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으로 환장하는 삶을 잘 살아가는 팁.

멋지게 말했지만 별 거 없습니다.

by chul
요즘 맛있는 홍차를 얻어서 일단 컵을 그리긴 했는데 이 다음 뭐하지
어이쿠 환장하겠네.

아마 환장이란 단어만큼 내 인생에서 자주 쓰인 단어는 없을 것이다. 특별이라는 좋은 단어보다는 특이라는 약간 미묘한 뉘앙스가 어울리는 인생을 살면서, 잘 지내기 위한 나름의 팁이 생겼다.


첫 번째, 잘 혼난다.


잘-에는 자주, 라는 뜻도 있지만 good이란 뜻도 있다. 나는 혼나는 걸 잘한다. 정말 잘 혼난다. 혼날 때 나름의 반성과 사과를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바꾸어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지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기가 많이 죽지 않는다. 물론, 내 나름대로는 기가 죽는다. 하지만 그냥 어느 정도 죽을 뿐이다. 너무 기가 죽어서 아무것도 못 하면 결국 피드백을 받으나마나인 상황이 되어버리니까.


으아니 첫 화면과 다른그림? 아닙니다.


야, 누가 너처럼 부장님한테 불려 가서 안 좋은 말 들었는데 그렇게 회사 잘 다닐 인턴이 어디 있겠어?


차장님, 아니에요. 제가 무슨. 저 정말 많이 기가 죽었어요. 일단 나에게 시무룩한 모습은 보이질 않았어. 사수인 나에게 안 보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거의 눈치 못 챘을걸?

웬만한 일에 서투른 사람은 잘 혼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과몰입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나의 잘못과 앞으로의 방향을 위한 쓴소리라면 진지하게, 반성하면서, 송구해하면서 듣되 그 이상을 넘어가서 비꼬거나 인격적인 모독이 날아오면 ‘어쩌란 말이냐’ 하며 속으로 트위스트를 추면 된다.

꼼꼼하지 못해, 덜렁거리는 습관이 있어, 이런 말은 새겨들으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기억한다.

하지만 그래서 네가 안 되는 거야, 앞으로 어쩌려고 이래?, 이런 말은 들었다고 해서 앞으로 잘 되는 일만 보여주려고 아득바득할 필요는 없다

달빛도 있고 티백도 있으니 넘 진한 차가 우려지는게 아닐까


둘째, 남들처럼 되지 않음을 인정한다.

나는 유독 ‘남들만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남들은 이렇게까진 안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매몰되면 그 어떤 노력도 할 수 없다. 결국 이 생각도 자기 연민이 바탕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자기 연민만큼 매력적이고 중독적이며 파괴적인 건 없다. 그만하자.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자.


노력이나 애쓰는 정도가 결과에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는 애를 쓰고 노력할수록 더 결과가 처참해지곤 했다. 아마 마음속에 부담이 없어야 최선의 효율을 내는 타입인 것 같은데 불안이 많은 사람이기에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같이 취준을 하던 친구가 대기업에 붙으면서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이번에 너무 기대를 안 했거든 그래서 서류도 그냥 4개? 정도 넣었는데.

덜컥 됐더라.


딴 얘기이지만 에너지가 있는한 구름 마감을 깔끔하게 하려고 합니다. 네, 솜사탕 아닙니다.

거의 몇십 개는 넣고 인턴 2개월 경력하나 있는 내게 굉장히 충격을 주는 한마디였다. ‘남들은 그렇게까진 안 하는 거 같은데’라는 생각은 우울증이 심했던 때부터 내가 제일 자주 읊조리는 말이 되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상생활 그 자체가 굉장히 버거워진다. 햇빛이 내 눈에 들어오도록 바뀌어도 나는 그 자리에 꼼짝없이 누워있다. 처음에는 과제를 제 때 내는 것부터 점점 수업을 제시간에 가는 것, 등교, 걷기, 식사, 청소까지 점차 모든 일에 목숨을 걸고 행해야만 했다. 대학생활, 다들 별 노력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는 밥 먹을 때도 온 힘을 다해서 미션 수행하듯 해야 하니, 억울했다. 그렇게 에너지를 모아놓아서 할 일도 딱히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억울함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하지 않은 일은 나중에 내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게 만들었다.

결국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해야만 했던 일이다.

남의 노력의 세상과 내 노력의 세상은 아예 별개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저 친구가 자신의 20만큼 했다고 해서 나도 내 20만큼 해야 한다거나, 절대적인 가치로 (예를 들어 문제집 3권이라는 정량) 보더라도 그 결과가 다를 수 있다. 다른 사람이니까.

하지만 본의아니게 너무나도 솜사탕같았다!

마지막으로, 온전히 자기편이 되어야 한다.


무슨 일이 망쳤을 때, 나는 항상 남들을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수학 모의고사 때, 첫 문제에 막힌 후로 모든 문제가 보이지 않아서 마구 마킹했던 순간의 생각들이 기억난다. 그냥 심호흡을 하고 풀 수 있는 거라도 최대한 풀어서 정답률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지만 당시 나는 이런 걱정을 가장 먼저 했다.


저번 모의고사 때 100점 맞았는데 갑자기 20점 나오면 다들 뭐라고 생각할까? 엄마는 얼마나 실망할까? 아빠는 또 나를 후벼 파는 욕을 하겠지.


인턴 전환이 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다른 사람들 볼 면목과 실망했을 부모님을 어떻게 위로할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들로 인한 후유증에 시 달리는 건 나 혼자다.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위로 못 받을 수도 있다. 당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내 소식을 듣고 나와의 모든 연락을 끊으며 그전에 나는 비웃는 사진을 보냈다.

내 편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아니라, 일단 나를 1순위로 편을 들어야 한다. 나는 나의 편이 당신은 당신의 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더 맛있어진다구요

이번에 새로운 취업 스터디를 들었는데, 세상에 다들 졸업 전 대학생들 혹은 중고 신입이었다.

순수 취업 준비만 2년을 한 나는 또다시 움츠러들면서 내가 정말 좋지 않은 케이스이긴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취준 고민을 주고받고 싶었는데 여기서도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역할을 맡게 된 것만 같다. 이런 잘 안 풀리는 생활, 나름의 기준을 잡고 살아가다 보면 그래도 고꾸라지거나 부서지더라도 함부로 끝은 맺지 않을 수 있다. 아직도 환장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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