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가지는 사방으로 넓게 뻗어나갔고 나무 기둥 둘레는 5m가 넘는다. 게다가 큰 뱀처럼 굵고 구불구불한 뿌리가 땅바닥을 기어가고 있다. 처음 마주했을 때, 레이토는 그 장엄함과 박력에 압도되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다케오의 여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덥다, 라는 한 마디로는 어림없는 더위였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공기 온도는 한껏 높았고, 드러난 팔과 다리가 따끔거릴 만큼 햇살은 그 어디에도 스치지 않고 직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케오의 그런 더위는 여러 곳에서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의 다케오로 떠난 이유는 동행한 남편의 시간이 그때밖에 되지 않았고, 나는 꼭 그곳의 ‘녹나무’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은 건 제법 오래전인데, 내내 그 녹나무가 궁금했다. 그저 작가의 상상 속 나무일 거라고 짐작한 것과는 다르게 그 나무는 실제 다케오라는 소도시에 엄연히 존재하는 나무였다. 물론 소설 속에선 도쿄 근교의 월향신사라는 곳 뒤편에 있는 나무로 나온다.
나는 내내 다케오에 있다는 그 녹나무가 궁금했다. 삼천 년을 살아온 나무라니. 기껏 백 년을 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수명인데, 삼천 년을 숲속에서 살아온 녹나무는 어떤 기운을 내뿜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마침 속편 ‘녹나무의 여신’이 발간되었고, 나의 녹나무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졌으므로 8월의 악명높은 다케오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떠나게 된 것이다.
다케오는 반듯한 도시였다. 길이 넓고, 주택들은 대도시에 비하면 한결 규모가 커 보였고, 하나같이 잘 정돈된 작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뜨거웠다. 너무 더워서인지 인도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골목마다 편의점을 발견하는 것이 일상인 일본의 대도시와 달리 다케오에는 편의점이 드물었다. 호텔 바로 앞인 다케오 역안의 작은 매점이 근처의 유일한 편의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일찍 문을 닫았다. 음식점, 카페, 술집 같은 것들 역시 오후 6시 이전에 영업을 마치는 곳이 많았다. 첫날은 그런 다케오를 알지 못했으므로 하마터면 저녁을 굶을 뻔했다.
녹나무를 보러 가는 날 아침, 역시 뜨거운 햇살 아래로 나섰다.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다케오 신사에 도착하니 기사님께서 콜택시 명함을 건넸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뿐 아니라, 택시 역시 일없이 다니지 않는 도시였다. 택시 앱은 통하지 않으니 콜택시를 불러야 한다고 했다.
다케오 신사로 오르는 길은 오래된 나무들로 그늘을 이뤘다. 735년에 미후네야마(御船山)의 자락에 자리 잡은 이 다케오 신사에는 주로 장수, 액막이 등을 기원하는 참배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다케오 신사까지 오르고 나면 신사 입구의 맞은편인 왼편 삼나무 숲속으로 작은 길이 보인다. 사람 둘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차는 좁은 그 길은 삼천 년 된 녹나무까지 이어졌다.
타박타박, 발소리를 내며 숲길을 이백여 미터쯤 걸었을 때 저 멀리 숲의 나무들 사이로 삼천 년 되었다는 거대한 녹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높이 27m, 둘레 26m에 달하는 일본 내 6번째 크기의 거목이라고 한다.
신목이라 불리는 그 녹나무는 좁은 길이 끝나는 낮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아래에서 살짝 올려다보아야 하는 모양새였다. 그래서였을까. 어쩐지 녹나무는 신비로웠고, 마치 다른 세상으로 잠깐 들어온 듯 주변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다케오 사람들은 녹나무의 신령스러운 힘을 믿었고, 그 나무가 있는 대숲 또한 성역으로 여겼다고 한다. 나 역시 ‘신령스럽다’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비탈 위에 금줄을 두르고 숲의 제왕처럼 서 있는 그 나무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다케오의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흙바닥에 내려앉았다. 삼나무를 지나 대숲 사이로 불어온 바람이 주변을 감쌌다.
소설에서 묘사한 대로 나무 밑동에는 마치 동굴과 같이 뚫린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소설 속에선 그 구멍에 들어가 밀초를 켜고 ‘염원’을 한다. 나무는 그 염원을 기억해두었다가 피를 나눈 누군가가 찾아오면 대신 맡아두었던 그 염원을 전해준다. 보름과 그믐에 이루어진 그 의식에 대한 소설 속 묘사를 생각하며 녹나무를 오래 보았다. 실제로 다케오의 녹나무 구멍 속에는 제단이 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금줄이 쳐져 있어서 가까이 가서 들어갈 수는 없다.
한동안 올려다보다 사진을 찍고 돌아섰을 때 뒤에서 초로의 한 여인이 녹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관광객은 아니었다. 눈인사를 하고 비켜서니 그녀 역시 목례를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조용한 얼굴로 나무를 오랫동안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어떤 ‘염원’을 했던 걸까. 사진도 찍지 않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더 보다가 나는 천천히 걸어 숲을 나왔다.
깊은 숲에 들어갔다 온 것 같은 마음이었지만, 숲에서 나오자마자 도로는 금세 나타났다. 건너편 다케오 도서관으로 향하며 문득 생각했다. 삼천 년을 살았다는 그 거대한 나무를 올려다볼 때 나의 얼굴도 그랬을까. 나는, 나의 염원이 그 녹나무에 가닿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