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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 Project Oct 09. 2019

지명로 좇아보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낭만

지역 문화의 집결지 정자(亭子), 서울의 지명으로 남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했던 지도 속, 우리 동네 지명 - 선조들의 풍류 가득한 정자로 그 원류를 이해해 봅니다.


유교 조선시대, 지배층인 양반 문화의 정수를 “선비 문화”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사명감과 책임, 그리고 청렴과 청빈을 지향했던 양반들은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계에 진출하고, 선학들의 말을 읽으며, 자연을 벗 삼아 수련했습니다.


그렇다면 양반이 정계에 진출한 후, 후학들에게 선학의 말을 전하며 자연을 벗 삼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낙원이 되겠죠. 이 낙원을 건축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누각과 정자입니다.  

창덕궁 후원 속, 정조가 새로운 세상이란 이상을 펼치기 위해 지은 주합루와 규장각

옛 관료들은 누정을 건립함으로써 공적을 남기고자 하였으며, 퇴관한 선비나 처사로 낸 지식인들은 누정은 관람하고 풍류를 즐기며 문화생활을 즐겼습니다. 유명한 누정들을 유람하고 시를 남기는 누정제영(樓亭題詠)또한 지배층 사이에서 빈번히 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누정은 조선시대의 교양인들이 지적 활동과 풍류를 즐겼던 곳이기에, 이를 중심으로 그 지역의 문화가 모일 수 있으며, 누정이 그 지역 문화에 뚜렷한 한 획을 긋는 지리적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지역 문화의 정수가 되는 누각이나 정자는 그 지역을 부르는 명칭이 되기까지도 하는데, 그 명칭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서울의 명칭으로 남아 있는 역사 속 정자 세 곳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했던 지도 속, 우리 동네 지명 - 선조들의 풍류 가득한 정자로 그 원류를 이해해 봅니다.



압구정(狎鷗亭), 조선 정치계 큰 손의 휴양지


위치:  강남구 압구정동 산 310번지


이름의 유래

압구정(狎鷗亭)은 익숙할 압, 갈매기 구 자를 사용해 “갈매기와 노니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압구정은 세조 때 비상한 정치 수완으로 압도적인 권력가가 된 한명회(韓明澮, 1415∼1487)가 지은 정자로, 자신이 벼슬에 뜻이 있지 않고 강가에서 갈매기와 벗하며 지내고 싶다는 뜻으로 명나라 문인 예겸에게 이름을 받아 지었다고 합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압구정. 높은 언덕 위 올라온 건물이 압구정이고, 뒤에 보이는 짙은 초록색 산이 남산이다. (소장처 - 간송미술문화재단)



지역과 얽힌 이야기

압구정은 지금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터로 남아있습니다. 이 곳은 과거 삼국시대엔 성채터였는지,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밖을 관망하는 성채로 쓰였던 만큼, 강가 쪽으로 꺾인 이 언덕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명소였습니다. 아마 압구정에 오르면 눈 앞에서 유유히 흐르는 한강 뒤로 산과 도성이 보였을 것입니다.


한명회라는 대단한 개인의 소유이자 그의 호였을 만큼, 압구정은 그의 소유 당시에도, 그리고 그의 죽음 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내렸습니다.


한명회는 비록 37세까지 벼슬을 하지 못했지만, 수양대군을 세조로 만들고, 딸 둘을 모두 예종, 성종에게 시집을 보내 두 왕의 장인어른이 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나이 일흔까지 관직을 내려놓지 않자 비판 여론이 일었고, 이를 의식해 은퇴와 함께 지은 것이 바로 압구정입니다. 거물의 은퇴에 조선의 문신들은 물론 성종 또한 시를 지어 그를 축하하였습니다.


그의 정치 수완이 모두에게 호평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압구정에 ‘청춘엔 사직을 붙들고,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라는 현판을 걸었지만, 그의 죽음 후에는 이 현판의 문구를 사용해 그를 ‘젊어서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더니,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히는구나’라고 비꼬았습니다.


19세기에 압구정은 잠시 박영효의 소유가 되었는데, 그가 갑신정변의 실패 후 역적이 되어 그의 재산인 압구정도 파괴가 되었습니다. 현재 압구정터로 그 위상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압구정 현대아파트 내 비석으로 표시되어 있는 압구정 터. (출처:http://www.seouland.com)



칼과 글을 씻는 곳, 세검정(洗劒亭)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검정로 244 (종로구 신영동)


이름의 유래

세검정(洗劒亭)은 씻을 세, 칼 검으로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거사 동지인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의논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현재 세검정은 이 정자 일대(부암동·홍지동·신영동·평창동)를 통틀어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입니다.


현재 홍제천을 방문하면 복원된 세검정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정자] 88. 서울 세검정(洗劍亭)",  김동완 여행작가,  2017년 10월 19일, 경북일보)


지역과 얽힌 이야기

세검정이 있는 곳은 북악산이 어우러진 창의문 일대로, 홍제천을 내려다봅니다. 언제 정확히 세워졌는지는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가장 이른 기록으론 영조대에 이 곳을 수리하며 “세검정”이란 현판을 고쳐달았다고 합니다. 예부터 이 곳은 많은 관료들의 나들이 장소이자, 도성 밖 지역으로 군사 훈련이 많이 이뤄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세검정은 문인과 무인 모두에게 즐겨 사용되었던 정자입니다.


세검정 일대엔 왕실을 위한 물건들을 만드는 다양한 공장들이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공장이 바로 종이를 만들던 조지서(造紙署)였습니다. 물이 맑고 종이를 말리기 좋은 반석이 많은 세검정 일대에선 그래서 실록의 편찬이 끝나면 초고를 씻는 세초(洗草) 작업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세검정은 1941년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1976년 옛 기록을 참고하여 복원되었습니다.

세검정의 이름은 복원된 정자뿐만 아니라, 일대 도로명, 학교 명 등으로 우리 곁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검정은 丁자형의 3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찍은 사진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말이 뛰 노는 들판을 감상할 수 있는 화양정(華陽亭)


위치: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4번 출구 느티나무 공원 안


이름의 유래

화양정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 곳은 국가에서 사용하는 말을 기르던 목장이자 군사 훈련을 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이 화양정 짓고 애용했다고 하며, 이름 또한 주서(周書)에 나오는 ‘귀마우화산지양(歸馬于華山之陽)’ 즉 ‘화산 양지바른 곳에 말을 돌린다.’라는 부분을 따서 직접 지었다고 합니다. 현재 건국대학교가 있는 화양동이 이 화양정에서 이름을 따 지어졌습니다.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 전국 목장을 그린 이 지도첩에서 화양정을 확인할 수 있다.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지역과 얽힌 이야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기록을 보면, 화양정이 있는 이 일대를 “토지가 편평하고 넓으며 길이와 넓이가 10여 리나 된다고” 묘사합니다. 이 특성상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후, 이곳을 목장으로 삼았습니다. 목장에서 말들이 뛰노는 것을 감상하고 양육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언덕 위에 화양정을 지은 것입니다.


서울 외각, 넓은 들판에 있던 화양정은 역사 속 여러 역할로 등장합니다. 이 곳은 세조가 단종을 유배 보낼 때 전송한 곳이기도 하고, 명성황후가 임오군란 때 창덕궁을 빠져나와 잠시 쉰 곳이기도 합니다. 연산군 또한 이 곳에서 말을 구경하며 크게 놀음을 벌렸다고 전해집니다.


사람들이 단종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에, 화양정은 회 행정(回行亭 - 돌아올 회, 다닐 행)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화양정은 1911년 화재로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지만, 700년 넘은 느티나무가 그 터와 화양정의 역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화양동의 느티나무가 이 곳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출처: http://biz.chosun.com)




출처:

"화양정 터", 문화콘텐츠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10&cp_code=cp1012&index_id=cp10120181&content_id=cp101201810001&search_left_menu=2

"한명회 욕심 없는 척 말년 보낸 압구정, 지금은 간 데 없고 …", 최병식 (강남문화원 부원장),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7808667

"압구정",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94062&cid=49217&categoryId=49217

"세검정", 서울특별시 http://korean.visitseoul.net/attractions/%EC%84%B8%EA%B2%80%EC%A0%95_/2395

"세검정(洗劍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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