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일단 여행을 가기로 하긴 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 저는 여행다운 여행을 준비해본 적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보통은 어디 나가기보다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에, 잘 나다니지를 않습니다. 가끔 기분이 내키면 이곳저곳 가보기를 하지만 잘 계획된 여행이라기보단 충동적인 산책에 가깝죠. 종종 가족들과 여행(인지 혹은 동행인지 모를)을 가긴 하지만 제가 계획하고 준비하는 건 아니고 막연히 끌려다니기에 벅찬 여행들로 기억합니다.
그런 제가 여행을 떠나자고 덜컥 결심을 했으니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막막해졌습니다. 일단 여행을 간다고 확실히 못을 박기 위해서, 주변에 잔뜩 떠들고 다니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괜히 마음이 변했을 때 무르지 않기 위한 처방이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또 별다른 계획은 없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다들 탐탁지 않게 보는 눈치였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저 혼자 괜히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죠.) 뭐 제가 여행 간다는 게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는 아니었고 저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별 관심이 없었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간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대중에는 그런 일탈 같은 행동에 걱정 내지는 책망을 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고요. 무관심보다야 고맙긴 하지만 제 본질적인 고민들, 일상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유들이 닿지 않아서 조금 답답했던 것 같아요. 바로 그 관심사의 이질감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부채질을 한걸 지도 모릅니다.
퇴사를 결심했으니 퇴사 날자를 정하고 여행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가지 사정이 겹쳐 퇴사 일정도 미뤄지고 여행 계획도 미뤄져 퇴사로부터 여행 계시까지 한 달의 시간이 벌어지고 맙니다. 마침 준비할 시간도 필요했는데 잘 됐다며 여행 계획도 촘촘하게 세워보고 가장 관심 있는 독일어 공부도 해보자고 계획했습니다만...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결국 빈둥대고 노는 것 밖에 더 안 하게 되더군요. 결국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한 건 여행 개시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다음은 제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사항들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필수적인 것들
여행에서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것들을 정리하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돈
숙박
교통
인터넷
일단 나가면 필수적으로 돈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숙박을 해결해야 하고, 이동 수단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 세가지만 확보한다면 최소한의 여행은 가능하겠다 싶었죠. 여기에 인터넷 정도만 갖춰지면 쾌적한 여행이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자격을 따진다면 비자 문제도 매우 중요하지만, '쉥겐조약'에 따라 여행지에서 90일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했기 때문에 걱정을 하나 덜 수 있었습니다.)
돈
여행에 가장 중요한 준비 작업 중 하나는 준비한 경비에 맞게 예산을 짜는 거지만, 저는 이번 여행에서 경비는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석 달 여행에 여행 경비로 넉넉하게 2천만 원 정도를 생각했고 만약 부족하더라도 더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다니겠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가능하면 1천만 원 내로 여행을 다니자고 속으로 작은 목표를 하나 세워둔 상태입니다. 다만 일정도 예산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싶었기 때문에 경비의 제한 역시 딱히 두지 않기로 한 거죠.) 물론 미리 준비를 하거나 예산을 빡빡하게 짤수록 돈을 아낄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다소 여유가 있고 여행의 콘셉을 일종의 '도피'로 잡은 만큼 예산에 구애받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해외에서 돈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환전을 통한 현금을 사용하는 것이 있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기존에 등록한 비자 카드가 있고 비자는 대부분 통용되기 때문에 달리 준비할 일은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만 신용카드 결제는 제법 수수료가 많이 붙기 때문에, 많은 금액을 결제할 경우(예를 들면 호텔 이용 등)가 아니면 현금을 이용하는 게 좋습니다. 출발 전에 토스로 100만 원어치를 현금 환전을 받고, 부족하면 현지에서 다시 100만 원 정도를 환전받아 환전 수수료를 아끼는 방향으로 결정합니다. 다만 이렇게 이용하기 위해선 해외 ATM에서 현금 인출이 가능하도록 등록해야 하죠.
PS. 이 정도면 됐다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여권의 영문 성명'과 '신용카드의 영문 성명'이 다르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호텔 등 결제 시 여권정보를 요구하는 곳에서 신용카드의 이름이 다르면, 신용카드를 도용한다고 여겨 결제를 거부하거나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사실을 출국 5일 전에 알았는데 다행히 신용카드 긴급 발급으로 이름이 정정된 신용카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숙박
가능한 숙박의 형태를 찾아보니, 호스텔, 호텔, 한인민박, Airbnb 정도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각각의 특징을 정리하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호스텔: 저렴한 가격, 기숙사 형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음, 공동생활의 불편함 감수, 도난 문제가 있을 수 있음
호텔: 가장 비싼 가격,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숙박 제공
한인민박: 조금 비싼 가격,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음, 불법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고 들음, 이용하기에 가장 편함
Airbnb: 복불복, 잘만 이용하면 호스텔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퀄리티를 뽑을 수 있음, 함정인 집이나 호스트가 걸리면 골치 아파질 위험성 존재
일단 한인민박의 숙소는 리스트에서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기껏 나가서 굳이 한국사람들을 찾아다닌다는 게 번거롭고 괜한 짓으로 느껴졌거든요. 호텔도 가능한 이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호스텔이 좋지 않은 국가나 심신이 지쳐 충전이 필요한 경우에는 고려해볼 선택지입니다. 호스텔은 주요 선택지가 되겠지만, 호스텔이 좋지 않은 동네는 피해야 할 1순위 숙박 형태라고 하더군요. Airbnb는 다소 선택 순위가 밀리긴 하지만, 호스텔 이용이 불가능한 경우나 혹은 새로운 숙박 형태가 떙길 때 도전해볼 만한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아시아 권에서 몇 번 Airbnb를 활용했을 때는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선택지 중 하나입니다.
기본적으로 다음 여행지 결정을 1주에서 2주 전쯤에 정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미리 예약을 하는 식으로 움직이기로 결정합니다. 유스호스텔의 경우 국제 연맹에 가입된 호스텔은 국제 유스호스텔 아이디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입을 추천합니다. (https://www.youthhostel.or.kr/에서 전자 ID를 만들 수 있습니다. 1년 치 등록비용이 17,000원 정도로 하나 들어둘 만합니다.)
교통
유럽을 오고 가는 건 비행기를 타야겠지만, 유럽 내에서 이동하는 것은 몇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저는 시간적 여유가 많기 때문에 유럽 구석구석을 여유 있게 돌아다니고 싶었고, 가능한 철도로 이동할 것 같더군요. 이런 저의 여행 스타일에 딱 맞는 유레일 패스가 마침 있더군요. 유레일 패스는 패스 하나로 유럽의 대부분의 국철을 이용할 수 있는 티켓으로, 저는 90일 1등급 권을 결제했습니다. 마침 운 좋게 딱 만 27세 커트라인에 걸쳐서 20%의 세일을 받아 110만 원 정도에 구매했습니다. 처음에는 100만 원이 넘는 비용에 망설여졌지만, 실제로 철도 비용을 알아보니 만만치 않더군요. 하기사 국경을 넘나드는 거리를 수차례 이동하는데 교통비가 많이 안 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고작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데 5만 원 정도의 경비가 드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죠. (저는 유레일 패스의 효율성을 검증하기 위해서, 유레일 패스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의 교통비를 따로 기록하려고 합니다.)
유레일 패스를 구매하니 유레일 맵이 같이 날아왔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동선을 짜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인터넷
2010년대의 여행이 과거와 다른 점을 꼽으라면, 인터넷의 도움으로 여행에 수많은 편의가 생겼다는 점일 겁니다. 구글맵의 도움으로 여행지의 도움이나 리뷰, 목표 지점으로의 내비게이션, 교통편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저 같은 여행 초심자에게 인터넷은 제2의 목숨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유럽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값싸고 간편한 방법은 유심칩을 활용하는 겁니다. 다행히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용 가능한 EE 유심칩이 있어서 이를 활용하기로 합니다. 90일간 6GB를 4G로 활용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더 충전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그 외 준비물들
* 여권, 여권 사본과 여분 사진, 항공 e-티켓 복사본, 여행자 보험, 여행자 보험과 사본, 유레일 티켓
여행에 반드시 필요한 서류와 물품들입니다.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것들로 따로 철저히 보관합니다. 여행자 보험은 가능하면 들어두는 게 좋습니다. 여행자 보험 사본은 특별히 체코에서 검문하는 경우가 있어 필요하다고 하네요.
*스마트폰, 멀티 어댑터, 멀티 충전기,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 전자책, 보조배터리, 유심칩(EE 패스 90일 6GB)
전자제품이 없으면 못 사는 현대인입니다. 특히 긴 이동시간을 달래거나, 매일매일의 기록을 위해선 꼭 챙겨야 하는 친구들입니다.
* 옷가지(사복 몇 벌, 속옷, 타월 등), 세면도구(칫솔, 치약, 샴푸, 바디워시, 샤워타월, 면도기와 여분의 면도칼, 쉐이빙 크림, 선크림 등)
잘 씻고 다니는 건 생각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요?
* 의약품(두통약, 종합감기약, 지사제, 소화제, 연고, 파스 등)
가뜩이나 약한 몸이라 넉넉히 들고 갑니다. 집 나가서 아프면 진짜 개고생이래요.
* 보안 도구(자물쇠, 와이어, 캐리어 밴드), 기타(멀티 툴, 반짇고리, 서류파일, 빨랫비누, 옷걸이, 면봉 등), 공책과 필기도구
보안 도구는 여행길에 꽤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특히 자물쇠의 경우 가방을 잠그거나 락커를 이용하는데 필수품이라고 합니다. (보관함은 제공해주는데 자물쇠가 없거나 유료 구매인 곳이 태반이래요.) 나머지 도구들도 소매치기 방지에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기타 도구들은 여행길에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한 것들입니다.
이렇게 여행의 준비가 끝난 짐들의 무게를 합해보니 대충 18kg 정도 됩니다. 좀 많은 것 같지만 유비무환이라고 가능한 챙겨가기로 합니다. 이제 준비도 끝났으니 여행길을 떠나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