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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Aug 18. 2021

반쪽 인간

행복한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지 않다. TV를 보다가 비극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드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이 나오기 시작하면 채널을 돌린다. 수십 개의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가 꼭 하나는 나온다. 시청자의 재미를 위해 엄동설한에 개울 물에도 뛰어 들어가는 예능인들의 노력 끝에 나는 소리 내어 웃는다. 수박을 먹고 또 먹어서 빵빵해진 배로 고통을 표하는 사람에게 벌칙이라며 수박 한 덩이를 또 던져주는 내용을 보면서 자지러지곤 한다. 그러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어떤 나라의 어떤 사회의 어떤 사람들에게 닥친 사건과 사고가 나오면 다시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린다. 원래 그러지 않았는데. 나는 언제부터 슬프고 화나는 내용으로부터 눈을 두지 않았을까.


불평과 불만을 일삼는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힘이 들었다. 나름의 이유야 있었겠지만, 그런 태도로는 변하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조용히 생각하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래야 뭔가라도 하지. 나는 내게 그것이 세상을 사는 바른 방법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는 세상이 이미 망가졌다고 여기기 시작하면 의욕이란 것은 사라지고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쁘고 즐거운 것만 생각하는 것에는 힘이 있었다. 상황은 변하지 않지만  마음은 바꿀 수가 있으니까.  마음이 즐거우면 다시 일어서서 버틸  있으니까. 그것을 붙들고 살다 보니 사회에서 나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 자기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약해진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분노와 좌절이 옆에 있는 내게도 슬픔과 괴로움을 줄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그 감정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기에 애써 모른 체하려고 노력한다. 세상은 행복하고 재미있기만 한 곳이 아닐 것인데. 고통과 거짓, 아픔도 분명 있을 텐데. 그런 감정이 느껴질 것 같으면 기쁨의 수도꼭지 같은 것을 틀어놓고 마음을 채워서 더 이상 슬픔이 자리할 곳을 없애버린다.


우울하고 싶지 않다. 두렵고 싶지 않다. 걱정하고 싶지 않다. 불안해하고 싶지 않다. 절망하고 싶지 않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이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을 익힌 거라고 좋아했는데, 사실 나사 빠진 반쪽짜리  인간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기쁨도, 슬픔도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되는 중은 아닐까. 아무래도 아직 슬픔을 감당할 만큼 힘이 없나 보다. 어른 되려면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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