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대단히 거창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일의 당사자가 위인이라던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그게 나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착각을 했다. 왜 유독 안 좋은 일이, 그것도 크게, 상황이 심각하게 내게 일어나는지. 삶이 시련을 주는 이유는 그만큼 내가 성장하거나, 견딜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 주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불행을, 시련을 에너지로 바꾸지 못했다. 멋진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잘 안 되었을 때, 갑자기 각성을 해서 ‘우오오오 전부 다 짱 먹겠다’는 전투력을 자랑한다. 시련을 멋지게 극복하며 모두에게 찬사를 받고 이야기가 끝난다.
젠장, 하지만 나는 그냥 행인 A였다.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할 때, 이상한 칸에서 ‘뭐야, 대단해 저 녀석!’이라고 외치는, 작가가 직접 안 그리고 어시스트를 시켜서 그려지는 그런 행인 A. 어떤 영역에서는 평균 미만, 아주 많이 미만이기도 한 보통 사람이었다. 초인적인 인내심이나 체력 같은 건 없었다. 시련 이후 이야기까 생략되거나 끝나지도 않고 지겹게 이어졌다. 불행이 오면 자기 연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했고, 안 좋은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노력을 안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상태는 그대로였고 상황은 더 나빠졌다.
뭘까요?
아래의 두 가지를 인정하는데 올해를 다 보냈다.
나에겐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나는 전혀 대단한 사람이 아니며 무엇이든 될 수 있다. 1등도 꼴찌도.
아마 이 두 개만 일찍 인정했어도 나의 취준 생활을 조금 더 짧지 않았을까? 물론 아직 취업 준비 상태이지만, 그때 쟤네를 인정했다면 지금의 생각과 가치관은 아마 작년 이맘때쯤 생겼을지도 모른다.
교복을 입었고, 과잠을 입었을 때는 나름 1등을 몇 번 했었다. 그렇게 자신감이 찬 상태로 졸업을 하고 취업준비에 뛰어들었을 때, 수많은 서류 탈락을 인정하지 못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 졸업 프로젝트도 유일하게 상 받은 팀이고, 프로젝트도 진짜 많이 했고 인턴 경력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더 나아질지를 고민하는 게 정답이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찾아내는 헛걸음을 했다.
(진정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림이 제일 진정을 안 하고 있음)
시험의 경우는 후자가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면접이나 서류처럼 사람들이 대하고 그 원인을 알 수 없으며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은 취직은 ‘앞으로’가 관건이었다. 그런 연속적인 절망은 그냥 받아들이고 깔끔하게 보내줘야 했다. 그냥 특별한 일 아니고는 웬만한 일은 원인도 중요하지만 ‘앞’을 바라보는 단호함이 필요했다.
이게 왜 단호함이냐면, 과거를 인정하고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앞을 제대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가는 행인 A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다 먹은 초콜릿 상자를 보면서 내가 어떻게 왜 안 아껴먹고 빠르게 먹었냐며, 내 모습을 한심해한다. 이제 더 빨리 먹기 위해 편의점을 갈지 인터넷으로 많이, 싸게 주문할지를 결정하자. 뭘 선택하든 내가 초콜릿을 ‘안 아껴먹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식욕 많은 녀석아 언제 이걸 다 먹었냐, 배가 고팠나? 그냥 당이 당겼나?’는 쓸모가 없다.
철경님 맑은 하늘 말고 그릴 줄 아는 하늘 없죠? 네 저를 잘 아시네요 혹지 제 팬?
하필 주변에 잘 나가고 자리를 잡아버린 친구들이 많아서, 나와 같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나도 저들처럼 빠르게 자리를 잡는 사람이라고, 좋은 자리를 잘 잡을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단순히 ‘나는 저렇게 안돼’가 아니라, 자리를 빨리 잡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즉, 그 친구들처럼 되기에는 나에게 부족한 점이 있어서 이를 채워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전공도 성적도 학교도 같은데 나는 왜, 아니야 쟤네 됐으니 나도 될 거야’라며 나와 그들은 다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착각 속에 사는 것만큼 자책도 중독적이었다. 그렇게 내가 저지른 일이나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데 에너지를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책하는 동안 나는 모든 인정과 앞으로 해야 하는 개고생을 보류했다. 자책하면서 실의에 빠져 있어야 했고, 지금은 청승 떨 시간이었으니까. 해야 할 일과 타이밍이 쌓이고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아주 신이 났었다.
고양님은 어디를 딛고 계신가요?
그래서 지금 뭐 하고 있냐면, 행인답게 걷고 있다. 상황을 돌아보고 있다. 상태도 살펴보고 있다. 역시 예상만큼 좋지 않은 상황. 하지만 결국 걸어가든 뛰어가든 도약하든 딛고 있는 바닥을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하니까. 그렇다고 앞이 안 불안해지는 건 아니지만, 모르는 척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때보다 더 처참한 기분이지만, 왠지 안 하면 후회할 것만 같아서 다시 할 일을 찾고 만다.
여전히 나는 어딘가의 주인공처럼 불행이나 시련을 에너지로 바꾸지 못한다. 투덜거릴 뿐이다. 아닌 사람을 부러워할 뿐이다. 그리고 어딜 딛고 있는지 살펴보고, 할 일을 찾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누군가가 어떻게 지내냐고 하면 해야 할 일 잘하면서 무난하게 산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잘 살고 싶어 한다. 계속 걸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