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캠핑 인간 생존의 4요소(화로/지붕/바닥/벽) 가운데 지붕에 대한 생각을 풀어볼까 한다. 모름지기 캠핑을 가면 나만의 은신처를 만들어야 한다. 은신처 없이 대자연에 홀로 서 있는다는 건, 마치 아는 이 하나 없는 파티장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랄까. 옆으로는 바람이, 위로는 비나 새의 똥(?)이, 아래로는 축축한 흙과 벌레가 가득한 대자연에서 하루를 버티기 위해선 쉘터가 필요하다. 이번 글은 특히 지붕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위한 지붕의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A. 비나 이슬에 젖지 않을 것(발수)
B. 추운 밤에 실내의 온도를 보전해 줄 것(보온)
C. 투습성이 있어, 결로가 맺히거나 곰팡이가 피지 않을 것(투습)
D. 바람에 의해 날아가거나, 눈에 의해 주저 않지 않을 정도로 구조적으로 견고할 것(내구성)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복잡한 기술이 가미되지 않은 전통 건축물의 사례를 찾아봤다. 한옥의 지붕은 바깥에서부터 기와 - 석회 - 보토 - 적심 - 개판 - 서까래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을 흡수하지 않고 튕겨내는 기와는 A 역할을 한다. B 역할을 하는 것은 보토다. 보토는 흙이다. 흙은 입자 간의 공극이 많아 온도를 보전하는 단열재 역할 C를 한다. 또 지붕 위에 올라오는 모든 재료는 각자의 무게를 지닌다. 이것으로 바람에 날아가거나, 눈의 하중을 견디는 D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라, 이렇게 보니 지붕을 만드는 게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가볍디 가벼운 텐트는 그럼 어떻게 위 특성을 충족하는 걸까? 간이 거처라는 점에서 위의 건축물만큼의 성능이 보장될 필요는 없는 한편,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경량화 + 해체와 설치를 반복해도 튼튼한 내구성의 이슈가 수반된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로마를 비롯한 전 세계의 군대, 유목민족들, 실크로드의 상인들은 텐트에 동물의 가죽을 사용했다. 하지만 동물 가죽은 물에 젖으면 무거워지고, 쉽게 곰팡이가 피고, 그래서 또 쉽게 물이 새는 등의 문제가 있었을 것 같다.
인간은 이 많은 문제를 1930년대 듀퐁의 합성 플라스틱 섬유 개발로부터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폴리에스테르는 물에 쉽게 젖고 무거우며 또 쉽게 삭는 천연섬유의 단점을 가뿐히 뛰어넘으면서 단가도 저렴했다. 특히 1 - 2차 세계대전 군용 장비들에 전폭적으로 동원되면서 성능을 입증받고, 전후에도 일상의 많은 부분에 응용되었는데, 텐트도 혁신적인 응용 분야 가운데 하나다.
그럼 폴리에스테르 텐트의 성능은 과연 어떨까? 앞서 한옥을 설명할 때 든 기준을 텐트에 맞게 다시 들어보자.
A. 비나 이슬을 튕겨낼 것(발수성)
B. 추운 밤 실내 온도를 보전해 줄 것(보온성)
C. 통기성이 있어, 결로가 생기지 않을 것(통기성)
D. 곰팡이에 의해 쉽게 삭지 않을 것(내구성)
+
E. 가벼울 것(경량성)
폴리에스테르계 텐트
텐트용 폴리에스테르는 조직이 가벼우면서도 질기다. 또 겨울철 의복의 원사로도 쓰이는 만큼 보온성능도 갖추고 있다. 여기서 A + B + E 충족. 당연히 플라스틱이니 곰팡이 어택을 쉽게 받을 리 만무하다. D 충족. 또한 가볍고 저렴하며 관리도 쉽다. 하지만 역으로 질긴 조직과 코팅 때문에 실내공간 통기성이 떨어져 결로가 쉽게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C는 문제 있음. (+결로가 맺히기 시작하면, 텐트를 비롯한 침낭, 옷가지 등등의 내부 물건들이 축축해진다. 뽀송뽀송한 캠핑을 위해서는 결로 방지가 필수다.)
면 텐트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역으로 천연소재인 면텐트가 빛을 발한다. 대표적으로 노르디스크 같은 명품이 여기 속한다! 면텐트는 결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분을 흡수해 공기 중으로 방출한다. 폴리 텐트와는 다르게 면텐트는 자체적으로 공기 순환이 되기에 더 쾌적한 실내 공기 상태를 제공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물을 흡수하는 특성 때문에 방수처리를 했다고 하더라도, 수분 포화도를 넘어서면 물이 새게 된다. 즉 B + C + D not A + E. 또 무겁고 비싸다! (하지만 감성 캠핑족은 이를 무릅쓰고도 면텐트를, 노르디스크를 구입한다. 심지어 품귀)
더블월 텐트
이제 이 글은 정.반. 그리고 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방수와 통기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제조사들이 선택한 방식은 더블월이다. 서로 다른 두 텐트를 겹치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다. 통기성이 좋은 이너 텐트 위 방수 성능을 갖춘 플라이를 덮는다. 플라이를 넓게 펼치면 전실(베스티블)을 만들 수도 있다. 일반적인 캠핑에 안성맞춤이다. 가족단위 캠핑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여기 해당하는 명품으로 스노우피크 등이 있다.
싱글월 텐트
하지만 인간의 탐구는 끝이 없다. 강풍이나 비바람이 치는 익스트림 환경에서도 손쉽게 풀 성능 쉘터를 설치하는 방법을 고민하기에 이른다. 단순한 설치와 일체화된 조직을 만들 수는 없을까? 여기서 고어텍스(1969) 이야기를 해보자. 아웃도어 패딩을 사러 가면 항상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명품 소재 고어텍스. 고어텍스는 가열된 테플론을 늘려놓아 미세기공이 뚫려있는 코팅 재다. 고어텍스에는 미세한 구멍이 송송 나있어 기체인 수증기가 통과하기에는 충분히 크지만, 액체상태의 물은 표면장력 때문에 구멍을 통화할 수 없다. 따라서 고어텍스 패딩을 입으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분과 바람은 막으면서 땀을 배출할 수 있게 된다. (숨쉬는 패딩이라고도 불린다.)
등산과 전투 같은 극심한 상황에서 옷감 안쪽의 땀은 빠르게 식으면서 저체온증을 야기하고, 심각하면 동상으로까지 이어지는 치명적 요소다. 실제로 포틀랜드 전쟁에서 영국군 SAS가 고어텍스 야상과 전투화를 착용하고, 눈이 내리는 고산지대를 한 명의 동사자도 없이 돌파해, 적군 기습에 성공하면서 영국군 전체에 고어텍스 야상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미군도 따라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성능이 입증됐다.
이를 개발한 듀퐁의 엔지니어 윌버트 고어가 프리랜서 텐트 디자이너 토드 바이블러와 함께 최고의 텐트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고어텍스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립스탑 계열 원단을 외피(발수)로, 건식 부직포를 내피(흡습)로, 그리고 그 사이에 폴리우레탄 원단(투습) 넣어 세 원단을 라미네이팅 한 토드텍스 원단을 출시했다. 텐트에 결로가 맺히면 폴리우레탄이 결로를 흡수하고 부직포에 전달해, 부직포 원단이 적정 실내 습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증발시키는 방식이다.
토드텍스 텐트는 지금은 사라진 Early Winters를 통해 처음 출시되고, 경영난을 겪게 되며 초기 디자이너였던 토드 바이블러가 사업을 승계받아 Bilber라는 회사를 통해 공급되었다. 오늘날 3대 텐트 중 하나인 블랙 다이아몬드가 마지막으로 Bibler를 인수하면서 비로소 명품의 지위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익스트림 환경에 최적화되었다 뿐이지, 더블월에 비해 결로 제거 효과가 탁월하지는 않다고 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A + B + C + D + E의 문제들을 한두 장의 소재로 압축한 것이 텐트다. 따뜻하고 안락한 집을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게 되기까지 다사다난한 과학의 진보가 있었다. 필자는 이야기의 끝에 정반합의 합으로 토드텍스 이야기를 했지만, 토드텍스 역시도 야영의 모든 조건들을 최상위 스탯으로 충족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결국 각각의 텐트 타입들이 서로 정도가 다르게 A + B + C + D + E를 충족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특정 스탯이 높은 텐트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필자는 가성비 넘치는 장비 선택을 위해 스스로 정리할 겸 이 글들을 쓰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장비를 조사하면 할수록 오리지널을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가격까지도 미니멀한 캠핑을 추구하고 싶었는데, 점점 맥시멀 캠퍼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 하지만 스토리를 알고 나면 역시나 명품 만만세다!ㅠㅠ!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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