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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준 Jun 19. 2019

6월 4일, 2일 차, 프랑크푸르트

모든 것이 낯선 프랑크푸르트입니다.

일단 도착은 했는데 아직 새벽 6시입니다. 출국 심사대가 너무 적어서 대기줄이 생각보다 깁니다. 어제 상해에서 봤던 커플이 아직까지 꽁냥대는 것을 보니 살짝 웃음이 나옵니다. 앞사람들이 출국 심사를 위해 각종 서류를 꺼내고 꽤 오랫동안 심사를 합니다. 저는 준비한 게 없는데 혹시 무언가 절차가 필요한 걸까요? 다행히 저는 별 절차 없이 여권 검사만 하고 바로 통과합니다. 한국 여권 좋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심사를 받고 공항으로 나와보니 가게들이 막 문을 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공항의 아침은 빠른 듯합니다. 이동을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인터넷이 필요하므로 일단 유심칩 설치부터 합니다. 설정에 다소 애를 먹지만 휴대폰을 몇 번 재부팅하니 다행히 돌아갑니다. 지도를 켜니 S반을 이용하라는데 S반을 타기 위해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공항 표지판을 보고 셔틀버스에 일단 타기는 탔는데, 순간 표를 끊어야 하는 건 아닌지 조급해집니다. 당장 주변 사람한테 물어보면 알 일을 경직이 돼서, 셔틀버스인데 표가 있을 리가 없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빨리 도착하기를 기다립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당황하다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별 탈 없이 S반 역에 도착하긴 했는데 이번엔 어떻게 기차를 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S반을 타야 제 첫 목적지인 Frankfurt Hauptbahnof(프랑크푸르트 메인 역)으로 갈 수 있는데, 굳이 표를 끊을 필요 없이 유레일 패스만 있으면 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패스를 가지고 어떻게 타야 하는지 방법을 모른다는 겁니다. 도움을 얻을 수 없나 헤매다가 보니 'DB' 로고가 적인 여행객 안내소가 보입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유레일 패스를 소지하면 S반과 regional 열차를 공짜로 탈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바로 유레일 패스를 개통시켜줍니다. 혹시 유레일 패스가 없으면 얼마나 드나 찾아보니 네 정거장을 가는데 5 유로나 들더군요. 비싼 교통비에 새삼 놀랍니다.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개찰구를 어떻게 통과하나 찾아보는데 딱히 개찰구 같은 게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물어보니 그냥 타고 검표원한테 표를 제시하면 된다고 웃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하고 지상 플랫폼으로 올라오니 새삼 감탄이 나옵니다. 역의 거대한 규모에 놀라고, 영국 영화에서 보던, 여러 대의 기차가 각각의 노선에서 대기하는 광경을 직접 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렇게 넋 놓고 역 구경을 하는 건 좋은데 '이젠 뭘 해야 하나' 생각이 듭니다. 일단 숙소 체크인이 오후 시간인데 아직 아침 시간입니다. 배는 고프고 뭘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힙니다. 일단 둘러볼 만한 곳을 조사하기는 했는데 어느 출구로 가서 어디로 가야 한다 같은 세세한 정보를 모은 게 아닙니다. 당장 길 찾기부터 잘 모르겠습니다.


기차역이라니 두근 거립니다.

일단은 배가 고프므로 맥도널드에 가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합니다. 어쨌든 관광지를 돌아다닐 건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닐 수는 없으므로 락커에 보관하기로 합니다. 겨우 찾은 락커 이용법을 몰라서 헤매고 있는데 옆에 보니 한국인 두 분이 같이 헤매고 있습니다. 저한테 도움을 청해 보지만 뭘 알아야죠. 물어볼 사람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는데 마침 막 출근하는 직원 분이 보입니다. 어떻게 쓰냐고 물어보니까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해줍니다. 락커에 캐리어를 보관하는 데 성공하지만, 하루 이용료가 6유로라니 조금 비쌉니다.


락커라기 보단 냉동고처럼 생겼어요.

하여튼 그렇게 역사를 나가서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 따라 길을 걸어갑니다. 역사 정면으로 큰 길이 나 있고 양 옆으로 유리로 된 빌딩들이 줄 지어 서 있습니다. 길가에 온갖 국가의 음식점들이 있는 걸 보고 여기가 새삼 국제도시란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걷다 보니 거대한 유로 마크가 보입니다. 유로 타워 앞에 설치된 유로 마크가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경제를 상징하는 도시라고 자랑하는 듯합니다. 간단하게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폼 잡는데 한국인 세 분이 말을 걸어옵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침 세 분이 뢰머 광장으로 가신다길래 저도 동행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낯선 도시의 모습 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여간 재밌는 게 아닙니다. 광장에 도착해서도 몇 장 찍습니다. 살아있는 동상을 연기하는 분과 사진을 찍는데 보너스 정신이 투철합니다. 광장에 가득 찬 사람들을 구경하며 일행들과 헤어지고 저는 갈 길을 갑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상징 유로 싸인.
아직 유럽스러운 풍경에 적응이 잘 안됩니다.
뢰머 광장의 아저씨. 저 웃는 얼굴은 전부 팁값입니다. ㅜㅜ

광장을 돌아서면 바로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개장시간에 맞추어 입장하니 프랑크푸르트의 과거와 현재를 주제로 전시 중입니다. 전시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박물관의 규모도 대단했지만 그보다도 '역사'를 전시한다는 개념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보통 역사는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많이 배웁니다. 당장 국사 교과서를 펴보면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자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이 전시하는 역사는 그런 뉘앙스가 아닙니다. 그들이 승리했던 역사도 패배했던 역사도 악독했던 나치즘의 역사도 그리고 피해자들의 역사도 한 치의 감정을 담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거기엔 자부심도 변명이나 합리화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감각이 다를 수 있나 이질감에 살짝 어지러움이 느껴집니다. 또 놀란 것은 역사라고 특별한 것을 전시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 사람, 생활, 일상 등을 전시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현재는 언젠가 '2010년 대의 과거의 한 장면'이 될 겁니다. 역사박물관의 넓은 공간을 할애하여, '그때 그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습니다.'하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나는, 우리는 역사의 한 순간에 있다.'는 메시지가 확 와 닿는 순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멋진 '역사박물관'입니다.


마르곳 프랑크 안네입니다. 안네의 일대기와 일기의 내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각종 재활용품으로 재현한 프랑크푸르트 도시 모형. 제발 부수지 말라는 안내표지도 모형의 일종처럼 느껴집니다.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A씨의 집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현재를 역사로 전시한다는건 재밌는, 그러나 중요한 발상입니다.

역사박물관을 쭉 둘러보고 바로 괴테하우스로 향합니다. 괴테하우스는 괴테의 생가로 저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파우스트'의 작가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위대한 소설가' 정도로요. 그래서 생가도 작은 전시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도착해서 보니 웬만한 박물관 수준의 큰 집입니다. 괴테는 당대에 엄청난 부호이자 다양한 능력과 인맥을 겸비하고 정치적 위상까지 있었던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하더군요. 생가의 규모도 규모지만 당시 실제로 살던 방들의 모습은 상상 이상입니다. 작은 것 하나 보존된 모습을 보면서 여기 사람들이 괴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괴테가 저술할 때 앉았던 책상입니다. 도대체 괴로워하는 흉상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다녔더니 어느덧 점심시간을 넘어갈 위기에 처합니다. 시차 적응과 전날 비행기에서의 선잠 덕에 피로가 막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다시 향합니다. 아까 봤던 음식점들의 행렬이 생각났거든요. 저는 매콤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멕시칸 음식점으로 들어갑니다.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일단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서브웨이처럼 라인을 따라 이동하면서 제가 넣을 재료를 이야기해서 메뉴를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재료를 못 알아들으니까 직원이 답답한지 저한테 짜증을 냅니다. 밥 한 번 먹기 참 힘듭니다.

독일에서의 첫 끼입니다. 이거 하나 먹자고 짜증부리는걸 감내해야 했지만, 그만큼 바빴나보죠.


어느덧 3시가 가까워진 시간, 저는 역에서 짐을 찾고 숙소로 이동해서 하루 일정을 마치기로 결심합니다. 시차와 피로 때문에 몸이 더 버티지 못합니다. 어차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일정을 길게 잡았으므로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숙소는 역에서 그리 멀지 않아 30분 정도만 걸어가면 됩니다. 마인강을 따라 걸어가는데 정경이 수채화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더위와 피로만 없었다면 좀 더 천천히 만끽하면서 걸어갔을 겁니다. 특히 강에 놓인 다리들이 인상 깊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마인강을 건너는 다리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풍경이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힘들게 도착한 호스텔은, 좀 뭔가 실망스럽습니다. 옷장의 락커는 자물쇠를 이용해도 잠글 수가 없고, 와이파이는 그냥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호스텔이 이런 건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물이라도 시원하게 마시고 싶은데 자판기에서 파는 물은 너무 비쌉니다. 350ml 페트병 생수가 1.3 유로나 합니다. 원래 호스텔은 이런 곳인가 투덜거리면서 정리하다 보니 다른 여행객이 방으로 들어옵니다. 싱가포르에서 온 여행객도 지금까지 본 호스텔 중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투덜거리더군요. 그나마 다행인가 싶습니다.

도무지 잠기지 않아서 와이어로 칭칭감아버린 사물함. 저런다고 락이 완성되는건 아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잠겨있다는 심리적 자물쇠로 작용하길 기대합니다.


창밖을 보니 아직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9시가 넘었는데도 밖은 여전히 밝습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 한계입니다. 어서 잠을 보채는 프랑크푸르트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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