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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준 Jul 08. 2019

6월 15일, 13일 차, 프라하

사진 찍는 게 즐거운 야경의 도시, 프라하입니다.

오늘은 조금 두근거립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가이드 투어를 떠나기로 한 날입니다. 체코에 도착하자마자 낯선 분위기에 당혹해하며 신청한 투어 입니다만 좋은 선택인지 망설여집니다. 패닉 상태에 빠져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신청한 투어라, 패닉에서 회복된 지금은 괜히 신청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혼자 돌아다니는 것과 가이드 투어가 어떻게 다른지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특히 대책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과 잘 짜인 틀에서 가이드에게 많은 정보를 얻으며 돌아다니는 것은 여행의 밀도가 다르지 않을까 궁금하긴 합니다. 한국 사람들을 보고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은 욕구는 덤입니다.


미팅 장소는 프라하 중심지인 얀 후스 동상 맞은편입니다. 아침 9시 인데도 사람이 정말 바글바글합니다. 넓은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렇게 북적거리는데 인파 속에서 무사히 가이드 투어를 만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다행히 한국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가이드 분이 가방에 꽂아둔 한글로 된 깃발을 중심으로 한국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드리니 한국어로 밝게 대답해주십니다. 새삼 한국어라니 좀 색다릅니다. 사람이 다 모이자 조를 나누는데, 30명의 사람을 가이드 혼자서 다 통솔하기 힘드니 편의를 위해 나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이드를 돕기 위한 조장을 뽑는데, 마침 제가 조장으로 뽑힙니다. 세상에 조장이라니 몇 년 만에 듣는 말인지 모릅니다. 저희 조 7명은 모두 나 홀로 여행객들로 조별로 모여도 다들 별 말이 없습니다. 가볍게 얼굴을 익히고 가이드를 따라 프라하 투어에 나섭니다.


미팅 장소인 얀 후스 동상이 있는 광장은 행사가 있는지 사람이 꽤 많습니다

 

투어를 시작하고 곧 가이드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관광 명소의 역사과 배경, 역사적 사건, 담겨있는 의미, 사용된 예술 기법, 체코의 문화, 소매치기 대응법, 체코 사람들의 생활, 운전 매너, 전기값이 비싼 이유 등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쉴 새 없이 설명해주십니다. 제가 혼자 다니면 절대 몰랐을 이야기들로, 귀에 쏙쏙 와 닿는 게 흥미롭습니다. 정보야 찾아보면 다 나오겠지마는 저 혼자서 찾으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떤 정보가 중요한 내용인지 판단도 잘 못할 겁니다. 프라하 거리를 돌아다니며 마냥 이야기를 듣는 게 좋기만 합니다.


프라하 구경 자체도 재밌습니다. 얀 후스 동상과 틴 성당에 담겨있는 체코의 종교 역사도 흥미롭고, 구시가지 광장을 돌아서자마자 곧바로 보이는 천문시계는 충격 그 자체입니다. 교회의 벽에 설치된 두 개의 시계판은 140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외관 자체도 화려하고 멋있지만 그렇게 오래된 시계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복잡한 천문시계의 읽는 방법을 따라 오늘의 시계를 읽어보는데 해가 뜨고 지는 시간까지 읽을 수 있다니 어떻게 이런 장치를 만들 수 있었을까 너무 알고 싶습니다. 정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시계 앞을 가득 메우는데, 정시가 되자 종소리와 함께 시계에 있는 온갖 장식들이 움직이며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온갖 욕심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해골이 움직이며 삶의 부질없음을 보여주는데 또 내일을 알리는 닭이 울고 있습니다. 시계의 퍼포먼스는 '인간은 죽음 앞에서 부질없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600년 동안 이어져온 시계가 하는 말이니 새겨들을만합니다.

굉장히 복잡해보이는 천문시계입니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내부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뜯어보고 싶다'입니다.

조금 걸어서 하벨 시장, 바츨라프 광장을 둘러봅니다. 하벨 시장은 관광품, 기념품을 파는 작은 시장인데 사실 크게 볼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가게들이 파는 기념품이 몇 종류 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손거울과 마그넷 정도를 사서 가져갑니다. 바츨라프 광장은 가장 번화한 광장의 느낌으로 명동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몇몇 있는데 관심이 가지 않아서 그냥 지나갑니다.

거의 대부분의 가게가 대동소이한 기념품을 팔아서 조금 실망스러운 하벨 시장입니다.

다음으로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으로 갑니다. 고지대에 지어진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니 프라하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붉은 지붕의 집들이 줄지어 있는 광경은 판타지 영화에서 보던 중세의 마을 느낌입니다. 스타벅스 프라하 성 지점에서 음료를 하나 사고 테라스에 앉아 마을 풍경을 보는데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여유로움 속에서 멋진 풍경을 두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자니 이런 사치도 또 없을 겁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웨딩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혼부부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합니다. 프라하의 마을 전경을 두고 찍은 기념사진은 신혼부부에게 영원히 남을 추억이 되지 않을까 조심히 생각해봅니다.

프라하 성에서 내려 본 프라하의 전경. 강렬한 붉은 지붕들이 인상적입니다.


프라하  앞에는 입구를 지키는 근위병들이 부동의 자세를 유지하며 서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줄까지 서가며 근위병 옆에서 사진을 찍는데 꼼작도 하지 않고 서있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더운 날씨에 말이죠. 프라하 성에 입장할 때에는 가지고 있는 모든 소지품을 검문하고 내부로 들어갑니다. 성에 있는 어떤 방을 실제로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하기 때문에 검문이 힘들다고 합니다. 지금은 관광지 겸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지만, 과거의 프라하 성은 성당과 주택들이 갖춰진 멀티플렉스 같은 장소라고 합니다. 성으로 들어가면 너무 높아서 지붕 끝이 잘 안 보이는 성당이 하나 나오는데, 바로 비투스 성당입니다. 제가 독일에서 본 어떤 성당보다 크고 화려하며 내부에는 화려한 예술 작품들로 한가득합니다. 특히 다채로운 스테인드 글라스와 얀 네포무츠키의 순은상이 눈을 확 사로잡습니다.

화려하고 위엄이 넘치는 비투스 성당.
화려한 스태인드 글라스들.
프라하의 가장 유명한 성인 얀 네포무츠키의 순은상.

성당을 한 바뀌 구경한 후 구 왕궁황금소로를 구경합니다. 구 왕궁의 건축공법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재밌는 건 황금 소로였습니다. 마치 난쟁이 마을에 온듯한 아담한 집들이 연달아 붙어있어서 당시 주민들의 고생과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놀란 건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우 유명한 소설가로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업실이 여기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거든요, 지금은 기념관으로 바뀌어 있지만 기분 좋은 만남을 환영하며 생전 작업실 앞에서 사진을 하나 찍습니다.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사람이 바글바글 합니다.

프라하 성을 나와 오전 투어를 마치니 벌써 오후 2시입니다. 그 사이에 같이 조로 다닌 분들과 제법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특히 사진을 서로 찍어주면서 말문이 많이 트인 듯합니다. 투어를 마치고 야경 투어까지 시간이 조금 많이 남는데, 점심때가 지나도록 모두 밥을 먹지 못해서 다 같이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식당은 가이드 분께서 추천해주신 체코 레스토랑에 들어가 체코의 전통 음식들을 주문해 먹어보기로 합니다. 식사를 하면서 오전에 찍은 사진들을 공유하고, 사진을 잘 찍는 방법과 그동안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유럽 여행을 떠나서 누군가랑 밥을 먹는 것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도, 팁을 내는 것도 처음입니다. 호화로운 식사를 마치고 야간 투어를 기약하며 잠시 해산합니다.

꼴레뇨, 굴라쉬, 스비치코바, 구운 연어 등.

푹푹 찌는 더위에 돌아다니라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뻗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더운 날입니다. 다행히 조금 자고 일어나니 선선합니다. 다시 미팅 장소로 가는데 이번에는 지하철 대신 전동 킥보드를 타고 가기로 합니다. 프라하에 와서 킥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마침 딱 괜찮은 찬스입니다. 숙소 근처의 Lime 킥보드를 찾아 락을 풀고 미팅 장소까지 5km 정도를 그대로 질주합니다. 시속 22.3km으로 밟는데 마치 길거리에서 레저스포츠를 즐기는 기분입니다. 다만 하나 안 좋은 점이, 프라하는 옛길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 많아 울퉁불퉁한 돌로 이루어진 비포장 도로가 많다는 점입니다. 킥보드를 타고 이런 도로를 통과하면 온 몸에 충격이 그대로 옵니다. 핸들을 잡은 손은 덜덜거리면서 떨리고 자세에 따라서 손 다리 머리 가슴 할 것 없이 강한 진동이 옵니다. 한 30분 가까이 타니 쉬면서 괜찮아진 몸이 다시 거덜 나 버립니다.

마침 숙소 근처에 하나 놓여져있던 Lime 킥보드입니다. 보는 것보다도 훨씬 강력한 친구입니다.


저녁 시간이 되니 날이 선선해서 너무 좋습니다. 오전에 갔던 프라하 성 코스를 다시 따라 돌면서 해가 지는 마을을 구경합니다. 노을이 지면서 하늘이 각양각색으로 물들어갑니다. 깨끗하고 높은 하늘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데, 비투스 성당의 모습도 하늘의 변화에 맞추어 다양하게 변해갑니다. 고작 사진을 찍는 십여분 만에 또 완전히 느낌이 달라집니다. 성 밖에 해가 지는 마을의 야경은 빛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프라하의 야경은 세계 3대 야경이라고 들어 화려한 광경을 생각했는데, 은은하고 소박한 멋이 있는 야경입니다.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또 다른 세계에 온 기분입니다. 아늑한 분위기에 야경과 조명을 배경 삼아 여러 사진을 찍어봅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황혼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노을 빛에 붉게 타들어가는 비투스 성당.
은은한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 하나.
성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사진 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프라하의 거리입니다.
아련한 프라하의 한 밤

프라하 성에서 내려와 까를 교로 가는 길에 존 레넌 벽을 잠시 구경합니다. 평화, 자유를 갈망하던 존 레넌을 기리며 프라하의 청년들이 낙서를 하던 어느새 프라하의 명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구경 온 사람들이 낙서를 하고 있는 벽으로, 밤 조명에 그래피티가 빛나는 것이 독특한 멋느낄 수 있습니다. 이 멋들어진 야경은 벽을 지나 까를 교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까를 교에서 보는 블라타 강의 야경은 애틋한 느낌 한가득입니다. 오늘 하루를 함께한 투어 일행분들과 마지막 야경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동행한 일행들 사진을 찍어주며 서로 헤어짐의 인사를 나눕니다. 여전히 북적거리는 광장 속에서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여느 때처럼 저는 혼자 숙소로 향하는 프라하의 하루입니다.

자유를 갈망하던 체코 사람들의 영혼이 느껴지는 존 레넌 벽에서 한 컷.
존 레넌 벽 앞에 존 레넌 펍.
까를 교 건너로 보이는 프라하의 야경. 벌써 하루가 이렇게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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