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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sungkyung Jul 09. 2022

현실로 돌아왔지만

꿈이 꿈인걸 아는 순간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 땅에 모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혼자 삶을 사셨다. 할머니는 내가 죽고 나면 화장해 세상에 뿌려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자식들에게 짐이 되려 하지 않으셨다. 그게 설령 할머니가 원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할머니가 말한 데로 다시 할머니를 자연으로 보내드렸다. 할머니는 좋은 흙이 되었다. 자식들에게도, 남겨두고 떠나버린 삶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곤 줄 곧 꿈에 나와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싫어서 인지 그런 미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 이성과 감정이 교차하듯 나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추석이다. 할머니가 곁에 계셨을 땐, 가족들이 조그마한 우리 집에 모여 소파를 벽 끝까지 밀어놓고 거실 벽 한편엔 병풍을 세우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제사를 지냈지만 이제는 그저 그런 긴 휴일이 됐다. 어렸을 땐 추석 날 하는 행사 치례를 안 했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집에 제사가 있으면 전날, 친구랑 놀다 늦게 들어가고는 했다. 그날, 나는 아버지에게 집에서 쫓겨난 일도 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집을 박차고 나가셨고 박차고 나가버린 아버지를 가족들과 함께 되찾아 오곤 했다. 


 추석인 오늘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맏이 하는 추석이다. 매번 제사상 준비로 분주하던 아침을 잠으로 때우고 고요한 추석 아침이 되었고 분주하던 집은 뉴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하루 종일 잠자고 먹고를 반복했던 추석,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꿈에 나와주었다. 그것도 추석 당일, 할머니가 삐치신 것 같다. 꿈속에서 나는 이게 꿈인 줄 알았다. 그러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꿈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도 같았다. 할머니는 나와 함께 살던 날의 부엌에 있었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여느 명절과 다름없이 한집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모두가 할머니가 돌아가실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할머니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족들 모두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할머니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할머니 이거 버려도 돼? 할머니 이거 버릴까? 할머니는 고개만 끄덕이며 입을 열지 않으셨다. 선글라스가 하나 나왔다. '할머니 이거 버려도 돼?' 이번에도 할머니는 버리라고 하셨다. '할머니 이거 써봐!' 할머니는 손으로 선글라스를 막으며 쓰기를 거부했다. '그러지 말고 써봐' 할머니는 선글라스를 쓰고 그대로 우셨다. 나도 할머니를 안고 울었다. 할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부엌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꿈에서 깨도 꿈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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