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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ul 03. 2020

살기로 결심했으니 상으로 케이크를 드리지요.

힘든시기를 보냈음을 축복합니다.


"힘들지 마세요~히임드흘지이 마세요호~"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에 맞춰서 '힘들지 마세요' 라며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들고 있는 룸메들을 보았다.

뭐여, 나 생일 아닌데?
언니 요즘 힘들어 보여서.
어제 특히.
원래는 너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을 틀려고 했는데 야, 엄청 음울하더라. 너 많이 힘드냐?
그런 이유로 케이크를 준비했단 말이야?


언젠가부터 나에게 케이크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무언가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죽지 않고 잘 살아있음을 축복하는 존재. 삶을 몇 번이나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놓지 않고 또 이 순간을 '삶' 혹은 '생'으로 만들었으니 축하할 만하다고. '생일'이란 단어 뜻 그대로 살아있는 날, 축하한다고.

죽지 않았으니 케이크를 상으로 줘야겠어... 나에게.

유독 힘든 소식의 콤보 공격을 맞는 나날들이 있다. 버티기 힘든 나날들이. 정말 살아서 좋은 소식을 얻게 되는 날이 올까? 살아있는 게 답이긴 하나? 답은 그냥 포기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순간들.

좋아하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시켜놓고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서 나는 절망했다.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절망과 부담으로 물들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런데도 앞으로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살라고? 너무 모순이 아닌가?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 나 2년 전에 진짜 죽고 싶었는데. 그게 벌써 2년 전인가.

정확히는 죽을 수 있었다. 운과 순간적인 망설임으로 실패했을 뿐. 그때는 내가 이렇게 무사히 졸업하고 남들 다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취업은커녕, 취업 준비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그냥 졸업 자체를 못 하고 남들 다 넘는 간단한 문턱을 못 넘고 패배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충분히 패배자인데, 내 앞에는 좋은 날은 없겠지. 그러면 살아서 무얼 하나. 

그랬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 그 순간이 또 과거가 되어 지금 내가 현재를 살고 있다. 지금은 지금의 고민으로 과거에 전부일 거라 생각했던 이슈 따윈 생각도 안 나고, 지금은 지금의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금 다 포기해버리면, 과거에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내가 얼마나 억울할까. 얼마나 내가 한심할까.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하겠지.

기껏 해서 겨우 살렸더니 한다는 게 자책과 자포자기라니.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어떻게 얻은 미래인데!

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때는 정말, 하루하루 숨 쉬는 게 벅찼었지. 지금 상황은 훨씬 뭣 같지만 내 상태는 훨씬 나아졌다.


감사합니다. 포크는 하나만 주세요.


    

아무한테도 주지 않고 저 혼자만 먹을 거니까 말이죠.

뒷말은 속으로 삼키며, 케이크를 주문한다. 홀 케이크이어야 기세가 등등해지지만, 가난한 취준생은 조각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언젠가, 힘든 날에 수고했다는 의미로 나에게 비싼 홀케이크를 선물해주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또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포기할 수 있던 것을 놓지 않고, 눈을 꼭 감고 과거로 보내버렸다. 언젠간 이 모든 미련을 명쾌하게 보내줄 수 있을까. 나에겐 한참 먼 이야기 같다. 그래도, 오늘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냈으니. 케이크 한 조각 입에 와악하고 집어넣자. 와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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