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제 삶을 돌이켜보면, 어떻게든 남들 하는 만큼은 해내자는 몸부림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초중고 12년, 대학 4년, 석사 2년, 전문연구요원 3년까지, 스물여덟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저는 남들이 달려 나가는 곁에서 걸음걸이라도 맞추기 위해 발버둥을 쳐온 듯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탄한 커리어 패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너덜너덜한 종이짝 신세였죠. 저를 괴롭게 하는 주변 환경에 자존감은 밑바닥을 쳤고, 깊은 우울감 속에서 어떻게든 구색이라도 맞추자고 살아짐을 당해온 것이 제 인생의 이력입니다. 넘어지지 않고 어떻게든 여기에 서 있는 게 기적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전문연구요원으로 근무하는 지난 3년 동안, 저는 이대로는 정말로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무기력하게 질질 끌려가는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짐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대로 어물 적거리다 남들 하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면, 저는 언제까지나 '이건 내가 원한 인생도 내가 살고 싶은 인생도 아니야.'라고 외치며 항상 후회와 원망을 품은 채 일 것만 같았습니다. 피해망상으로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처럼 여기고 남들에게 히스테릭을 부리는 삶이 기다릴 것만 같았죠. 무언가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면 조금은 무리할 필요도 있습니다
해결책이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으로 구체화된 건, 주변 환경에 머물러 있다면 제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집안 환경은 좋지 않고 물리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한 정신의 일부가 계속 잠식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일상처럼 굳어진 루틴 속에선 몸이 무언가 하기를 거부하더군요. 정확히는 루틴의 반복이 생각의 무능함을 낫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해서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할까요? 멈출 줄도 모르고 쳇바퀴를 굴리는 저를 보면서 답답함은 계속 쌓여갔고, 쳇바퀴에서 완전히 떠나야지만 이를 멈출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저는 주변의 걱정이나 의아한 시선을 뒤로한 채로, 잘 다니던 직장을 별다른 계획도 없이 그만두고 떠나기로 결심합니다.생애 처음으로 떠나는 스스로를 위한 여행을요.
홀로 떠나는 해외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실은, 여행이 그래서 저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갑자기 사람이 확 달라질 것도 아니고, 엄청 대단한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닐 겁니다. 그런 걸 기대하면 모든 걸 망치기 십상이겠죠.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번에 떠나는 여행은 일상의 도피처면 적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여행의 끝에서 저에겐 다시 쳇바퀴를 굴리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 짧은 인생의 견해로, 사람의 굴레라는 건 그렇게 쉽게 벗어버릴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니까요. 잠깐의 도피가 만병통치약이 된다는 꿈같은 기대는 좌절을 불러오기 딱 좋은 경솔한 생각들입니다.
그럼에도 여행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저를 얽매이던 것들로부터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 벌써 몸이 들썩거립니다. 제가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간섭하는 사람도 타박 주는 사람도 윽박지르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물론 말도 잘 안 통하고 먹을 것도 잘 안 맞고 모든 게 낯선 환경 속에서 고생할 것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그 고생길조차 제가 비로소 선택한 고생길입니다. 주체적인 삶이 주는 자유의 기쁨 속에서 고생들조차 이윽고 행복을 찾는 길이 되길 바라는 건, 제 작은 욕심입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주위에 이야기한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진부한 질문에 어떤 답을 찾아오길 기대한다는 이야기를요. 물론 반쯤은 무턱대고 떠나는 여행을 변명하는 귀찮음에 이야기한 말이지만, 완전히 빈 말은 아닙니다. 스물여덟의 인생 속에서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물어보지 않은 날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그만둘 날도,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을 찾는 날도 아마 영영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번 여행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그치지 않는 즐거운 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