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살만하니까 사는 거 아니겠어요?
어? 너 심리상담받았다고? 정신건강의학과 이력 있다고?
어 근데 너 왜 안 우울한? 우울증이나 여러 안 좋은 상황 혹은 상태에 다다랐을 때, 불쌍해 보이지 않은 나를 보고 의외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다녔으니 맨날 눈빛도 안 좋아야하고, 심리상담 들은 거 보니 인간관계 파탄난 것 같은데 왜 친구가 있어서 놀러 다니지? 아웃사이더라서 대학생활 망했을 텐데 왜 잘 지내는 거야? 취업도 몇 년째 못 하고 간절해야 마땅한데 뭘 멀쩡하게 이것저것 분석하면서 취준을 하지?
우리가 얼마나 걱정을 하는데.
위에 적고 보니 참 이것저것 일이 안 풀리긴 했다. 하지만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나의 불쌍은 위로를 해 주는 그 순간일 뿐이겠지만 나는 그곳에 남아있다. 우울증이 심했을 때나 여러모로 주변 일이 안 풀려서 너무 힘들었을 때, 그 시기만 버티면 된다며 아침이 오기를 이불 밑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아침은 온다. 문제는 아침은 오는데 나는 잠을 못 자고 퀭한 눈 그대 로거나 속이 안 좋은 상태로 남아버리는 것이다.
최선은 잠을 푹 자는 거지만, 그것이 안 되면 책을 읽고 자려고 하거나 따뜻한 우유를 마시거나 샤워를 하거나 안대를 끼거나 하다못해 양이라도 세어야 하는 게 삶이다.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버리면 곤란하다. 진짜 시간만 지나가지 나는 아무것도 안 변하니까 상황은 더 나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나는 약을 처방받았지만, 운동을 했고, 사람들을 만났고, 대학생활을 최대한 잘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냥 자소서를 아무렇게나 넣는 게 아니라 내가 붙을 확률이 높은 공고들을 분석했다. 발버둥이고 안전장치이고 떨어질 때 붙잡진 못해도 그나마 속도를 줄여줄 수 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심는 행동이었다.
우울증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더 우울이 깊어져서 수습해야 할 일만 늘어난다. 단순히 우울증인 사람들에게 생산성을 추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겨우 밥을 먹었다고 치자. 그러면 설거지 거리가 있을건데, 우울하다. 몸이 무겁다. 그래서 누워서 잠을 잤다. 눈을 뜨면 물에 불리지 않은 그릇은 씻기 힘든 상태가 되어 있고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 주변에 파리가 날아다닐 것이며 어제였던 분리수거날을 놓쳐서 많은 쓰레기들은 일주일은 좁은 방 안에 더 있어야한다. 더 우울해져서 침대로 들어가 입과 코를 막고 다시 잠을 청할 것이며 그렇게 당신의 공간과 공기는 잠식된다.
그러니까, 그걸 아니까, 겪었으니까, 누워있다가 입에서 온갖 욕을 하면서 설거지를 한다.
'멀쩡함'은 그렇게 완성된다. 사람들이 으레 짐작하지 않는 깨끗하고 멀쩡한 상태가.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자신의 한탄을 주고받는데,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해, 너무 속상하지~ 열심히 했는데 안되고, 너어무 힘들겠다. 나는 바로 졸업 후에 취직했거든~상상도 못 하겠나 취준 기간.
분명히 걱정을 해주는데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쾌함이 일었다. “네가 걱정해 줄 일은 아니야”가 최선이었다. 굳이 굳이 나를 이해하라고 교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위로를 해 주면서 그 지인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는 착각에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착각이지만. 착각은 자유니까. 그대여 행복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심리상담을 받고 취준 중인 나는 “걱정된다, 근데 왜 이렇게 목소리가 좋니?”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마치 풀 죽은 모습을 바란 것 같다면 내 착각일까.
하지만 착각은 자유니까. 그대여 내 안에서 재수 없는 사람이 되세요.
우리는 힘든 상황에 있을 때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시간이 지나가면 괜찮다는 격려를 받는다. 위로해 주는 사람들은 알아서들 하시고 위로받는 사람의 일상이 어떤지 생각해보면. 또 그 안에서 잘 지내고 있다. 잘 못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잘 지내는 사람도 있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을 수도 있고 그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찾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자기 인생엔 그렇게 판단을 보류하면서 남의 인생에는 성급하게 판단을 내린다. 물론 잘 모르니까 그럴 수 있지만, 가끔, 아니 자주, 남에겐 그 판단이 실례가 된다.
어떻게 살아, 힘들어서 어떻게 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깨를 으쓱한다.
살만하니까 아직 살아있는 거 아니겠어요?
살아 있으면 더 나빠질 수도 있고 더 좋아질 수도 있고 발버둥을 칠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고 개선할 수도 있다. 난 아직 살아있고,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항상 진심으로 고민하고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