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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준 Jun 21. 2019

6월 6일, 4일 차, 마인츠

구텐베르크와의 우연한 만난 마인츠입니다

아침잠을 깨우는 살짝 서늘한 바람에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의 날씨 예보를 보니 하루 종일 시원한 날씨입니다. 돌아다니기에 딱 좋은 날씨입니다. 오늘은 마인츠로 다녀올 겁니다.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다음날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막연히 3박의 일정을 잡았는데, 이틀 동안 돌아다니고 보니 프랑크푸르트에서 가보고 싶은 곳은 대충 다 가본 것 같았습니다. 조금 일정을 길게 잡은 것을 후회하며 차라리 조금 멀리 나가보자고 알아보니 S반을 타고 한 시간이면 마인츠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해외 축구 이야기를 할 때 얼핏 들어본 도시인데 잘은 알지 못합니다. 갑자기 결정한 행선지지만 가면 구경할 것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해봅니다.


마인츠로 가는 S반을 타니 저번엔 보지 못했던 1등석이 보입니다. 신기하게 객차마다 한쪽 끝에 유리문으로 분리된 공간이 보입니다. 다른 자리와 달리 좀 더 넓게 좌석을 쓸 수 있게 만들어놓았습니다. 다소 여유 있게 가고 싶었던 저는 1등석을 타보기로 합니다. 유레일 패스가 퍼스트 클래스면 S반도 1등석을 탈 수 있기 때문에 마침 잘 됐다 싶었죠. 타본 소감은 흡연실 부스에 따로 격리된 느낌이었습니다. 넓은 2등석 칸을 두고 좁은 공간에 갇혀있으니 무슨 벌이라도 받는 느낌입니다.

무슨 격리 수용공간처럼 보이는 곳이 1등석입니다. 유리문에 대문작만하게 쓰여진 1을 보세요.


마인츠 뢰미스체스 극장 역에 도착해서 주변을 찾아보니 마인츠 시타델이 있습니다. 시타델의 단어 뜻을 찾아보니 도시나 시설물의 요새화 된 일부를 가리키는 일부라고 합니다. 역 뒤편으로 나가 언덕을 올라가니 도로를 따라 큰 벽이 세워져 있습니다. 벽을 따라 걷다 보니 커다란 문이 닫혀 있는 게 보입니다. 지도를 보면 여기가 시타델의 입구입니다만, 닫힌 문을 보니 열어도 되는 건가 살짝 겁이 납니다. 그냥 지나가 볼까도 싶지만, 안 열고 후회하는 것보단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일단 열어보는 게 낫겠다 싶습니다. 육중한 문을 낑낑대며 당기니 터널 같은 공간이 나옵니다. 조심스럽게 터널을 통과하니 곧 반대편 문이 보입니다. 문 너머로는 넓은 초원과 함께 몇몇 건물들이 평화롭게 서 있습니다. 안쪽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봅니다. 마침 오늘은 축제가 열리는지 간이 건물을 세우느라 분주합니다. 요새를 둘러싼 성벽 안에는 하나의 작은 마을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시타델의 성문입니다. 내부로 이어지는 어두운 터널이 보이시나요?
성벽 안에는 또 하나의 작은 세계가 있습니다. 마침 맥주 축제를 여는 날인가 봅니다.

시타델을 나와서 마인츠 대성당으로 이동합니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도 그랬지만, 여기 성당들은 정말 거대합니다. 고딕 양식으로 하늘을 찌르는 지붕 밑에는 광활한 미사 공간과 채플들이 있습니다.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모자를 벗으라고 핀잔을 주시더라고요. 성당에서는 갖추어야 하는 예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에 쇠창살문으로 닫혀있는 공간들이 보이는데 무슨 공간인지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잘 알 것 같은 사람을 잡고 물어보면 좋을 텐데 그게 또 잘 되지 않습니다.


외벽을 공사중인 마인츠 성당입니다.
성당 안에 정원이 꾸며져 있던 작은 공원
성당 지하에 이런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무슨 감옥 같은 곳이 아닐까요?

마인츠 대성당 옆에는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이름은 세계사 시간에 배워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활자의 아버지로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사람으로 말이죠. 어제 많은 박물관을 보고 온 터라 조금 내키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책과 관련된 이야기는 무리를 해서라도 볼 만합니다. 오디오 가이드 기계를 대여하는데 무려 여권을 담보로 하기에, 관람 전부터 조금 불안합니다.


하지만 불안한 감정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전시실을 돌수록 점점 전시 내용에 빠져듭니다. 메인 전시는 구텐베르크 전반을 테마로, 구텐베르크의 활자 개발의 역사, 원리, 당시에 사용하던 기계, 구텐베르크 성서의 원본, 구텐베르크의 생애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용하던 활자 프레스의 실물이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활자의 원리와 책의 역사, 출판의 과정과 의미, 책의 역사, 잉크와 제본, 종이의 생산과 워터마크의 의미까지 인쇄까지 중세 시대 책의 모든 것을 상세히 전시 중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의 인쇄의 역사들을 따로 전시관을 내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코란과 구텐베르크의 관계도 인상적이지만, 동아시아관의 전시는 그 꼼꼼함과 세세함, 그리고 규모에 깜짝 놀랍니다. 설마 여기서 직지와 중세 훈민정음을 만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이런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구텐베르크 성서입니다. 활자의 발명은 종교계에 혁신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옵니다.
종이를 제작하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한국의 책 제작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미니어쳐입니다. 그 디테일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직지 목판도 전시되어 있고,
훈민정음 언해본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매우 충만한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오니 한창 점심때입니다. 주린 배를 프리텐으로 간단히 때우고 시내 구경을 다닙니다. 쇼핑센터를 둘러보는데 장난감 가게가 눈에 띕니다. 아이들 장난감뿐만 아니라 보드게임과 TCG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도 같이 있습니다. 매직 더 게더링과 유희왕 TCG의 독일판 카드들과 함께, 도미니언, 판데믹 같은 유명한 보드게임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생각해보니 독일은 현대 보드 게임의 성지입니다. 아예 독일식 보드 게임이라는 용어까지 있는 정도니까요. TCG와 보드게임을 매우 좋아하는 저로썬 하나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직 여행기간은 한참 남아있습니다. 분명 다음에 살 기회가 올 겁니다.

매직 더 개더링은 언젠가 꼭 한번 배워보고 싶은 TCG 카드게임입니다. 부스터 한 팩에 4 유로 씩이나하는 비싼 게임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저녁까지 조금 남은 시간에 마인츠에서의 여정을 마무리 짓기 전, 마지막으로 가까운 묘지공원으로 가봅니다.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여행을 갈 때 꼭 묘지를 가본다고 한 적이 있기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나 궁금했거든요. 트램을 따라 조금 구석에 위치한 묘지공원은 꼭 정원 같은 느낌입니다. 산책로를 따라서 묘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묘비에는 여러 이름과 살아온 날들이 써져 있었는데, 아마 가족 중에 누군가 죽을 때마다 계속 합장하며 묘비에 고인의 이름을 추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1800년대에 죽은 사람도 있고 얼마 전에 죽은 사람도 있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몇 대가 묻혀있는 묘도 있습니다. 공원에는 아이들과 함께 오는 추모객, 새로 묘를 파는 인부, 벤치에 앉아서 쉬는 노부부 등이 보입니다. 죽음과 일상이 교차하는 공원의 분위기는 이루 말하기 어려운 마인츠의 하루입니다.

한 가족이 세대를 넘어 같이 묻혀있다는 건, 그 오랜 시간동안 가족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아껴왔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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