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그간의 디지털 페인팅을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특히 어떤 부분에서 손 그림과 디지털 페인팅이 차이가 나는지를 느껴보는 것이 참 재밌었습니다. 제가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세 가지가 있었는데요.
1. 너무 쉬운 수정 undo (바로 이전 단계로 돌아가는 기능)
2. 확대 축소 (이 중 축소보다는 캔버스를 주로 확대하여 잘 안 보이는 영역까지도 묘사함)
3. 레이어 (작업마다 레이어 층을 다르게 만들어서 밑의 층 작업에 영향을 주지 않고 추가 작업을 함)
바로 위의 세 가지 기능들이 손 그림과는 다른 디지털 페인팅의 장점이자 때로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입니다. 바로 이전 단계로 돌아갈 수 있는 undo 기능으로 한 라인을 제가 마음에 드는 라인이 나올 때까지 긋고 돌아가고를 무한 반복한 후, 하나하나를 확대하여 필요가 없는 영역까지 묘사를 하고, 오브젝트 하나하나마다 혹은 주요 작업마다 다른 레이어 층을 만들어서 작업을 하는 식이죠. 이런 식으로 계속 작업들이 쌓이다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겁니다. 다음의 그림들이 그런 식으로 작업한 그림들입니다.
당시 웹툰의 배경처럼 선명한 느낌의 디지털 페인팅을 시도하였고 모두 평균 3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그리고 나면 뿌듯함도 있지만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써서 당분간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아 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반 스케치에 대해 처음으로 접한 후 아직 손 그림은 엄두가 안 나던 때에 위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스타일로 그려보고자 했던 그림들마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 결과물도 뭔가 많이 부자연스럽더라고요.
손 그림을 시작하고 보니 수정도 없이, 확대 축소도 없이, 레이어를 쌓는 것도 없이 그려가게 되었고, 이는 정말 디지털 페인팅으로 그릴 때와 비교했을 때 놀랄 만큼 시간과 에너지가 단축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디지털 페인팅을 잊고 있었죠.
몇 달 간의 시간이 흐르며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접하고 너무 재밌게 연습을 하고 있는데 문득 디지털로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해보면 어떨까? 궁금 해졌습니다. 보통 출장 중에는 항상 아이패드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렌트카로 이동 및 비행 중에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으로 라인 작업을 한 후 간략히 채색을 해봤는데요. 실제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하고 채색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거예요.
'어? 시간이 이거밖에 안 걸린다고?' 워낙 디지털 페인팅의 오래 걸리는 시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갑자기 왜 시간이 단축된 거지?' 의아했지만 이내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이기에 undo기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전혀 확대 축소를 하지 않았으며 레이어는 펜 레이어와 채색 레이어 둘로만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느끼고 계시죠?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undo를 사용하지 않고, 확대 축소를 하지 말고, 레이어를 최소화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디지털 페인팅 또한 손 그림과 비슷한 환경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페인팅의 기능을 일부 제한하지만 이를 통해 얻는 것이 오히려 많아집니다. 사실 디지털 페인팅의 수정 작업에는 불필요할 수도 있을 정도로 세세한 수정 작업이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예로 너무 작아서 보는 분들이 신경도 안쓸 영역을 굳이 확대하여 디테일을 파기가 쉽습니다. 그것도 수없이 수정하면서 레이어도 여럿을 사용하면서요.) 위의 경험을 한 이후부터 이전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에 디지털로 어반 스케치를 하는 것은 애매하겠다고 여겼던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펜의 느낌이나 수채화의 느낌과는 또 매우 다른 매력을 지닌 디지털 어반 스케치는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하고 드로잉 어플 내에서 붓이나 컬러 선택도 폭이 넓기 때문에 다양한 활용이 가능했습니다. 좋은 드로잉 어플들 중에 무료 어플들도 있고요.
[워크샵 쉬는 시간에 보이는 풍경 어반 스케치 - 2017.11.17]
[가족을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 어반 스케치 - 2017.11.19]
2019년 토론토를 거쳐 몬트리올에 다녀온 여정에서도 디지털 어반 스케치가 아주 유용했는데요. 주요 관광지에서 펜과 물감 사용이 어려운 경우에도 스마트폰 하나로 현장에서 어반 스케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토론토~몬트리올 여정 중의 스마트폰 스케치들 - 2019.07]
디지털 페인팅을 하실 때 최대한 손 그림의 느낌을 내려고 하시는 경우도 많은데요. 디지털 기기로도 참 멋진 손 그림의 느낌을 낼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날로그는 아날로그만의, 디지털은 디지털만의 매력들과 특징들이 있으니 꼭 손 그림의 느낌을 내려고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디지털 기기 또한 펜이나, 수채물감, 붓처럼 다양한 그림 재료 중 하나로 여기고 그 매력을 즐기시면 좋겠어요. 특히 디지털 기기만이 가진 매력적인 광원 효과들이 있으니 이들도 다양하게 실험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페인팅이 손 그림보다 더 낫다거나 혹은 그 반대의 주장을 하시는 경우도 접해 봤습니다. 각각의 이유들에 대해서 모두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는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 존중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모두 장점도 단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둘 모두 매우 매력적이며 아름다운 작품들을 그리실 수 있습니다. 보다 자기에게 맞는 재료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또한 어떤 과정을 통해 그릴 때 더 즐거운지 등에 의해 선호도가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간혹 디지털 페인팅도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펜이나 수채화로 그릴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에 빠져보게 됩니다. 디지털 페인팅을 위한 기기와 어플 추천에 대한 문의도 받게 되는데, 요즘은 디지털 기기들이 매우 좋아 웬만한 기기에서는 모두 디지털 페인팅 작업이 가능합니다. 다만 스타일러스가 없는 기기의 경우 표현에 제약이 있을 수 있기에 본인이 가지고 계신 기기에 맞는 펜형 스타일러스를 구매하여 사용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디지털 페인팅에 주로 사용하는 기기들과 어플들을 참조하시도록 아래에 남겨봅니다. 유료 어플은 따로 표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