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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준 Jun 20. 2019

6월 5일, 3일 차,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이 매력적인 도시, 프랑크푸르트입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새벽 4시경입니다. 잠이 더 오지는 않지만 시차에 강제로 적응하기 위해 잠을 더 청합니다. 한참을 자고 7시쯤 일어나 어기적거리며 아침을 먹으러 호스텔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어제의 실망스러운 아침과는 달리 오늘의 뷔페식 아침은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간단한 시리얼과 치즈, 햄을 곁들인 토스트 빵은 배를 든든히 채우기 제격입니다. 다행히 아침식사는 호스텔 숙박 가격에 포함되어 돈이 좀 굳습니다.


해가 완전히 뜨고 8시 반쯤부터 걸어 나가 봅니다. 오늘의 컨셉은 걸어서 프랑크푸르트 한 바퀴입니다. 어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가며 꼭 시티 투어 버스를 이용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를 쐬니 생각이 바뀝니다. 숙소를 나서는 길에 소방차가 들이닥쳐서 무슨 일인가 궁금하긴 하지만 별 일 아닐 겁니다. 독일의 소방대원을 볼 수 있다니 좋은 구경 했다고 생각하며 여정을 떠납니다.


일단 발걸음을 옮긴 곳은 프랑크푸르트 대성당(Frankfurt Cathedral)입니다. 마인강 건너에서 우뚝 솟아 유난히 돋보이는 성당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더 큰 크기에 놀랍니다. 성당문은 제 키의 몇 배는 되는 것 같은데, 실제로 무게도 꽤 돼서 밀고 들어가는데 애를 먹습니다. 소개문을 보니 2차 세계 대전 중에 대부분 건물이 불에 탔지만, 계속된 보수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도 보수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어느 정도의 공을 들였을까 짐작이 잘 되지 않습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니 웅장한 규모에 절로 경건해지는 느낌입니다. 가운데 기도를 드리는 분들을 위해 조용히 성당을 둘러보고 나옵니다.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입니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숙한 성당이 맞이합니다. 이런 곳에서 미사를 드리면 어떤 느낌일까요?


뢰머 광장의 북쪽을 지나 길을 걷다 보니 젠켄부르크 자연사 박물관에 도착합니다. 10유로의 다소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니, 티라노 사우르스와 트리케라톱스의 화석들이 반깁니다. 풀 사이즈로 복원된 공룡 화석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생소한 기분입니다. 생각해보면 자연사 박물관 자체가 저한테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제법 넓은 박물관을 구석구석 돌아볼수록 감탄이 연다라 나왔습니다. 박물관에 1만 점 가까운 소장품이 있다고 하는데, 카테고리 별로 전 세계 모든 생물들을 전시해놓은 건 아닌가 싶습니다. 박제인지 모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생생한 재현물이 박물관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그 박물관을 견학 온 어린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또 한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생한 생물 교재를 어려서부터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교육에 얼마나 큰 축복인지 곱씹어 봅니다.


이런 생생한 동물모형이 박물관에 한가득입니다. 연구용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보입니다.

자연사 박물관을 나오고,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걸어갑니다. 원래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도 아닌 것 같지만, 대학가의 분위기는 어떤지 꼭 한 번 보고 싶어서 무작정 가봅니다. 프랑크푸르트 외곽을 따라 걷는 길은 완전히 전원 동네 분위기인데, 대학가에 별 거 없이 가정집들만 들어서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니 신기한 건 그뿐만이 아닙니다. 도로의 모습이라든가, 교통 시스템이라든가 전부 생소한 것 투성입니다. 특히 차도를 건널 때 신호나 횡단보도가 없어도 사람들이 편하게 걷거나, 제가 건너가지 못해 망설이고 있으면 차가 멈춰 서서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하는 게 신기합니다. 철저하게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도로의 풍경이 낯설기만 합니다.


여러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벌써 캠퍼스가 보입니다. 공식 명칭은 Johann Wolfgang Goethe-Universitat Frankfurt am Main입니다. 괴테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사람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이름입니다.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캠퍼스에서, 학부생들이 무리 지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낯설지 않은 풍경을 보니 반가운 느낌입니다. 역시 대학은 어딜 가더라도 대학입니다. 아침부터 걷느라 힘든 다리를 조금 쉬게 해 줄 겸, 광장에 앉아 좀 더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혹여나 이상한 외부인 취급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하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합니다.


거대한 대리석 캠퍼스에서 위압감이 느껴집니다

캠퍼스 구경도 했겠다 다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쪽으로 걸어옵니다. 중앙역 부근으로 올수록 중세풍의 건물들에서 현대적 마천루로 풍경이 달라지는 게 이색적입니다. 마천루 하면 의례 전망타워가 있기 마련인데, 프랑크푸르트에는 마인 타워가 있습니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전망대에선 과연 도시 정경이 전부 눈에 들어옵니다. 한쪽에는 마인 강이, 한쪽에는 중앙 역이, 한쪽에는 마천루 지대가, 한쪽에는 고전 양식의 건물들이 딱딱 구분 지어지는 게 신기합니다. 마치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도시의 한 순간을 보는 느낌입니다. 참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마천루, 마을풍경, 마인강, 중앙역, 다시 마천루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은 마인강을 다시 건너 박물관 거리를 걷기로 합니다. 마인강 남쪽 편에는 강변을 따라 십여 개의 박물관들이 줄지어 있는데, 이 거리를 박물관 거리라고 부릅니다. 여러 가지 신기한 박물관들이 있지만 그중에 관심 있는 박물관 2 개만 방문하기로 합니다. 2 개 정도 보고 나오면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 될 겁니다.

 

처음에 들른 곳은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의 주제가 '커뮤니케이션'이라니 흥미가 솟습니다. 박무관 입구에 세워진 TV로 만든 기사가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입니다. 전시관은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특히 '친구'를 주제로 하는 Like you!라는 전시가 눈에 띕니다. '친구의 의미'에 대하여, '친구의 소멸'에 대하여, '친구의 변화'에 대하여 각각 세션을 나누어 다루고 있는데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꽤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친구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놓고, 다른 사람들의 대답을 통계로 비교해 놓은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조금 낯 뜨거울 수도 있지만, 프랑크푸르트의 사람들은 친구를 소중한 존재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알찬 전시를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당신은 베스트 프렌드가 있습니까? 없다, 1명 있다, 여러 명 있다 셋이 팽팽합니다.
소중한 친구끼리의 물건을 기증받는다고 합니다. 짝짝이 양말, 영화 티켓, 게임기 등 가지각색입니다.


다음으로 구경하는 곳은 영화 박물관입니다. 명작 영화들에 대한 소개를 다루는 곳으로 기대했는데, 영화 제작의 역사와 원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영사기를 직접 돌려보고, 스튜디오의 조명을 만져보고, 영화의 편집을 체험해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뇨. 영화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런 체험은 환영입니다. 제가 어디 가서 해볼 수 있는 일들이 아닐 테니까 말이죠.


여러 조명을 체험할 수 있는 스튜디오 입니다.




박물관 거리를 나오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관람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박물관을 저는 한국에서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것도 시립, 국립 수준의 거대한 박물관이 아니라 작은 규모의 사설 박물관은 더더욱 본 적이 없습니다. 분명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아오는 문화와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박물관들의 노력이 일구어낸 멋진 선순환일 겁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선순환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러는 사이 하루 해가 지는 프랑크푸르트에서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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