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얼렁 뚱땅이던 걔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일이 끊이지 않고 잘 안 풀리는 주제에 인내심이 없어서 극복은 못하다 보니, 지나간 인연들은 나를 궁금해한다. 좋은 의미로 눈에 띄진 않았겠지만,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마음을 꽤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이어간 인연이 많기도 하고, 갑자기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에게 먼저 순수하게 안부를 물어보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반가운 순간들은 공유하다 보면, 이렇게 환장할만한 일이 많아서 기억에 남는 것도 꽤 나쁘지 않고 심지어 고맙기까지 하다.
(최근에 끊어진 친구에게 용기 내어 연락했는데, 서로 보험 권유 아니고 다단계 아니고 사이비 아니고 결혼 소식 아님을 확인하고 나서 지금까지 잘 이어오고 있다.)
예전에는 그 모든 연락이 이렇게 들렸다.
그렇게 못 지내던 애, 어떻게 산대?
몇 번 나의 잘 못 지냄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연락들을 받다 보니, 오래간만에 오는 모든 연락들에게 눈을 치켜뜨게 되었다. 따돌림을 시켜놓고, 성인이 되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다는 내 소식을 듣자 갑자기 왜 자기 번호가 없냐며 카톡이 오던 동창. (자기가 번호 바꾸고 나에게만 안 줬다), 자기가 취업하자 다짜고짜 취업했냐고 물어오는 동기.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가 어딜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려 했던 인턴 동기. 걱정하는 투로 그렇게 취업을 못 하니 다른 영역을 생각해봐라며 갑자기 조언하던 후배. 자신이 정말 잘 지내고 있고 만족하며 활력 있게 사는 사람들은 하지 않을 법한 ‘안심하기 위한 확인차’ 연락을 받곤 했다.
아예 대놓고 요즘은 힘든 일은 없냐며, 있지 않냐고 종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내가 잘 지내면 안 된다는 듯이, 자기 자신에게 확인시켜달라는 듯이, 위로할 위치를 달라는 듯이. 그러면 억지로 잘 산다고 포장하진 않지만, 어깨 한번 들썩이며 “그래, 연락 줘서 고마워.”하곤 적당히 끊어냈다.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나름 상상해보았다.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라고 상상해보았다.
유일하게 떨어진 그 인턴, 어떻게 산대?
왜, 그 맨날 고3 때 담 넘다가 깁스하고 산 걔, 어떻게 산대?
열심히 공부하던데 9점 맞아서 메일로 주야장천 질문 보내던 걔, 어떻게 산대?
취업 못 해서 맨날 평일 애매한 시간에 카페 와서 공부 안 하고 책만 읽던 걔, 어떻게 산대?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먼저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보란 듯이 상황이 잘 안 풀리는 주변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안심을 주는 못난 모습이구나. 나라도 그러겠다, 하고 말이다.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구나 하는 위태로운 안심을 주는 존재가 나였다.
이런 메일을 받기 전까지는.
학생, 기억나나요? 그때 나에게 직박구리를 알려줬죠. 원래 산에 사는 새인데 도시화로 산이 많이 없어지면서 여기까지 내려왔다고 알려줬잖아요. 지금 학생들 시험지를 채점하는데 창에 직박구리가 있어요. 학생은 어디서든 또 최선을 다해서 봄을 맞이하고 있음을 확신해요.
이젠 학생이 아니지만, 뜬금없이 교양 교수님께 메일이 왔다. 일본 교수님이셨는데, 나 또한 그분이 매화가지에 걸린 새를 신기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직박구리임을 알고 있었는지 교수님이랑 같이 알아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어찌 되었든 그 이야기를 했다. 바로 수업에 들어갔지만.
나는 유일하게 떨어진 인턴이고 담 넘고 깁스하며 고3 때 성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으며 전공을 못 따라가 9점을 맞아서 교수님께 징징거리고 취업 못 해서 맨날 평일 애매한 시간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이 맞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그들에게 자신이 못 하던 부분을 함께 통근 버스를 포기하면서 가르쳐준 동기였고, 급식 먹기 싫어서 담을 넘어서 걸린 주제에 선생님에게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하던 말썽꾸러기였고, 직박구리를 알려주던 학생이었으며, 사장님 라테가 제일 맛있다고 말해주던 손님이었다.
내가 그들을 역으로 궁금해하지 않는 이유가 잘 살고 있을 거란 확신 때문이라면, 잘 지내지 못했기에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 안부 인터뷰는 금방 커피 한 잔의 약속이 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별로 반갑지 않은 의도로 연락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락은 쌍방이라는 멋진 특성이 있어서 내가 끊으면 된다. 그런 사람들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기 때문에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갈 것이다. 굳이 굳이 나여서 궁금해하는 사람들 덕에 어쩌면 투덜거리면서도 휘청휘청 흥얼흥얼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