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시(perspective)'는 그림을 그릴 때 참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주제이죠? 그러나 일부러 매우 복잡한 투시로 그리지 않는 한 그림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투시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전에 지난 글의 눈높이 투시를 확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높이 투시가 확정되었다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어떤 장면을 정했을 때 우리가 어느 높이로 서 있는지의 눈높이와,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위치 라인이 확정되어 더 이상 시선의 관찰에 의해 변경되지 않고 고정된 1점 투시가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이 눈높이 투시를 따르게 됩니다.
수채화 마스터님들이 거리 풍경을 그린 그림들을 살펴보면 단순하게 표현된 행인들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죠? 이는 단지 인물을 넣어 그림을 활기 있게 만드는 요소 외에도 인물 크기로 알 수 있는 그림 전체의 스케일에 대한 정보와 눈높이 라인을 설정하여 투시적인 가이드를 얻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보더라도 그림들에 유독 정면을 향하거나 반대로 뒤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들이 많은 것이에요. 처음에는 이렇게 그리는 것이 편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다가 수채화 마스터님들이 단지 그리기 편해서 인물을 그렇게 배치할 거 같지는 않아서 그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많은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정면, 혹은 반대로 위치된 단순화된 인물들(figures)]
그런데 이 부분은 제가 직접 거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이유는 그림에 현장성을 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본인이 그 거리에서 실제로 거닐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죠. 정면으로 위치된 인물들은 바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인물들이고 반대로 위치된 인물들은 내가 걷고 있는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는 인물들인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걸어가며 찍었던 밑의 사진에서 행인들의 위치는 정면 방향이거나 그 반대의 방향입니다.
이렇게 인물들을 배치하면 확정한 눈높이 투시가 어디인지도 명확해짐과 동시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가 단지 간접적인 관찰자로 그림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직접적인 행인으로 존재하기에 그림의 현장감이 확 올라가게 됩니다. '어딘가 있을 그런 곳'이 아닌 '지금! 내가 바로 경험하고 있는 곳!'이 되는 것이죠. 그림을 감상하고 계시는 분들도 그리는 사람과의 시선을 공유하기에 그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하는 어떤 힘이 생깁니다.
눈높이 투시를 확정하고 이를 그림에 적용하기 용이하게 그림 안에 포함하면서, 그림 안의 다양한 건물이나 오브젝트들의 크기의 단서들을 제시하고, 생생한 현장감을 더해주는 것. 또한 그 자체로서 그림에 활기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그림에 인물들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이토록 이점이 많으니 적극 활용하는 것이 낫겠죠? 그래서 지금부터는 인물을 포함한 상태에서의 그림을 염두하며 이를 토대로 우리가 접하기 쉬운 투시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눈높이 투시를 확장한 다음의 이미지를 만들어 기본으로 활용해보겠습니다.
우선 땅에서부터 시작된 우리의눈높이는 우리에게 주요한 크기의 단서를 제시하는데요. 보통 사람들 평균 눈높이는 1.5m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이를 토대로 다른 크기들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땅에서부터 눈높이까지의 1.5m의 길이를 인물을 비롯한 다른 모든 오브젝트들에도 적용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예를 보시겠습니다. 모든 인물들은 우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에 상관없이 땅에서 눈높이까지의 평균 길이가 적용됩니다. (아주 키가 작으신 분이나 크신 분들은 이에 맞춰 살짝 조정해주시면 됩니다.) 이때 정말로 중요한 부분은 눈높이 라인은 같은 상태에서 거리에 따라 밑으로의 길이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까짓 눈높이 좀 틀리면 되지 하고 동일한 사이즈의 인물들을 눈높이 라인 너머 자유롭게 배치하면 어떤 상황이 생길까요?
이렇게 하실 경우 거리에 따른 투시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결과가 생깁니다. 진격의 거인들이 탄생하는 거죠.
이에 해당하는 적절한 높이는 건물과 가로등과 같은 오브젝트들입니다. 동일 거리에 적합한 오브젝트와 그 거리에 맞는 인물의 크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눈높이 라인을 잘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시겠죠?
평지에서는 모두 이 눈높이 라인의 규칙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릴 대부분의 거리 그림은 평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를 기본적으로 생각하시면 되지만 다른 경우도 알아보겠습니다.
오르막의 경우에는 경사에 따른 또 다른 투시가 생기는데요. 우리가 눈높이를 중요하게 찾았던 것처럼 오르막 경사를 따라 생기는 오르막 높이 라인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평지에서는 눈높이 라인 하나만을 중심으로 크기 조절이 가능했다면 오르막의 경우는 눈높이와 땅 라인 모두를 오르막 높이 초점으로 연결하고 이를 가이드 삼아 인물이나 오브젝트의 비율을 맞춥니다. 투시 라인을 알기 위해 정면보다는 약간 측면에 인물을 두고 이를 계산한 다음 정면 쪽으로 인물을 배치하는 것이 편합니다. 내리막의 경우도 동일하게 내리막 높이 라인과 초점을 파악하신 후 동일하게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오르막이나 내리막의 경우 한 가지 주의해야 하는 것이 경사각이 있어 인물이나 오브젝트의 위치 투시가 달라질 뿐이지 오브젝트의 형태 투시는 모두 우리 눈높이 투시에 맞춰 진행되는 점입니다. 이는 옆에서 보는 모습으로 설명하면 더 이해가 쉽습니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A와 같이 건물들이 지어지지 B처럼 지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단 건물이 땅과 닿는 곳은 경사면에 따라 건물이 지어지므로 이 부분은 경사각에 따른 투시를 따름) 즉 위치 투시를 제외하곤 형태는 모두 눈높이 투시를 따라야지 오르막에 의한 투시를 따르면 안 됩니다. 이 부분이 참 실수하기 쉬운 부분인데 위의 상황들을 잘 이해하시면 그리실 때 도움이 되실 거 같습니다. 이를 그림에 적용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건물 옥상 라인과 출입구의 윗면은 레드의 눈높이 투시를 따르고, 건물과 땅이 닿는 라인은 그린의 오르막 투시를 따름]
1점, 2점, 3점 투시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죠? 각각의 투시에 대한 간략한 이해와 실제 그림에서 어느 때에 사용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쉽게 투시에 의해 라인들이 모이는 초점(이를 소실점이라고 합니다.)이 1개 생기면 1점 투시, 2개면 2점 투시, 3개면 3점 투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점 투시는 우리가 도보로 걷고 있을 때,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생기는 투시이자 눈높이 투시로 활용되는 기본 투시인데요. 건물의 각도가 틀어지지 않은 이상 모든 가로 라인들이 눈높이 초점으로 모이게 됩니다.
2점 투시는 우리가 방향을 틀어 건물의 모서리를 바라보는 경우 각각의 면이 향하는 방향으로 투시각과 소실점이 생기는데요. 이때 소실점은 반드시! 눈높이 라인 어딘가에 생깁니다.
1점 투시의 소실점은 우리의 눈높이 초점이기에 반드시 화면 안에 있게 되는 반면 2점, 3점 투시의 경우 소실점이 화면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위의 경우와 같이 화면 밖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실외의 건물 모서리를 바라보는 경우는 위의 경우와 같고, 실내에서 내부 공간의 모서리를 바라보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2점 투시의 상태에서 고개를 들거나 내려 위치 라인에 소실점이 하나 더 생기는 경우가 3점 투시인데요. 이때 정말 주의하셨으면 좋겠는 것은 3점 투시는 건물의 윗부분을 올려다보거나 반대로 건물 옥상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는 경우에 생기지 우리가 거리를 걷고 있거나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풍경에서는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개를 들었기에 눈높이가 화면상에서는 내려가는 것이 보이시죠? 일반적으로는 3점 투시가 잘 생기지 않는데 요즘 핸드폰 카메라의 경우 대부분 풍경의 많은 부분을 담을 수 있도록 광각렌즈를 기본 탑재하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 화면 왜곡이 3점 투시처럼 생기게 돼서 일반 풍경임에도 3점 투시처럼 나오게 되는데 이런 사진을 참조해서 그릴 경우는 왜곡된 부분을 2점 투시에 맞춰 수정해주시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쉽게 말해 분명히 고개를 들거나 내린 경우가 아닌 일반 풍경의 경우 하늘로 향하는 모든 라인들은(건물의 세로 라인 같은) 모두 왜곡 없이 프레임 하단과 수직으로 그리시면 됩니다. 이는 일반 풍경의 경우 모두 1점 혹은 2점 투시로 그리면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일반 풍경에서의 모든 세로 라인들은 프레임과 수직이다.]
[실제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의 정도 - 건물의 모서리를 바라보고 있기에 2점 투시의 풍경. 자세히 보면 기본 탑재된 핸드폰의 일반 카메라도 약간의 광각 기능이 있음을 알 수 있음]
[광각 카메라로 인해 3점 투시로 왜곡된 거리 풍경]
위의 사진처럼 충분히 일반적인 풍경으로 그릴 수 있는 풍경을 원본 이미지가 그랬다고 3점 투시로 왜곡하여 그리는 경우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이상 매우 부자연스러운 그림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 감독으로서 그림에 맞게 원본을 재디자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실점으로 향하는 투시는 꼭 자를 활용하여 그린 것처럼 아주 정확할 필요는 없지만 그 각도가 너무 틀어지게 될 경우는 부자연스럽게 됩니다. 밑의 예에서는 두 레드 라인을 그려 봤는데요. 위의 라인은 밑의 라인을 카피하여 그냥 위로 올렸기에 정확히 기울기가 밑의 라인과 동일합니다.(즉 평행입니다.) 밑의 라인은 일부러 정확하게 투시각에 맞추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소실점으로 향하는 흐름이 크게 문제로 느껴지는 않죠? 반면 위의 레드 라인은 어떤가요? 투시로 향하고 있는 라인은 눈높이 라인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각이 커지는데 위에 위치해서 더 각도가 커지는 지점에 있음에도 밑의 라인과 각도가 동일하니 밖으로 꺾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기준이 되는 라인(1점, 2점 투시에서는 눈높이 라인 하나/ 3점 투시에서는 위치 라인까지 포함하여 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더! 각도가 벌어진다. 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위에서 눈높이를 기준으로 하여 사물의 크기를 알 수 있다고 했죠? 그러나 이 크기도 어느 기준이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제가 우리 삶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오브젝트들의 표준 높이들을 리서치하며 그림으로 그려 본 것인데요. 풍경에서 투시에 맞게 사물들을 그릴 때 참조하실 수 있도록 공유합니다.
이번 글에서 다룬 투시는 거리에 따른 형태의 모습과 보다 밀접한 '선 원근법, 라인 투시(line perspective)'에 대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투시의 성격이 있는데요. '공기 원근법 혹은 채색 원근법으로도 부르는 토널 투시(tonal perspective)'가 있습니다. 이는 채색과 좀 더 깊은 연관이 있어 이에 대해서는 후에 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인 투시에도 어안 투시와 같은 보다 복잡한 투시들도 있지만 일반적인 풍경을 그리는 데는 위의 내용들로도 충분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기본 투시들과 스케일에 대한 이해로 좀 더 자연스럽게 장면을 디자인하여 그림을 그리시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