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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자 Nov 04. 2020

캠핑, 캠핑!

갖가지 고민들로 건조하고 딱딱한 일상을 보내는 요즘, 내 취미가 뭐냐 묻는다면 :

캠핑, 캠핑이다! 캠핑 새내기로써 첫 캠핑 기억들을 더듬더듬 기억해본다.


1  수학여행으로 간 첫 캠핑

내 첫 캠핑은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보내준 수학여행이었다. 산과 들을 건너 카누를 타고, 암벽을 기어오르고, 트래킹을 하고, 밤하늘 별을 보며 잠드는 그런 코스였다. 막상 그땐 이탈리아에 도착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수학여행에 왔다는 사실보다 사람들과 적응하는 게 더 걱정이었다. 혹여 내가 선생님 말을 못 알아들어서 미아가 된다던지, 팀 짜는데 실패해 나만 선생님이랑 카누를 탄다던지.. 그런 걱정들. 그래서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 스위스의 산과 들에서 먹었던 살라미 샌드위치와 맑은 공기, 팔뚝만 한 애벌레와 주먹만 한 달팽이는 마음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그때 구입했던 Quequa 등산배낭과 침낭은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다. 15년 정도 된 물건이다.


2  친구를 따라간 첫 번째 生캠핑

그리고 두 번째 캠핑은 노부린 삼총사와 함께 갔다. 부는 백패킹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백패킹 장비들에 거액을 투자했다. 부는 학창 시절부터 각종 등산, 자전거 종주, 산티아고 순례길 혼자 떠나기, 인도 여행, 히말라야 산맥 트래킹, 등등 흙과 아주 친숙한 몸과 정신을 지녔다. 린도 그에 못지않은 내공을 갖고 있다. 다년간의 풍물패 활동, 농활, 인도 여행 등등으로. 졸업이 다가오고, 더 홀로 설 수 있게 되면서 부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그런 장비들을 호로록 구입해버리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가을 강천섬


그리고 우리는 졸업하던 해의 가을에 부의 장비들을 들고 여주 강천섬으로 떠났다. 그 전날부터 부네 집에서 전야제를 벌이며, 뭘 먹고 뭐하고 놀지 고민하고 필요한 장비랑 음식을 샀다. 오래간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우린 뚜벅뚜벅 그 시골까지 전철-고속버스-마을버스를 타고, 섬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곱게 걸러져 만들어진 두부 같은 인간이다. 버스 타고 20분 넘게 무거운 짐을 이끌고 걸어 들어가는 그 길이 슬슬 힘겨웠으나, 우리가 먹게 될 고기와, 빵을 생각하면 참을만했으나, 비싸 보이는 돌돌이를 끌고 가는 사람들, 심지어 돌돌이를 자전거에 걸어서 슉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며 못내 부러웠다. 한편 짐을 들고 아이처럼 뛰어다니는 B와 그런 B를 보며 “쟤좀봐 호호홓”하는 R을 보며, 지금 힘든 건 조금 눌러둘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낑낑거리던 짐을 내려놓고, 텐트를 설치하면서 돌풍에 텐트 뼈를 맞고 입술이 터지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날씨와 좋은 친구들, 맛있는 고기, 패배뿐이었던 루미큐브를 하는 동안은 정말 행복했다. 내가 터진 것은 새벽이었다. 15년 전 구입한 숨 빠진 침낭으로는, 아래서 올라오는 냉기와 차가운 공기를 이겨내기란 역부족이었다. 새우처럼 몸을 말아보기도, B나 R옆에 들러붙어보기도, 바깥에서 체조를 하고 들어와 보기도 했지만, 난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됐다.. 그렇게 쾡한 아침을 맞고 겨우 일어났는데, 나와 달리 흙의 종족인 B와 R은 세상 상쾌해 보이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침엔 투둑 투둑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춥고 배고픈데 비까지 쫄딱 맞아야 한다니,, 생각하는 순간 불쾌지수가 솟구쳤다. 의자에 앉아 행복해하며 텐트에서 비를 맞다가 오후에 철수하겠다는 B의 얘기를 듣고 그만 나는 못 참고 “나는 그럼 그냥 갈 거야.”라고 뱉어버리고 만 것.


요란한 옆집의 그릴과 달리 조용히 지글지글 고기를 익히는 우리의 팬, 그리고 위스키


우린 결국 다 같이 짐을 싸서 비를 맞으며 겨우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돌아가는 그 길에서 나는 많은 것을 봤다.

비 오는 가을 아침에 강력한 침낭 하나만으로 벤치 위에서 자는 아저씨, 모닥불을 피우고 나무 흔들의자에서 책을 읽는 아줌마, 브롬튼 자전거를 타고, 짐을 트롤리에 담아 빠르게 철수를 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재빨리 주차장으로 도망쳤지만, 우리는 주차장을 지나 버스정류장까지 달려야 했다.

이 캠핑이 즐거웠고 분명 행복했다. 하지만 이 캠핑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 캠핑은 장비빨이라는 것이다.

그때 내가 친구들에게 심술을 많이 부렸지만, 그래도 캠핑의 세계를 알려줘서 고맙고 그다음에도 나랑 놀아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너희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


3  내가 가자고 주도한 진짜 첫 번째 카라반 캠핑

두 번째 캠핑에서 흙의 종족들에게 입을 삐죽이기도 했으나,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는 흙이 되고 싶은 두부다. 남자 친구 S는 어릴 적부터 캠핑을 밥 먹듯 다닌 골수 캠핑족이다. S의 가족은 어릴 때 텐트족에서 시작해 트레일러족으로, 그리고 이젠 모든 장비를 한 장소에 정박해두고 제2의 집처럼 이용하는 글램핑족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이다. S는 2,3주에 한번 꼴로 일요일은 캠핑장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는 그런 S로부터 많은 꿀팁을 전수받고자, 휴가를 내어 명지산 카라반 캠핑을 시도했다.



골수 캠핑족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해 점심 메뉴 선택에 많은 연구를 했다. 일반 샌드위치는 재미없으니, 남부 유럽 스타일로 Bocadillo를 준비해봤다. 질 좋은 올리브유, 직접 썰어먹을 수 있도록 통 살라미, 실한 토마토와 양파, 그리고 제일 중요한 당일 구운 바게트만 있으면 된다. 다음 기회에는(아마도 내가 독립해 내 주방을 갖게 되었을 때) 빵도 직접 굽고, 토마토도 직접 재배한 걸로, 그리고 베이컨도 직접 절인 걸로 가져가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음식을 신선한 산 공기와 함께 먹을 거다. (이게 빈말이 되지 않게 노력해야지)



그리고선 저녁을 먹기까지 계곡으로 내려가서 물도 만지고, 계곡 물도 건너가 보고 했다. 우리는 텐트나 장비가 없어 카라반을 빌렸는데, 아쉬운 점은 카라반 캠핑은 펜션에 묵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점이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좋았지만, 직접 자연을 거닐면서 묵을 땅을 살피고, 세팅을 하고 하는 거랑은 거리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 번거롭게 텐트 치고 준비하는 게 귀찮아진다고 하지만, 나는 겨우 20대에 불과하다. 지금 포기할 순 없다. 나도 이제부터 슬슬 찾아보면서 텐트와 장비를 하나씩 구입해볼까 한다.



S는 커피를 무진장 좋아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이건 중독인가?). S의 가족 모두가 엄청난 커피 마니아인데, S는 이번에 볶은 원두, 그라인더, 핸드드립 용품들을 가지고 왔다. S는 예쁜 커피 빵이 나오도록, 커피의 쓴맛이 나오지 않도록 불을 부을 줄 아는 사람이다. 커피 콩이 신선하면 신선할수록,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이산화탄소를 더 내뿜는다고 한다. 그렇게 커피 빵이 부어오르는 것인데, 신선하지 않은 콩으론 커피 빵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마치 갓 잡은 낙지는 초장위에서 더욱 몸부림치며 양념을 스스로 더 묻히고, 신선하지 않은 낙지는 가만히 있는 것과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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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붙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장작에 불이 붙어서 활활 잘 타는 원리는 잘 모르겠다. 불이 붙은 것 같다가도 수그러들어 연기만 나기도 하고, 아무리 토치로 지져대도 불이 붙지 않기도 하고.. 우리는 꽃등심 두 덩이를 사 갔는데, 첫 고기는 거의 훈제로 먹었다. 다시 불을 붙이는데 실패해 타다키처럼 차갑게 먹어야 했다. 그나마 된장찌개로 추운 속을 달랬다. 그래도 두 번째 고기는 사장님의 도움으로 잘 익혀먹을 수 있었다.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캠프파이어다. 말로만 듣던 불멍. 불멍을 너무 해보고 싶었던 나머지, 나는 유튜브에서 ‘1시간짜리 불멍’ ‘Campfire ASMR’ 이런 걸 찾아 듣기도. 시시각각 타오르는 장작을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분명 엄청나게 추운 공기였음에도 두세 시간 불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는데, 깜깜한 산에서 마시멜로만 굽기도 어렵다. 난 계속 태워먹었다. 마침 정말 맑은 밤하늘이라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Star Walk라는 ar 어플로 하늘에 떠있는 별자리가 무엇이 있는지 살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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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R과 함께 했던 캠핑이 힘들었던 이유는 자명하다, 장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캠핑은 마치 에어컨을 틀고 이불속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다. 굳이 춥고 축축한 자연으로 들어가 내 몸 하나 따뜻하고 보송보송하고 아늑하게 있을 수 있게 하는 것. 자연과 물아일체라는 것이 말이 쉽지, 실상은 엄청난 에너지와 비용을 수반하는 일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장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난 에어컨 틀고 이불 안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아직은 내가 운전도 못하고 장비도 없어 움직이는 범위가 좁지만, 의지가 있으니 조금씩 넓혀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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