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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Oct 08. 2024

구글에게 묻는다

                           

예전 우리의 여행엔 늘 가이드북이 함께 했다. 물론 지금도 서점에 가면 각 나라와 도시의 여행가이드북이 많이 나와 있긴 하지만 실제 여행에서 함께 하는 건 결국, 구글이다. 나의 경우 여행의 모든 정보는 인터넷 검색으로 얻는다. 현지에서의 이동정보는 구글에 의존한다.     


일본 최고의 녹차 산지로 유명한 교토시 남쪽의 우지를 찾아가는 길 역시 구글의 인도에 의해서였다. 일본 화폐에도 나온다는 사찰 뵤도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인 우지가미 신사, 그리고 850년 된 찻집이 있다는 그곳, 우지로 향하는 뜨거운 여름 아침 길엔 전철을 탔다.     

출근 차림의 직장인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내 옆에 앉은 학생은 흔들거리는 전철 안에서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언뜻 보니 함수였는데 아주 꼼꼼하게 노트필기를 해둔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이른 아침의 적당히 활기차고, 적당히 피로가 덜 풀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다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오래전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일 년을 쉬어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일 년이 아니라 좀 더 쉬어도 좋겠다고 맘먹었다. 주말과 달리 도로가 막히지 않는 평일에 고속도로를 달려 낚시를 하러 가는 기분은 느긋했다. 그 길고 인적없는 계곡에서도 주말이면 포인트를 선점한 낚시꾼이 있어 허탈했는데 평일이라면 그럴 걱정이 거의 없었다. 평일의 그런 여유로움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평일에 다니다 보면 또 다른 기분이 들곤 했다. 먼지가 풀풀 나는 도로에서 공사에 여념 없는 인부들, 농약을 뿌리고 밭을 돌보느라 하루종일 구부리고 있는 농부들. 점심을 먹기 위해 시골 식당에 들어서면 근처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안전화를 신고 먼지투성이가 된 차림으로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평일의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나의 휴식의 나날들은 달랐을까. 평일에 일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나의 휴식을 생각했다. 비로소 주어진 나의 휴식에 감사하다가, 다른 이들은 이렇게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오늘을 나는 이렇게 보내도 될까 하는 불안함도 있었다. 평일의 한적한 길을 달려 강원도계곡에서 낚시하러 오가는 길에서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을 눈에 담았었다.     


“JR 교토역 8, 9, 10번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나라선(奈良線) 열차를 타면 JR 우지 역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구글이 알려준 대로 도착한 우지는 한적한 소도시였다. 그곳에 흐르는 우지강의 동서를 잇는 다리인 우지바시(宇治橋)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3대 다리로 꼽힌다고 말해준 것 역시 구글이었다.가이드북을 사지도, 보지도 않았지만 오로지 구글 검색과 먼저 발을 디딘 블로거들의 글을 길잡이 삼아 우리는 난생처음 와본 우지의 이곳저곳을 봤다.      


역시 사람들은 대부분 뵤도인(平等院)에 많았다. 연못의 잔잔한 수면에 봉황당 건물이 그대로 비치는 반영은 아름답다. 그 봉황당은 일본의 10엔 동전에 그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우지에 왔으니 당연히 녹차를 맛봐야 하니 구글 검색을 했다. 츠엔(通圓)은 우지강을 건너는 우지바시바로 앞에 있다. 1160년에 개업했다는 그 찻집에선 창밖으로 푸르게 흘러가는 우지강이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들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니 오래된 곳임엔 틀림없다.   

   

우리는 느긋하게 우지의 이곳저곳을 봤다. 여행을 좋아해서 자주 떠나는 사람이지만, 예전엔 참 바쁘게 돌아다녔다. 하나라도 더 봐야지, 어떻게 빼낸 시간인데 싶었다. 이제 나의 여행은 느릿느릿 흘러간다. 내가 열 가지를 보겠다고 계획을 세운다 한들 그것이 여행지의 전부일 리 없다. 어차피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전부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하나라도 더 보려고 애쓰는 대신 한순간이라도 더 느끼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뜨겁지만, 대신 눈부시게 화사했다. 한적했지만 그만큼 느긋해서 좋았던 곳이기도 했다, 우지라는 곳은. 

교토로 돌아오는 전철은 여전히 흔들렸다. 구글을 열어 내가 좀 전에 다녀온 뵤도인과 우지강의 다리, 그리고 아주 오래된 그 찻집을 다시 봤다.      

구글은 가는 길을 알려주고, 가야 할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처럼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말도 전해준다. 여행이 끝난 어느 날 문득 다녀간 그곳이 궁금해진다면 구글은 그때 또다시 내게 그곳을 보여주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변함없을 것이다. 


때로 구글은 냉정하지만, 때로는 다정하다. 아무것도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리워하며 떠올려주길 기다리며 언제든, 무엇이든 잘 보관하고 있는 존재 같기도 하다. 나는 구글을 알 수 없지만, 구글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만 같기도 하다.      

늘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계획하는 나는 앞으로도 계속 가이드북을 사는 대신 구글에게 물을 것이 분명하다. 어제를 묻고, 오늘을 궁금해 할 것이다. 어쩌면 내일도 궁금해서 묻고 싶은 순간이 없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시 그것만큼은 참기로 한다. 구글에게 지나간 기록과 지금의 궁금함이 아닌 내일의 희망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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