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낙오자라는 사원증으로 출근하기.

혼자 떨어진 그 인턴, 어떻게 지낸대?

by chul
무엇을 그리고 있을까요-

부서 중 유일하게 정규직 전환이 못 되었지만, 일주일을 더 출근해야 했을 때. 일렁이는 사무실 바닥을 보고 내 눈치를 보는 다른 사원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을 때. 나는 앞으로 웬만한 사람도 상황도, 나에게 굴욕감을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국어 수행평가 중, 세 문제 중 하나를 0점 맞은 사람도 있다.
세 문제밖에 없는데 하나를 아예 0점?
하하 말도 안 돼.

그게 나였다.


과제 다 내고, 시험 다 쳐도, 점수 안 좋으면 F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말도 안 돼, 과제 다 내고 시험을 쳤는데 F가 될 수 있어요?

가능하다. 지금 내가 F 받아서 그 수업 재수강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점수로 인해 최악의 결과를 갖게 되는 경우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 건 시험이 있을 때나 가능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 있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그게 내가 걸리지는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그에 대해 떠들 수 있는 상황’ , 있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왜 아무도 걸리지 않을까? 당연하다. 내가 걸리기 때문이다.



그 회사가 나에게 무엇을 주려고 작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아무도 100세 인생 동안 웬만하면 겪지 않을 경험을 했다. 물론, 굳이 그 회사가 나에게 그런 경험을 주지 않았어도 나는 남들이 안 겪을만한(평범하게 살아간다면 안 겪는, 문제는 나도 평범한 사람. 그냥 운이 없을 뿐이다) 일을 자주 겪었기 때문에, 전혀 하나도 정말로 감사하지 않다.

짜짠 지하철이었습니다! (원래 고양이는 동승하면 안 되지 않나요)

그 회사란, 내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인턴을 한 회사로, 나에게 <유일하게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은 인턴>이란 사원증을 걸고 일주일 동안 근무를 시킨 곳이다.

게다가 그 일주일 동안 다른 부서에 채용을 했다가 갑자기 취소시키는 등, 나뿐만 아니라 듣고 있던 우리 부모님의 심장까지 붙여놓았다가 떼어놓았다가 했다. 그 일주일 동안 나보다 더 마음고생을 했을 두 분의 상황을 묘사하는 건... 여기까지 하자. 더 했다간 내가 지금 그 회사로 다시 달려가서 누군가의 멱살을 잡을 것 같으니까.


어쨌거나, 아무리 갖은 꼴등이나 최악의 경우가 일상처럼 당첨된 나라고 해도, 부서 중 유일하게 정규직 전환이 못 된 인턴으로 일주일을 회사를 다닌 경험은 참 각별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번갈아 전화가 와서 숨이 넘어가게 이제 사기업은 못 믿겠으니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고향으로 와서 알바라도 하라고 했다. 그들에게도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감히 무너진 두 분에게 나를 위로해달라고 할 수 없었다. 외로웠다.


"쟤가 유일하게 떨어진 인턴이야"

"회사도 참 잔인해. 채용 취소에다가, 일주일이나 더 근무시킬게 뭐람."

이런 말을 들으며 화장실에서 없는 척을 하고, 최대한 착한 눈 모양으로 일주일을 더 다니던 나날들. 하루하루 그 굴욕에 익숙해지면서, 앞으로 웬만한 사람이나 일은 나를 흔들 수 없음을 실감했다.

그러니까, 훌륭한 성적을 받아서 정규직이 되었지만, 질투가 많았던 동기 중 하나가, 단지 내가 (못해서) 다른 상사분들의 챙김을 더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왜 저 사람만 챙겨주냐고 뒤에서 신나게 투덜거리고, 이후 내 구직활동을 어떻게든 상황을 알아내려고 나와 친했던 동기들에게 물어보고 다녔다는 사실은 술 안줏거리도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내 관심을 끌려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나와 친해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 적도 되지 못한 어정쩡한 그가 조금 안타깝다. 잘 지내나요? 실망스럽게도 저도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런 귀여운 사람의 깜찍한 짓이 나에게 영향을 주기엔 내 상황이 너무나도 굴욕적이고 절망적이었다.

요즘 무지개가 자주 떴다는데 저는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예전이야 꼴찌든 탈락이든 숨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나를 알고 있었다. 그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따위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동기들이 옆에서 채용 메일을 받고 언제 신체검사를 하러 가는지를 논할 때, 나는 다른 기업의 공고를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적어도 우스운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과 자체가 너무 우스워서 나도 웃고 말았다. 이런 건, 꼭, 나더라.

나는 오늘도 남들이 절대로 되고 싶진 않지만 누군가는 되어야 하는 상황을 가짐으로써, 나로 인해 그 상황을 회피할 수 있게 된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래서 이 경험이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냐, 전혀 아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보통 갑자기 초사이언처럼 각성해서 더 좋은 기업에 한 번에 붙는 게 일반적인 스토리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다. 나는 더 좋은 기업의 최종면접에서 떨어져서 다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말았다. 보통, 이런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걸 극복을 해야만 누군가의 과거로 받아주던데. 나는 아직 극복하지 못해서(= 더 좋은 곳으로 취직을 못 해서) 아무도 이를 내 과거로 받아주지 않는다. 내 현실로 받아들이며, 여전히 나는 거기서 끌려다니며 산다고 생각한다.


웃기고 있네. 그거 너희들이 원하는 바 아니고?


나에게 그 회사가 준 것은, 회사 경험도, 사회생활도, 좋은 동기나 상사도, 대기업 경험도 뭣도 아니다. 그 굴욕적인 상황을 오로지 겪어낸 경험이다. 그 과거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대의 복수는 내가 겪은 과거임을 인정하고, 내 시간 안으로 흡수시키는 것이다.

출근중이시군요.

인턴 이후, 당시의 부장님께 연락이 왔었다. 자리가 생길 것 같은데 오겠냐는 제안을 하려고 하셨다. 하지만 면접을 또 봐야 했고 그 회사에서 채용이 이리저리 휘둘리는걸 한두 번 본 게 아니기에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장님은 아쉬워하지 않는 내가 당황스러우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2년째 취직 못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곧 대학 졸업생들도 취업전선에 뛰어들 텐데?

(너 더 힘들어질 건데 이거라도 잡아야지 뭐 하고 있는 거냐)

그건 사실이다. 사실에 기가 죽진 않는다. 네, 뭐 그렇죠? 이거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모든 이들에게 유감스럽게도,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여전히 취업준비를 하고 있고, 면접 스터디를 하면서 조금씩 면접에 임하는 자세도 편해지고 있다. 게다가 경험 수집 잡화점의 다양한 모임을 직접 보면서 사람들의 일상과 대화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도 얻었다. 내 나이대의 사람은 이런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어떤 일이더라도, 나는 경제적 독립을 위해 시작할 것이다. 물론 나도 한때는 S나 H나 L과 같은 그 회사보다 좋은 기업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저 일을 하겠다는 마음뿐이다. 나는 어디서든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자존심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했다고 생각해도 좋다. 꼴찌로, 유일한 낙오자로 1주일을 출근했는데 내가 더 우스워지거나 초라해지지 못할 게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 엄청났던 2년을 그냥 흘러가버린 시간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 그 2년을 지내지 못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침착해졌고, 어디서 내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작에서 안주할 생각은 없다.

나는 더 배우고, 성장할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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