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 세속적인 나.
이 시리즈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에서 ‘저렇게’를 기꺼이 담당하는 나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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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렇게’는 굉장히 고되고 외로운 일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이기 때문에 어디선가 조언을 받기도 쉽지 않다. 좋은 어른들, 선배들도 어떻게 해도 잘 안 풀리거나, 어쩌다가 잘 풀리는 나의 이야기를 듣곤 항상 난색을 표했다. 그들에게 격려나 위로를 들으면 그나마 낫지, 가끔은 ‘네가 이상해서, 모자라서’라는 이유로 방향에 맞지 않는 요상한 조언을 얻곤 했다.
최근, 아니, 10분 전까지 늪에 죽은 듯이 빠져 있다가 겨우 헤어 나왔다. 룸메와 한 방을 쓰기 때문에 너무 좁은 이층침대는 내가 평소에 관침대라고 부르곤 했다. 투탕카멘 자세여야 겨우 몸을 구겨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관침대가 진짜 내 관이 된 듯한 느낌에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커피를 사러 밖으로 도망쳤다.
우울증을 오래 겪었지만 이 생각의 비약 열차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 생각을 끊으러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스크를 쓰고 커피를 사러 나가서 카페에 앉아있는 것뿐이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올해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 2년째인데, 다들 이쯤 되면 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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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어떻게 되어있지. 세상이 나를 주시하다가 조금이라도 살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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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굴러 떨어트리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하는 선택들과 행동이 오히려 안 좋은 일로 돌아올 뿐인데 나는 살아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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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경수점의 매니저로 일하는 지금, 월말인 지금, 나는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간만에 청승 떨면서 세상 비참한 척을 하며 늪에 잠겨있으려고 했더니 현실의 일이 안전장치가 되어 나를 끌어온다. 관 침대에서 투탕카멘 자세로 끝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내가 놓쳐버린 일들, 나 때문에 괜히 기다린 사람들, 묘하게 생긴 구멍 등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거나 일어났던 내 인생에서 유독 컷 당했던 것, 오랫동안 청승 떨기. 이제 충분히 울었으니 해야 할 일을 하러 일어났다.
인턴 채용 취소 및 정규직 전환 이후, 바다에서 비관에 떨고 있었을 때, 동생이 5만 원 빌려달라는 연락으로 다시 와장창 현실로 왔듯이. 뭐 비극의 주인공도 아니고 쓰러져 있다고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서, 지겹지만 또 살아있으니까.
앞에서 언급한 생각들이 아주 큰 비약이고 편협한 사고라는 것을 안다. 우울증이 나에게 준 가장 힘든 선물이 끊임없는 생각의 비약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이야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냥, 생각보다 다시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요소가 거창하지 않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
그 순간에, 갑자기 하늘이 천지개벽하면서 ‘그래, 살아야겠어!’라고 주먹을 불끈 쥐고,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일은 없었다. 전신 마취를 드라마에서는 ‘이제 눈 뜨면 새로운 나... 새로운 인생... 시작되는 거야…!’라고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눈떠보니 마취에 취해서 자기가 해적왕이라는 헛소리를 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엄마한테 비밀로 하고 5만 원만 빌려달라는 동생의 징징 거림이거나, 오는 길에 다이소에서 고무장갑을 사 와달라는 룸메의 부탁이거나, 일정 변경을 요청하는 메세 지거나. 뭐 하나 낭만적이고 감동적인 뭣도 없이 아주 현실적인 소식들이다.
남들은 힘들 때 위로가 되는 예쁜 무언가를 뭉쳐놓던데. 나는 폼 좀 그만 잡으라는 듯이 맥이 끊기면서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야 네가 비참하면 어쩔 거냐 어차피 살 거면서. 그럼 다시 일어나서 운동하고 밥 먹고 자소서 써라, 일자리 구해야지. 목 위에 머리 달려있으니 생명체다운 일을 해라. 하는 서늘하고 콧방귀 뀌는 소리나 들으면서 다시 관 침대에서 부활한다. 할 일을 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