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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준 Jun 24. 2019

6월 8일, 6일 차, 베를린

감정이 요동치는 베를린입니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아침입니다. 6시쯤 일어나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벌써 9시입니다. 다른 날 같았으면 벌써 움직일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섰을 겁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모든 게 귀찮고 짜증이 곤두서 있습니다. 멘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침을 챙겨 먹으며 짜증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괜히 호스텔에서 뒹굴거려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 발걸음을 서두릅니다.


먼저 향한 곳은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입니다.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죄를 인정하고 사죄를 인부터 국가단위까지 흔하게, 매우 흔하게 말이죠. 대부분 타인이나 다른 집단에 대한 잘못과 옹졸한 사과의 시늉에 분노할 뿐, 자신을 돌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타인의 그러한 행태에 대해선 쉽게 분노하면서 자신에게는 매우 관대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거의 악행으로 피해자들은 이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모습들이 역사 속에서 잊히지 않도록 기립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박물관은 매우 보기 드문, 역사 앞에서 반성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공항에서 검사하듯이 출입심사를 합니다. 엑스레이로 가방을 검사하는데 안에 있던 맥가이버 칼이 문제가 됩니다. 위험물을 따로 보관 처리하고 나서야 박물관에 입장하게 됩니다. 어차피 가방은 보관소에 맡기고 입장하는 걸 생각해보면, 공항 수준의 출입 심사는 단순히 보안상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희생된 자를 기리는 공간에는 어떤 위험물도 반입할 수 없다는 애도와 엄숙의 의미가 담긴 일종의 의식절차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유대인 박물관은 매우 현대적인 전시관입니다. 전통적인 박물관처럼 단순히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다기 보단, 박물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전시물로 만들어 놓은 느낌입니다. 형이상학적으로 지어진 전시관은 입구의 전시실부터 어두운 암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거울로 둘러싸인 암실을 걷다 보면 가끔씩 매우 강렬한 라이트가 비춰와서 눈을 움찔할 수밖에 없습니다. Resonance(공명)이란 이름의 방으로, 어둠 속에서 강렬한 빛을 받을 때마다 극도로 긴장하는 것이, 어둠 속에 숨어 감시를 피해야만 했던 유대인들의 심정을 느껴보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적색 라이트가 눈을 비출 땐 강렬한 빛 때문에 휘청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명의 방을 지나니 전시관은 세 개의 축(axis), 복도로 나누어집니다. 각 축은 홀로코스트(holocoast), 추방(exile), 계속(continous)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홀로코스트의 축에는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담긴 편지, 사진, 재봉틀, 배지 등의 소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이 가지고 있던 소품들로, 그들의 지인들이 갖고 있다가 끝내 돌려주지 못하고 박물관에 기증된 것들입니다. 소품에는 주인의 신상과 함께 주인에게 이 소품이 어떤 물건이었는지, 어떤 경위로 주인의 손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물건의 주인의 최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이력이 적혀 있습니다. 많은 경우 died, murdered 같은 단어들로 끝나는 것에 씁쓸한 한숨이 나옵니다.


젊은 부부의 결혼 사진입니다. 곧 그들은 살해당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유품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축을 따라 복도 끝까지 걸어가면 홀로코스트 타워로 들어가는 문이 존재합니다. 홀로코스트 타워에서의 감상은 간단한 자기 인용으로 대신합니다.


전시관의 육중한 문을 열어젖히니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지하수 냄새가 살짝 섞인 공간은 칙칙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비명 같은 경첩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혔다. 공간에는 칙칙한 어둠과 적막이 남아 있었다. 작은 바람소리마저 진동하는 이 곳엔, 가늠할 수도 없는 높은 천장에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공간에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막 속에 휩싸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규칙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구도 침묵을 지키며 하늘만 바라보았다.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데 누구도 나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공간에는 바람이 맴도는 소리만이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홀로코스트 타워에서


전시관의 다른 축인 추방의 축은, 독일을 떠나야만 했던 유대인들의 이야기와 탈출 과정의 긴급했던 사연들을 담고 있습니다. 어릴 적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들었던 저는, 제때 탈출하지 못한 유대인들을 다소 어리석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달이 날 때까지 도망가지 못하다니, 나는 누구보다 빨리 도망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삶의 기반을 버리고 이민을 간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나치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면서 점점 멀리, 아메리카와 상하이까지 떠밀려가는 사람들의 여정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추방의 축 끝에는 추방의 정원이라는 이름의 야외 공간이 있습니다. 돌기둥들이 체스판처럼 세워진 단조로운 공간으로 관람객에게 한 번 걸어보라는 안내문이 적혀있습니다. 가볍게 산책하듯이 돌기둥 사이를 건너 반대편으로 향하는데 걷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바닥이 입구 쪽으로 기울어져 실제로는 경사를 올라가는 길인데 체스판처럼 서 있는 돌기둥 때문인지 평지를 걷는 듯 착각하게 됩니다. 결국 비틀거리며 돌기둥에 부딪히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무슨 의미인지 설명을 하고 있진 않지만, 외부의 상황으로 인해 이리저리 휩쓸려 다녀야 했던 사람들을 체험하길 바란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기울어진 추방의 정원에서


마지막 축인 연속의 축은, 다른 축들과는 다르게 별다른 전시물이 없습니다. 높이, 더 높이 올라가는 계단만이 있는 텅 빈 공간입니다. 한쪽 구석에는 사람들의 얼굴 조각들이 널브러져 빈 공간만이 있을 뿐입니다. 연속의 축은 반복적으로 'void(공허)'를 언급합니다.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지만, 거기에는 학살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공백이 남아있다고 말이죠. 우리는 여전히 그 빈자리를 느낄 수 있으며, 그럼에도 삶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이죠.


'부재한 이들의 공백'입니다.

유대인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니 온 몸에 힘이 빠집니다. 어딘가 혼이 빠져나간 느낌입니다. 박물관에서 느낀 떠나간 자들의 빈자리, 공허함에 대해서 곰곰이 곱씹어봅니다. 저는 현재에 올 수 없는 이들의 부재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들의 부재가 만드는 공허함을 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언젠가 어딘가에서 비극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슴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유대인 박물관을 다녀오고 나니 정말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오늘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에 다다른 느낌이라 굳이 무언가 더 보러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오후 시간이 제법 남았기에, 저는 생각을 정리하며 가볍게 산책이나 하기로 합니다.


가볍게 걸으며 도착한 포츠담 광장에는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전시돼있는 걸 보게 됩니다. 대형 쇼핑센터 앞에 세워진 베를린 장벽이라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공원이 나오는데, 곳곳에 추모비문이 보입니다. 나치에게 희생당했던 소수들, 동성애 성향을 가졌던 사람들과 집시들에 대한 추모비문입니다. 그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했던 역사와 함께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지금까지도 고통받는 이들을 지켜나갈 것에 대한 선서가 적혀있습니다. 곳곳에 많은 생각할 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포츠담 광장에 놓인 베를린 장벽의 일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성소수자에 대한 비문

계속해서 걷다 보니 거대한 브란덴부르크 문이 보입니다. 베를린의 상징 같은 건축물이다 보니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북적북적합니다. 개선문답게 시원하게 세워진 문을 보며 복잡한 생각들을 덜어내기로 합니다. 억지로 기운을 내서 사진도 찍다 보니 활기가 조금 나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리기도 하니 조금 반가운 기분도 듭니다.


브란덴부르크 문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여성 둘이 제게 다가옵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해달라며 이야기를 하길래 좋은 일이라며 별생각 없이 사인을 하니, 기부 비를 달라며 저에게 손을 내밉니다. 갑자기 기부금은 다 뭐지 생각하며 5유로 정도나 기부하자고 지갑을 꺼내는 순간, 순식간에 지갑에서 40유로를 빼서 가져갑니다. 제가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니까 10유로는 무슨 비용 10유로는 무슨 비용 하면서 자기들 주머니에 쏙 집어넣더군요. 저는 재빨리 들어가기 직전의 20유로를 다시 가져옵니다만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잠시 뒤 방문한 인포메이션 센터에는 서명을 가장한 날치기 사기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찰의 경고문이 붙어있습니다. 왜 좀 더 빨리 보지 못했던 걸까요. 아니 왜 이런 어설픈 사기에 당해버린 걸까요.


저한테 보여준 서명용지가 정확하게 저 포스터에 있는 용지입니다.


저는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이 매우 기분이 나빠집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북적거리는 인파 중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몇몇 더 보입니다. 서명을 가장한 사기를 당한 지 얼마 뒤에, 자기 휴대폰을 제 손에 쥐어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 혼잡한 공간에서 또 무슨 일인가 생길 것 같아 재빨리 인적이 드문 길로 빠져나옵니다.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위험해 보이기 시작하니까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돌아다닐 기분이 아니어서 숙소로 그냥 돌아가기로 합니다. 숙소까지는 트램과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하지만, 지금은 가능한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가 않습니다. 애초에 여행은 왜 왔을까부터 시작해서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구 떠오릅니다. 이러다간 한도 끝도 없이 우울해질 것 같습니다. 이런 감정은 그때그때 털지 않으면 여행에 큰 지장이 생기고 말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길을 좀 걷기로 합니다. 한 시간이 좀 넘는 길이지만, 길게 뻗은 생태 공원 길을 따라 걷습니다. 숲 길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개를 산책시키거나 조깅을 나온 사람들을 보며 걷고 있자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오는 길에 잠시 들른 전승기념탑

하루를 돌이켜보면 아침부터 감정적으로 조금 지쳐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갖고 있던 불만, 불안, 회의감 같은 게 소매치기를 당한 참에 조금 터진 듯합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래서 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들도 종종 들곤 합니다. '정말로 오기 잘했어'라는 감정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죠. 여행에 있어 자신의 감정을 잘 대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새삼 깨달은 베를린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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