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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준 Jun 26. 2019

6월 9일, 7일 차, 베를린

역시 과학력이 세계 제일인 베를린입니다

아침부터 몸이 찌뿌둥합니다. 머리가 멍하고 몸에 기운이 없는 게 딱 봐도 감기입니다. 심각한 건 아니지만 휴식이 조금 필요합니다. 긴 여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겁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무리하다가 탈이 나면 정말 밑도 끝도 없을 겁니다. 하루 종일 빡빡하게 돌아다닐 예정을 뒤로하고 가볍게 돌아다니기로 합니다. 어차피 아침도 늦어서 많이 돌아다니기는 글렀습니다.


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독일 기술 박물관에 가기로 합니다.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 제일!'이라는 말을 어느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 기억이 납니다만, 실제로 독일은 기술과 공업을 필두로 과학이 전반적으로 강한 국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철교 너머에 위치한 박물관은 외형부터 조금 독특합니다. 'TECHNIK MUSEUM' 한 글자씩 세워진 구리 조각상은 이름표 치고는 크기가 압도적입니다. 커다란 표지 뒤로 창고 같은 건물도 있고 비행기 공장 같은 건물도 보입니다. 공대 출신 아니랄까 봐 괜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강 건너편에서도 잘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
우주연구소처럼 생긴 건물 옥상에 비행기 한 대가 보입니다.


오전에 한두 시간 정도 구경할 거라 생각했던 박물관이었지만, 전부 구경하고 나니 다섯 시간이 지나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동차, 네트워크, 과학 전시관 세 곳을 돌면서, '와 전시관 세 개를 딸랑 5유로 내고 보다니 대박'이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그건 맛보기에 불과했습니다. 처음 본 곳이 별관이고, 메인 건물에는 다섯 개의 전시관이 더 있습니다. 정말 유감없이 볼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가뜩이나 노곤했던 몸이 거의 파죽음이 됩니다. 심지어 점심까지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배도 너무 고픕니다.


다른 말로 하면, 힘든 줄도 모르고 돌아다닐 만큼 대단한 곳이란 뜻일 겁니다. 과학 전시관은 재미있는 과학의 원리를 하나하나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과학관은 아이들을 타깃으로 하지만, 여기 과학 전시관은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어른들이 대부분입니다. 체험의 규모가 다른 느낌입니다. 저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테슬라 코일을 보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자동차, 네트워크, 선박, 항공, 철도, 의약품, 영화기술 전시관은 각각 규모가 정말 어머어머 했는데,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장비들을 다 모아 전시한 느낌입니다. 과거에 사용했던 자동차, 선박, 비행기의 실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철도 전시관의 경우 1800년대부터 각 연도별로 운행했던 기차들을 하나하나 다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은 못해도 수십대는 되는 열차 차량들이 정차해있는 초대형 플랫폼의 느낌입니다. 내부 기관실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어떤 기차는 실제로 구동하는 것도 보여줍니다. 보는 내내 감탄을 연발하면서 어린아이처럼 마냥 신기해합니다.

쓰나미의 원리
테슬라 코일 방전 현상
2018년 구글의 탈세, 탈법에 대항하여 베를린에 구글 캠퍼스가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던 시위의 흔적. 커뮤니케이션 전시관 입구에 당당히 걸려있습니다.
실물 사이즈의 배 건축 재현 모형.
박물관 옥상에 놓여있던 실물 비행기.
기술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기차 전시관. 수십 대의 열차기 서 있는 광경엔 감탄만 나올 뿐입니다.

박물관 구경이 끝나고 노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에 약을 먹기 위한 간단한 쿠키와 물도 챙겨갑니다. 아직 세 시밖에 안 됐고 오늘 한 장소만 움직였지만 도저히 몸이 버티질 못합니다. 저녁의 필하모닉 관람을 위하여 미리 챙겨 온 약을 먹고 조금 잠을 청합니다.


한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두통이 가시고 몸이 개운합니다. 조금 더 자고 싶지만 그랬다간 콘서트를 놓치게 됩니다. 필하모닉은 포츠담 광장 바로 뒤편에 있습니다. 가는 길에 포츠담 광장에서 밥을 먹고 가면 딱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만, 어제 점찍어둔 커리 부어스트 집이 벌써 문을 닫았습니다. 아니 그뿐 아니라 대부분 음식점들이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일요일 오후 7시에 문을 연 밥집이 없다니 조금 충격입니다. 몇 군데 돌아보다가 아시아 전문 음식점이 열려있어 여기서 밥을 때우기로 합니다. 매운 치킨에 밥이 섞인 커리 느낌의 밥이었는데 솔직히 너무 짜서 먹기 힘듭니다.


밥을 먹고 싶긴했지만, 이게 아닌데...

필하모닉에 도착하고 나니 들어가기가 살짝 망설여집니다. 드레스 코드는 맞추어야 하는지, 혹시 챙겨야 하는 매너가 있는지 이것저것 걱정됩니다. 다행히 저 같은 청바지에 셔츠를 입은 여행객들도 있었고 딱히 제제를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브로셔 판매원이 째려보면서 브로셔는 판매용이라서 돈을 내라고 혼낸 것만 빼면 별다른 문제없이 공연 관람을 하러 갑니다.


공연은 진은숙 작곡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페라에서 엘리스 파트만 약식으로 진행하는 공연입니다. 공연을 예약할 때 별생각 없이 시간대에 맞는 공연을 예약했는데, 여기서 한국 사람이 나오다니 조금 신기합니다. 사방으로 트인 공연석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공연은 제법 재밌습니다. 처음에 지루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기괴한 느낌을 잘 살린 유머러스한 공연입니다. 특히 퍼커션 두 명이 뒤에서 거의 뛰어다니며 온갖 악기들을 연주하던 장면이 재밌습니다. 소프라노 분이 앨리스의 정신없는 모습과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들을 잘 연기해서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앨리스의 각 장면들이 상상이 되어 재밌습니다. 특히 twinkle twinkle little bat을 점점 빠르게 부르며 빨려 들어가는 매드 티 파티의 장면이 인상 깊습니다.

사방으로 트여있는 콘서트홀은 매우 현대적인 느낌입니다. 마음에 들어요.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린 포츠담 광장에서 어제 보지 못한 낯익은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광장 한편에 '통일정'이라는 이름의 한국식 정자와 장벽 조각 하나가 세워진 모습입니다. 자세히 보니 한국에서 통일을 기원하며 베를린에 설치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베를린 한가운데서 한국식 건축물을 만나니 매우 색다른 느낌입니다. 조금 반갑기도 하고요. 통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사람들은 통일정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숙소로 돌아옵니다. 벌써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돌아보는 베를린의 하루입니다.


통일정과 그 설명. 거대한 쇼핑몰 포츠담 광장 옆에 조그마한 한국식 정자는 존재감부터 남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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