 그 시점에 내 아들이 더 기특한 행동을 했다. 그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버스는 아직도 절반을 더 가야 했고 남은 시간은 1시간 반에 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고려하면 서서 가기 수월치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머리로는 훌륭하다 생각하며 입으로는 싫은 소리가 나왔다. 뭐 하는 거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갓난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가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는 버스에서 표를 받던 직원이 직권으로 아들의 자리를 양보받은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좁지만 할머니 옆에 끼워 앉으라고 하는 듯했다. 그 아이는 일어났고 그 자리에 그 여자분이 앉았다. 그리고 그 틈에 나는 아들을 다시 앉히고 내가 일어섰다. 아비 된 마음에 아들이 서 있는데 계속 앉아 가기가 영 불편하던 차였다. 순식간에 여러 상황이 지나갔지만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나는 꼼짝없이 1시간 반을 서서 가게 된 것이다.
버스는 엄청나게 출렁거렸다. 내가 앉아 있어서 못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선 이후에 도로 사정이 더 가혹하게 변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차 안에 시선을 둬도, 차 밖에 시선을 둬도 뒤집어지는 속을 잠잠하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이 정도 멀미는 대학 시절 울릉도행 배에서 겪은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앉을 곳도 없었고 아들을 도로 일으켜 세울 수도 없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버스는 40분쯤 달린 후 다시 한 역에 정차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제야 버스에는 내가 엉덩이를 붙일 자리가 났고 나는 다시 앉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그 상태로 이동했다면 아마 나는 염치 불구하고 잠시 차를 세웠어야 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해튼에 도착했다. 아들과 떨어져 앉아 1시간 가까이 왔던 나는 버스에서 있었던 일을 함께 복기했다. 우선은 칭찬으로 시작했다. 충분히 칭찬할 일이었으니까. 아들은 본인보다 어린아이가 할머니에게 자리를 주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불혹도 넘어 50을 향하는 아빠가 부끄러울 노릇이다. 난 꼬마가 기특하다 생각했지만 내 자릴 내줄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선의로 시작된 행동의 결과는 아빠의 고생으로 이어졌다. 내가 힘들었다는 이유로 아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다만 호의의 자격에 대한 생각을 잠깐 했다.
'내 코가 석자'라는 말이 있다. 콧물이 길게 늘어져 누굴 도울 형편이 못된다는 말이다. 이 여행에서의 내가 딱 그렇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대단한 피로가 누적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나마 이동하는 시간이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순간인데 그 시간을 빼앗긴 것이다. 게다가 내일은 새벽 3시부터 산에 오를 예정이라 오늘은 특별히 체력 관리를 했어야 했다. 나는 큰 화는 면했지만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메슥거리는 속은 한동안 계속됐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누굴 도울 때는 네 처지부터 생각하라고 가르쳐야 되는가. 아니면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면 결국 아무도 돕지 못하니 좋은 마음이 생겼다면 우선 도우라고 가르쳐야 하는가. 이 문제는 버스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멀미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였다. 그저 동기의 선함이 반드시 결과의 선함과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말 정도를 해주었다.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자격이란 것이 있을까?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성동일 부부가 생각났다. 빚보증을 잘 못 서 반지하에 살면서도 불쌍한 사람들이 파는 물건을 매일같이 사들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이일화는 분노한다. 누군가는 성동일을 호인이라 부를 테고 누군가는 또 한심하다 책망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마음은 오늘 행동한 것처럼 살라하고 싶지만 그렇게 살다 고생할까 봐 걱정하게 되는 것이 또 아빠의 마음이다. 이 복잡한 난제를 풀기 위해 굳이 희망사항을 하나 말해보자면 착한 사람들이 복 받았다는 소식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결 가벼운 마음으로 앞뒤 보지 말고 베풀면서 살라고 말해줄 수 있을 듯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