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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11. 2024

소원

용인 와우정사

            

가까이 있어서 더 자주 가게 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멀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가게 되지 않는 곳이 있다. 나에겐 와우정사가 후자의 경우다. 

와우정사라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 열반종의 본산이라고 한다. 불자가 아닌 나로서는 사실 불교의 종파를 구분하는 일부터 낯선데, 이 와우정사는 옛 절이 아니라 1970년대에 세워진 현대식 사찰이라는 게 내가 그간 찾지 않은 이유라면 이유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절은 신앙이 아니라 문화재, 혹은 유적의 의미가 더 컸던 것이다. 말하자면 새로 지은 절이라는데 굳이 가볼 필요가 있겠어, 하는 마음.   

  

하지만 오래전부터 와우정사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사찰이지만 공원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 일반 절과는 달리 일주문이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절 입구에 있는 대형 황금 불두상(佛頭像)의 사진을 여러 곳에서 접했다. 누구는 와우정사라고 하면 아, 와불 있는 곳! 이라고 했고, 또 누구는 거기엔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들여온 다양한 불상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어쨌거나 다들 와우정사를 알고 있을 만큼 이미 그 절은 근방에서 유명한 절이었던 거다.      


미국에서 사는 언니는 일 년에 한두 번씩 고국을 방문한다. 드물게 한국에 나온다면 오히려 보여줄 것들을 정하기 쉬운데, 제법 자주 오는 편이다 보니 이제 웬만한 곳은 모두 다 가보았다며 웃는다. 아무리 형제여도 외국에서 오는 나의 손님이기도 하다. 손님맞이를 하는 입장에선 늘 계획을 짜고 궁리를 한다. 이번에 오면 어딜 보여줘야 할까. 이왕이면 언니가 가보지 못한 곳, 새로운 곳을 찾아내느라 고심을 한다. 결국은 그간 미루었던 와우정사를 가볼 차례가 되었다.     


내가 살고있는 수원에서 용인은 옆 동네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나는 수원에서도 용인에 가까운 동수원에 거주하므로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 용인에 있는 절이라니, 용인이라면 이미 큰 도시이니 그렇게 크게 나들이하는 느낌 없이 나선 걸음이었다. 그런데 웬걸, 와우정사로 향하는 길은 꽤 깊숙한 강원도 산자락 어디를 향하는 기분이 들어서 의외였다. 제법 높고 구불거리는 고갯길도 넘었다. 이 정도라면 강원도 분위기인데, 라며 우리는 모두 웃었다. 괜스레 안전띠도 한번 다시 확인하고 싶어지는 고갯길이었다.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니. 용인에 이런 곳이 있다니. 수원이 고향인 우리 자매는 계속 신기했다.     


과연 와우정사의 입구엔 사진에서만 보던 커다란 황금 불두가 있었다. 어찌나 큰지 멀리서부터 번쩍이며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천주교인이지만 성당도, 절도 그 어떤 종교시설도 너무 크고 화려한 것엔 감동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작고 소박한 이름 없는 시골 성당에서 더 경건해졌었고, 산속 허름한 기와를 얹은 절집에서 더 마음이 편했었다. 하지만 역시 규모가 크고 잘 꾸며놓았다는 느낌엔 절로 우와, 하는 소리가 나왔다. 내가 그간 찾았던 절과는 사뭇 다른 느낌, 다른 분위기였다. 마치 공원에 놀러 온 듯 가족 단위의 방문객도 많아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화사하게 봄옷을 입고 나왔다. 불자인듯한 사람들은 경건하게 합장을 했고, 우리처럼 나들이 나온 듯한 사람들은 밝은 얼굴로 여기저기서 셔터를 눌러댔다.

황금 불두상 아래엔 소원초에 글귀를 써서 불을 켜둘 수 있는 선반이 있었다. 희고 두꺼운 소원초에 파란 매직으로 저마다의 소원을 간결히 적은 촛불이 선반 위에서 빼곡하게 선 채 일렁였다. 불자는 아니어도 이런 것을 지나치지 못하는 우리 가족도 커다란 소원초를 구입해서 정성껏 소원을 썼다. 촛불을 켜서 꽂아두다 다른 초들의 소원 문구들을 봤다. 대부분 우리처럼 가족 건강, 만사형통 따위의 말이었다. 웃음이 났다. 사람의 마음이란 비슷하구나 싶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옆으로는 통일을 소망하며 불자들이 쌓았다는 돌탑도 여러 개 있었는데 그보다 더 내 눈길을 잡았던 건 소원지를 매단 작은 소원 등이 일렬로 오르막 경사로 옆에 걸린 풍경이었다. 천천히 오르며 소원지를 들여다봤다. 가족 건강, 안전 운행, 소망 성취, 극락왕생…. 사람들의 소원이 적힌 소원지가 바람에 살짝살짝 날렸다.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동그랗고 색색의 귀여운 소원 등이 일렬로 늘어서듯 매달려 함께 흔들렸다.


그 소원지들을 다시 하나씩 들춰봤다. 소원초에 소망이 말을 써서 불을 켜는 마음처럼, 소원지에 가득 담긴 소망을 써서 등을 거는 마음들. 그 마음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역시 대부분 가족 건강 가족사랑의 문구들이었다.      

불을 켜고, 바람 속에 나부끼는 소원을 거는 마음들을 생각해봤다. 결국은 가족이었다. 저만치 앞에 웃으며 걸어가는 내 가족과 몇 걸음 뒤에서 소원 등과 돌탑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나의 언니.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청명했다. 봄꽃이 가득했다. 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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