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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Nov 22. 2024

록스마켓의 캥거루

                                 

  

주말에 열리는 시드니의 록스마켓은 일종의 플리마켓이다. 지금은 각종 수공예품과 먹거리들을 파는 독특한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지만, 사실 이곳 록스는 영국의 총독이 1788년 처음으로 호주에 발을 디딘 지역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한때 바위도 많았다고 한다. 

나 역시도 록스마켓이 궁금했다. 마침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주말이 끼어있으니 당연히 가봐야지 했는데, 사실 더 큰 이유는 캥거루에 있다.     


어제 동물원에서 귀여운 캥거루를 보긴 했지만, 사실 호주에서 캥거루는 보호동물은 아닌 것 같다. 호주를 대표하는 대표 동물이긴 하지만 찾아보면 의외로 캥거루 육포나 스테이크 등 캥거루 고기로 만든 요리나 가죽을 이용한 상품도 찾아볼 수 있었다. 혼자 여행자의 모험심으로는 그런 요리까지 도전하기는 쉽지 않지만 록스마켓에서 판다는 캥거루 바비큐 꼬치라면 충분히 구미가 당겼다. 게다가 악어꼬치도 함께 맛볼 수 있다는 말에 더더욱 흥미가 생겼다.     


열 시부터 열린다는 록스마켓은 서큘러키 역에서 가깝다. 어제도 캥거루를 보러 타롱가 동물원에 가기 위해 서큘러키에서 내려 페리를 탔었다. 오늘은 그 반대 방향인 록스마켓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캥거루 고기를 맛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서.

입구부터 사람이 많았다. 흥겨운 분위기였다. 골목과 도로를 연결해 차량의 통행을 막고 제법 넓은 구역에 장이 서는데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시장은 활기찼고, 다양한 수공예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관광객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시드니의 풍경, 여행의 기념이 될 만한 그림이며 소품이 많았다.      


나 역시도 록스마켓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에코백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언젠가부터 여행길에 기념이 되는 에코백을 하나둘 사기 시작해서 이미 에코백은 집에도 많다. 이왕이면 기념품을 사더라도 쓸모 있는 걸 사는 것이 낫지, 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념으로 사 온 에코백이 자꾸 늘어난다. 이쯤 되면 과연 에코가 맞는 걸까 싶다.     

주인은 점잖은 중년 남자였는데 말수도 적고, 표정도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이었다. 내가 에코백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걸 눈치챈 그는 안쪽에서 다른 색상의 에코백을 꺼내어 보여줬다. 일러스트가 네이비색이어서 속으로 ‘검정색이면 좋았을 텐데….’ 싶던 참이었다. 그가 꺼내어 준 건 마침 검정색 일러스트의 에코백이었다. 이쯤 되면 관광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지름신을 맞이한다.


그는 ‘돌돌 말아줄까?’ 물었다. 꼼꼼하게 말아 끈까지 둘러주고는 서비스라면서 스티커를 두 개 더 건넸다. 그는 조심스러웠고, 나직하게 말했다. 과하지 않게 웃었고, 지나치지 않게 친절했다. 언어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사람에게는 이처럼 자기만의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어떤 향기, 어떤 분위기의 사람으로 남들에게 다가가고 있을까 궁금했다.      


에코백을 사 들고 이제 꼬치를 맛보러 갈 시간이다. 미처 준비가 덜 된 바비큐코너의 주인은 손이 바빠 보였다. 오더를 받느냐는 내 말에 다급하게 손바닥을 펼쳤다. ‘5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뛰듯이 어디론가 가더니 아들인 듯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주문을 받게 하고 자신은 바베큐 준비를 시작했다. 석쇠에 연기가 오르고, 치이익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와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웨이팅이 있는 음식점을 잘 가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굳이 기다려서까지 맛집에 줄을 서는 일도 거의 없다. 기다려서 먹어야 한다면 그냥 가기를 포기하는 쪽이었다, 이런 내가 오더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기어이 캥거루 꼬치와 악어꼬치 하나씩을 주문했다. 주문받는 아이는 내게 ‘1번’이라고 말했다.

‘맙소사!’

시드니에 와서 오픈런에 1번이라니. 역시나 나란 사람은 의지의 한국인이었던 걸까.     


기대한 꼬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캥거루와 악어는 각각 약간 질긴 소고기와 닭고기의 맛이었다. 꼬치치고는 너무 큰 덩어리여서 그렇지 조금만 작게 잘라 꼬치구이를 해준다면 한두꼬치쯤은 더 먹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맛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분위기는 흥겹게 일렁일렁했다. 사방에서 다양한 언어들이 들려왔다. 달아오르는 록스마켓을 뒤로 하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렇게 인생의 새로운 맛 하나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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