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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Sep 16. 2024

추석에 면목이 없어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는 왜 즐거움조차 권리와 서열로 나누는가?

명절이 괴롭다는 점에서 한국은 참 기이하다. 그중, 나는 추석 때가 오면 아무리 아직 여름티가 나도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모든 게 시작하기 직전, 정해져 버린 직후인 연초 설날과 다르게 9월 말이라는 애매한 추석은, 가족에게 얼굴을 들이밀 사람과 들이밀 수 없는 사람이 정해지길 마련이다.

이렇게 갈 수 있는 사람들 옆에 죄인처럼 있는 기분을 아는가?

이 기간에 혼자 도서관에서 편의점으로 식사를 때워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내려가봤자 그놈의 오지랖들 사이에서 "대학은? 취직은? 시험은? 결혼은?"을 당할 수가 없는, 아직 무언가를 준비 중인 사람들은 애매한 종족이 되어 남아진다.

알바임?

아직 생각이 물렁했던 나는 한때 그 모든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좋아서 만나려던 가족들, 친척들이 내 위치에 따라 만나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어떤 것을 얻지 않았다면' 만날 필요가 없었다. 괜히 간 사람이 된 셈이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가장 가족 같지 않은 세속적인 이유(그것도 당사자가 가장 힘든 외부 상황으로)로 서로를 괴롭힐 수 있었다.

어쩔ㅋ


혼자 남겨진 추석에 나는 오히려 좋은 추억들을 쌓았다. 내가 뭘 얻어야만 날 사랑해 줄 사람들이라면 그들에게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었다. 용돈이나 내놔요.

한국이 그렇게 좋아하는 정상성이 적은 추석을 보낸 이야기들을 하나씩 해보자.



1. 반수 하던 추석

이젠 슬슬 수능 냄새가 느껴진다. 수능을 두 번 이상 쳐본 사람들만 느낀다는, 아무리 아직 공기가 따뜻해도 냉정한 시험의 냄새가 느껴진다. 나는 흔히 말하는 현역(한 번의 수능으로 대학교 입학)이었으나, 더 좋은 대학교를 갈 수 있다는 착각으로 휴학을 때리고 반수를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만 아는 상태로. 그리고 대차게 실패했고, 수능을 치면서도 그걸 느꼈다.

나에게 이런 딱지가 붙은듯했다.

아무도 없는... 아니 없어야 했는데 여전히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나마 유일하게 열려있는 도서관 식당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꺼냈다.

당시의 나는 하정 작가님의 \<이런 여행 뭐 어때서\>(이건 구판이고 신판은 제목이 바뀌었다.)란 책에서 닭수프를 먹는 장면을 좋아했다. 그 장면을 읽으며 3500원짜리 구내식당 가락국수를 먹으면 나도 따뜻한 국물에 위로를 받으며 몸이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2. 외톨이들이 모인 추석


취업준비기간이 몇 번씩 어그러지며 추석에 남았다. 같이 사는 녀석들과. 하지만 우리는 기죽지 않았다. 미리 추석 전 모둠을 예약했다. 큰 식탁에 모여서 누구는 전을 굽고(물론 이미 전은 만들어져 있고 데우기만 하면 된다.) 누구는 치킨을 시켜왔고, 누구는 소주와 맥주를 깠다.

엠지들의 추석상

우린 전부, 집에 가기 뭔가 좀 그런 성인들이었다. 취준생, 고시생, 자퇴생, 아니면 뭐... 그냥 명절에 집에 가기 힘든 집안일이 일어난 녀석들.


늘어지게 먹다가 한두 명씩 낮잠을 자러 갔고,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슬리퍼를 끌고 앞집의 투다리로 간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낄낄거리며 집으로 온다.


술 마신 담날은 와플이지

우린 추석 때마다 그렇게 꼭 한 번씩 모이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번엔 같이 모일 곳이 없으니, 따로 사는 녀석들은 즉석떡볶이집으로 모인다.




추석은 잔인하다. 아직도 가부장적인 노동현장을 지켜봐야 하고, 다들 말에 칼을 쥐고 있다. 이쯤 살다 보니 누군가의 인생은 task가 아니라, 흐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좋은 대학 간 사람이 평생 좋은 일만 있지도 않고, 누군가의 일이 풀리는 때는 다 다른데. 무엇이 영원할 줄 알고 서로 존중받을 가치와 서열을 정하냔 말이다. 그걸 잘 아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말이요.

이젠 분위기만 봐도 파토날 타이밍을 판단 가능

모인 김에 맛있는 거나 드세요, 뭐라 하시든 저는 재밌게 추석을 보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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