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되어버린' 삶에도 감독은 있다.

어차피 내일은 또 온다.

by chul

원하지 않는 삶은 자주 연출되곤 하지만

이 매거진 글들은 삶이 그닥 좋지 않게 ‘연출되어버린’ 내 이야기들이다. 내 안부는 보통, “뭐, 그렇게 됐네”라고 마무리된다. ‘그렇게’ 되면 죽는 것처럼 사회가, 세상이 우리에게 말해줬지만 그렇게 사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죽어도 ‘그렇게는’되기 싫었던 사람들에겐 ‘죽을 일은 아니군’이라는 의아함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을 겪어도 다음날은 오는군.’이라는 맥 빠지는 희망을 주고 싶다.



이번 주는 버거운 한 주였다. 자신 있던 회사들, 가고 싶었던 회사들의 서류가 우수수 떨어졌기 때문이다.

복잡한 건 저리 치워버리고 네모들만 남은 황량함


이럴 때마다 나의 삶인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상황들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그 일을 준비해오고, 집안 사정이 어떻고,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세상은 나를 튕긴다. 멋진 한자가 적힌 장기말인데 알까기 판에 걸려서 제 기능을 못하고 그냥 손가락에 의해 튕겨져서 소파 밑으로 굴러간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를 하고 있다.

그냥 흑백인 바둑알 중 하나일 수도 있는데 대단한 한자를 가졌을 거라는 과대평가.

그리고, 판 위에는 서 있지만 외부에 의해서만 앞으로의 일생이 정해진다는, 나 자신이 장기말일뿐이라는 과소평가.

건물답게 창문도 그려줍니다

그저 삶이 연출되어버렸다. 그렇게.

스펙터클한 삶을 위해 도전한 사람이 있고, 일정하고 안정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처럼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일반적이지 않은 삶이 연출되어버린 사람도 있다.

‘왜 항상 이런 일은 나에게만.’

인턴 중 유일하게 전환되지 못 한 사람이 되었을 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수식으로 인생이 획획 바뀜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멀쩡한 척했지만, 내내 의심하면서 올해를 지냈다.

내 삶이 잘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날 선택해야만 한다고. 그렇게 삶을 송두리째 나를 제외한 모든 존재들에게 맡겼다. 또 어차피 알아서 연출되어버릴 테니까. 내 노력이나 행동, 선택과는 상관이 없이.

역시 색은 꽉 칠해야 조금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이게, 아니었다.

장기말이었으면 이리저리 배치되든 그대로 있겠지만, 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사람이다.)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곳에 묶여있을지 일어날지는 나만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현실이 가혹할 정도로 무거워서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아예 영향이 없진 않더라.

비참해할지, 머쓱해할지 정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전부 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큰 흐름 정도는 나의 선택들이 모여서 밀어줬다.

지금 여기까지 온 여정을 기억나는 대로만 적어봐도, 내 선택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울로 오고 싶어서 서울에 있는 대학만 지원했고, 복학을 결심했고, 시험이 아닌 취업준비를 선택했다.

여러분은 밤과 낮 중 언제 내일은 맞이하시나요?

그리고 어차피 살기로 마음먹었으면, 앞으로의 일들이 내 손에 어느 정도는 달렸다고 그냥 믿는 게 좋다. 앞으로 몇십 년은 살 텐데 계속 절망하는데 에너지를 쓸 생각만 하면 벌써 질린다.

그러니까 선택하고 행동하자. 나는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테니 희망 가지고 살자는 글을 아직은 쓸 수 없다. 하지만, 이 얘기는 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아니다. 더 나빠진다. 나는 그대로지만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면서 간극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 나빠지기 싫으면 뭐라도 하는 게 좋다. 자기 연민은 ‘가엾고 하찮아서 귀여운 나...’ 정도로만 하자.


집에만 있으니 생각이 많아져서 카페로 나왔다. 하루에 글 하나는 완성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했다. 또 모르지, 지나가다가 이 글을 본 누군가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지! 그렇게 보면 우리는 타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누군가에겐 내가 자신을 제외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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