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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t Cracker Jun 27. 2024

남해 강의 후기

남해에 있는 중학교에 강의하고 왔다. 

자동차로 이동하면 편도로 대략 4~5시간이 걸리고 버스를 타면 6~7시간이 걸리는 거리. 그러니까 평소 같으면 일정, 컨디션, 비용 등 뭐로 보나 가기 어려운 곳이었는데, 흔쾌히 다녀왔다. 일단 남해라니까 겸사겸사 여행하기 좋겠다는 계산이 없지 않았고 거기에 더해 학교가 강의를 의뢰하게 된 배경이 흥미로웠다. 학교 중학생들이 만든 페미니즘 동아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남자 페미니스트를 흥미로워하며, 어떻게 활동하게 되었는지, 받고 있는 편견과 오해는 없는지 등을 묻고 싶어 한다고 했다. 


대체 이 시국에 어떻게 페미니즘 동아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너무 궁금했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청소년의 상황도 너무 잘 알겠어서 간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강의하기 30분 전, 짧게 동아리 구성원분들과 차담을 가졌다. 동아리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학교 상황은 어떠한지, 어떤 고민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듣는데, 정말 우리가 하고있는 고민, 경험과 놀라울만큼 크게 다르지 않아 씁쓸하면서도 신기했다. 이를테면 “남자는 군대에 가니까”라고 말하며 성별에 따라 다른 역할을 부여하는 걸 당연시 여긴다거나 재미를 빌미로 흘러넘치는 차별, 혐오적인 발언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등의 고민. 정말 어디를 가나 너무 비슷한데 또 매번 성가시게 우리를 따라오는 말들에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올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 때 정말 오랜만에 목이 아프게 소리쳤다. 

동료 청소년에게 힘 실어주고 차마 못했던 이야기도 대신 다 해주고 싶어서 절박하게 이야기 하고 왔다. 너무 좋았는데 또 한편으로 시간도 짧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정도가 다른 다수 인원을 한 번에 상대해야 하다보니 아쉬운 점도 많았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면, 너무 쉽게 문제를 단정짓지 말고 같이 질문 던지자. 우리가 같이 살기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하자.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반 농담삼아, ‘강의는 기세!’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 간절한 기운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의가 끝나고 동아리 청소년 분들이 찾아와 초롱초롱한 눈으로 감사를 표했다. 

사실 그들보다 내가 더 감사했다. 기운 빠지는 뉴스와 반복되는 강의 일정에 약간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차였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내가 필요로 했던 게 이런 자리와 사람들이었음을 새삼 떠올릴 수 있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한동안 외롭다고 노래를 불렀다. 동료도, 선배도 없는 줄 알고 망망대해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 역시 그간 활동한 사람들이 터닦은 곳에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거라는 걸 알았고 이제는 투덜거릴 때 아니라 내가 그 빚을 갚으며 함께 활동할 토양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이런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많이는 어렵고, 1년에 세 네 번 정도, 지역 무관하게 학교, 시민단체 등 활동교류가 필요한 곳에 남함페 동료들과 함께 방문해서 교육이나 워크샵 등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함께 만들어보면 좋겠다. 비용이 고민되면 개인적으로나 단체 차원에서 여지를 만들어 볼테니 제안 줄 수 있는 곳 있다면 주저말고  이메일(bomgks@hanmail.net)로 언제든지 연락 환영이다.



어딘가에서 운동이 주기를 가지고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생각해보면 대충 2015년 쯤, 페미니즘 리부트가 있었고 확실히 지금은 한참 뜨거웠던 때만은 못한 것도 같으니 어쩌면 지금이 이번 주기의 막바지 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흐름이 대충 90년도라 치면 한 20년 정도가 그 주기려나. 그럼 다음은 2035년 쯤이다. 좀 막막해도 벌써 반 정도는 온거지 싶기도 하다. 또 모르지.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그 시기가 두어시간이라도 당겨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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