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 지내서 안심하셨군요!

잘 못했지만 잘못은 아닌,

by chul
절대로 의도한 건 아닙니다만 고양이가 생선을 보며 입맛 다시는 구도같네요


음 좋다, 잘 지내네. 잘 살고 있네.

그 말엔 진실로 된 안심과,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데 익숙해진 탓일까, 누군가가 “잘 지내고 있네!”라고 말을 하면 항상 비아냥으로 다가왔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잘 지내고 있네”는 “그러면 안 되는데 의외로?”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대기업을 갔던 날고 기는 주변인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바쁠 만도 한데 꾸준히 연락을 나에게 줬고, 전화도 주고, 그날은

“이 맛에 돈 벌지 ”하며 밥부터 카페 디저트까지 다 샀다. 그 친구는 나의 최근 근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고 만나서 구체적으로 들려줬다. 이런 일을 시작했어. 그런데 잘 맞지 뭐야, 조금 더 공부해볼까 봐. 그리고 배울게 참 많아. 사람들에게도 시스템에게도 트렌드에게도. 나 인턴 할 때 맨날 역학 분석하고 모델링할 땐 좀 불안했거든, 사실 전환될까 봐도 무서웠던 말이야 감히. 전환 안 되어서 속상했던 건 일단 혼자 안 되었다는 부끄러움과 또 취준을 해야 한다는 막막함이었지 그 회사나 일에 애정은 없었거든. 그런데 너는 무슨 일을 해? 진짜 내 앞에 신입으로 그 기업을 간 애가 있다니 너무 멋져. 조잘조잘.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친구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하지만 애정은 숨기지 않고,

“잘 지내네. 좋다!”

툭, 던지고는 케이크 마지막 조각을 먹었다. 이 자식이.


하지만 무려 하늘을 나는 고래였다!


20대 초반에 ‘그렇게’ 되어버린 상태와 상황에 대해서 비난받았을 때는 너무 무섭고 외롭고 억울했다. 나라고 수능을 망치고 싶지 않았으며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여러 상담을 받았던 게 아니다. 왜 그렇게 사냐는 지적을 안 받으려고, 그들을 납득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성격 좋은 척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척하고, 안 좋은 성적을 신경 쓰지 않는 척하고.


지금은 글쎄, 자의식 과잉 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들도 불안했던 게 아닐까? 지금까지 정답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의 존재가, 행보가 의외여서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나와 같은 사람들을 탐탁지 않아하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감과 자존심’이 굉장히 강했다. 항상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납득’을 요구하거나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말도, 그럼에도 잘 지내는 모습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한 번은 그중 한 사람에게 물어봤다. 같이 지내는 동안 다른 사람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고 누가 뭘 더 잘하는지 감시하고, 특히 나는 어떻게든 무시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정확히는 나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을 주려고 노력했다.

잘하시잖아요,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초조해했나요?
제 성격이 좀 그래요.
아 성격적 문제구나.
제가 좋아하는 느낌의 구름이 그려지는 브러시를 찾았어요. 하지만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요.(위치를 기억함)

그래, 인성이라면 어쩔 수 없죠. 머릿속에서 그는 ‘그런 성격인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왜 꼭 문제는 너만 일어나냐’라고 할 때마다

왜, 썰 풀 거 많아서 부럽지? 나랑 술이나 커피 한잔 하면 엄청 웃길걸? 하지만 너는 내 술자리에 절대 안 초대할 거야. 말이 예뻐야 부르던가 하지.’라며 웃고 만다.


채용 취소가 된 것을 내 역량의 부족이라고 말했던 윗사람 덕에 한동안 그 트라우마에서 나오지 못했다. 맞아, 인턴 전환이 되었더라면 , 그전에 그 수많은 면접에서 붙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이 회사에 오기 전에 무언가 결론이 났더라면, 내가, 부족해서, 모자라서, 나 때문에.


사실, 아직도 못 헤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난 잘 못 했지, 잘못하지 않았다. 내가 부족해서 그 회사에 준 손실? 없다. 오히려 다른 동기들은 내덕에 정규직 전환으로 취직했다. 나 없었으면 그중 누군가는 떨어졌을 테니까. 그래 너희는 거기 잘 있어라 나는 내 길 또 잘, 그곳은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날아갈 테니.

그리고 취소가 될 채용을 한 그 허접한 인사팀이 문제 아닌가? 꽤 큰 기업이었는데 한때의 직원을 그렇게 농락한 걸 보면 지원자들에겐 얼마나 대충 일지. 그러고 보면 면접 때도 그 인사팀에게서 ‘마음에 안 드는데 붙여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회사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지켜보진 않겠다. 시간낭비니까. 내 인생에 그 어떤 비중도 차지하게 두지 않겠다.


여러분은 어떤 하늘에서 어떤 하늘을 바라보고 계신가요?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 어디에 와있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인드맵으로 정리 중이다. 요즘 좋은 회사에 들어가도 40대쯤 퇴사하고 또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고민한다던데, 그게 남들보다 20년쯤 일찍 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경제적 능력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좋은 회사 경력도 없는 순수 백수지만. 언젠가 다 할 고민이다.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하는 사람이니까 알 바 아니다.


“너는 잘 살고 있어”

엄마와의 통화는 항상 이 말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내가 불안할까 봐 안심을 준다는 목적도 있겠지만, 아주 솔직하고 필터가 없는 엄마를 2n년동안 겪어온 나는 이 말이 진심임을 안다. 엄마는 진심으로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론 내렸다. 나중엔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잘 산다고 나 스스로 믿는 사람이 되어야지. 굳이 굳이 삶의 의미를 찾자면 그게 내 삶의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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