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폼 잡기는 이번 생에선 글러먹었다.

바다에서는 궁상만 떨다 돌아왔다.

by chul
현대 미술인 척을 하고 있는 스케치


저번 글에서는 유일하게 떨어진 인턴 이야기를 하였다. 굉장히 산뜻하게 잘 견뎌낸 것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온갖 궁상을 떨었다.

도저히 그 굴욕감과 패배감으로,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취준 기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집에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았다면 이불을 뒤짚어쓰고 밖에 나가지 않았겠지만, 당시 나는 친구들과 살고 있었고, 룸메도 있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있을 곳은 화장실 뿐이었다.

마음 놓고, 마음껏, 눈치 안 보고 절망을 하기 위해서 나는 바다를 보러 표를 끊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표는 끊지 않았다. 돌아오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능하다면 바다를 보고 마무리하고 싶었다. 비장했다기보다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망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의 삶은 그렇게 근엄하지 못했다. 근엄하게 끝을 결심하면서 간 여행에서 나는 여기저기서

웃기고 있네 똥폼 그만 잡고 얼른 돌아가는 표나 예약해라 멍청아.

라는 메시지가 읽히는 일들을 겪으며 청소년 드림으로 할인되는 ktx표를 예매했다. 아무래도 비장하게는 못 사는 인생인가 보다.

아직도 무엇이신지 감이 안 잡히시나요

취준생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상황을 한 번에 겪었기 때문에(중간에 채용 취소도 있었다), 이게 정말 나에게 일어난 일이 맞는지 왜 나에게 일어났는지 내가 왜 이걸 겪어야 하는지 그 생각에서 길을 잃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다시 현실로 빠르게 돌아오곤 하였다.

일단, 내가 간 곳은 그날 폭설이 내렸다. 나는 원래 따뜻한 남부지방 사람이기 때문에 서울에 오기 전에는 눈을 많이 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도 그렇게 큰 눈을 본 적은 없다.

그곳의 눈은 거짓말 안 하고 내 발목을 넘겼다.

바다를 본답시고, 사람을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버스를 타서 이상한 곳에서 내렸기 때문에 지도에서도 뭐 하나 기준을 잡을 수가 없었다. 고요한 시골마을 어딘가에 갑자기 내려서,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커피 한 잔을 하러 나는 눈길을 뚫어야만 했다.

하염없이 눈길을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눈보라에 갇혀서 죽을 바에야 자소서 100번을 쓰겠노라고 아무 신에게 회개했다. 자소서야 마음은 무겁지만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노트북이라는 멋진 IT기기를 두드릴 수 있다. 하지만 눈보라와 눈길과 생의 마지막을 함께함은, 최악의 경우 내 시신이 발견이 될지도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 너무 힘들었다. 진짜 더럽게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도에서도 안 알려준 길을 눈보라를 맞으며 뚫어서 목적지 카페에 왔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쉬다가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다.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방금 삶의 기로에 잠깐 놓인 것 같았는데. 어쩌면 내 마지막 음악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하염없이 걸었다. 나를 살려준(정확하게는 살기 위해 찾아간) 카페에서 사 온 여러 티와 드립백들만이 내가 그 엄청난 길을 지나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숙소의 침대에서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더욱 감이 안 잡히시죠?

바닷가의 조용한 북카페에서 커피가 아닌 에이드를 시키고 쉬고 있었다.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내게 말을 걸기 위해 노력하고 계셨다. 잠시 머뭇거리면서, 자기는 작년까지는 막일을 뛰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이렇게 고급스러운 북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사장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잠시 머리를 굴려보았다. 평일 오전, 혼자, 대충 차려입은 젊은 여자, 바닷가, 퀭한 눈. 그렇다, 나는 누가 보기에도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전화기가 울렸다. 동생이다. 동생은 5만 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엄마한테 이미 돈을 빌렸으니까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빌었다.

아무래도 더 살아야겠다. 살아서 이 사실을 꽁꽁 모아두었다가 내가 불리해진 시점에 함정카드 발동하듯이 엄마한테 일러야 삶에 미련이 없겠다.

그리고 최근에 일렀다. 나는 가족들과 같이 안 산지 오래되었기에 그 이후 사정은 모른다. 동생에게서 온 추가 연락은 없었다. 짜릿하다.


정말 허접하군요.


바다에서 돌아온 이후는 기억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취업준비 생활을 시작했다. 도서관을 다니고, 자소서를 쓰고, 인적성을 공부하고, 면접을 준비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 운동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아침에 운동을 하고 있다.(백신 맞고 나면 또 이 패턴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내 주변에서는 축하할 만한 소식이 들렸고, 지겨운 축하를 해주고 끔찍한 위로를 들었다. 이 기간을 지나면서 안 그래도 능구렁이 같다는 말을 듣는 나는 더욱 뻔뻔해졌다. 그 철판으로 이곳저곳에 다양한 지원을 하면서 머릿속은 자주 리프레시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리즈 글을 쓰고 있다. 계속 취업준비만 했다면, 한 방향만 생각했다면 아마 나는 브런치를 닫아버렸거나, 신세한탄만 하는 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완성!


여전히 대학 생활에서 ‘아싸’로 살았던 이야기가 조회수가 높다. 아마 개강 시즌이라서 그런 거겠지. 그런데 요즘은 온라인 개강인데 여전히 대학에서의 관계나 분위기가 중요한가? 졸업을 한 지 오래되어서 잘 모르겠다. 이 시리즈의 순서를 잘 못 정하겠는데, 일단 다음 글은 대학생활 이야기로 정해져서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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