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아주 어렸을 때, 소위 서부영화가 극장가를 주름잡을 시절에 독특한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반 클맆 주연의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우리말 제목으로는 황야의 무법자였는데, 무슨 생각으로 번역을 한건지 잘 모르겠다). 이게 내 눈길을 끈 이유는 당시의 서부영화는 물론, 옛날 이야기, 전쟁 이야기, 성경 이야기 등 모든 이야기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두 가지만 나오는데, 이 영화에는 good, bad, 그리고 ugly의 세 가지가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선과 악,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 음과 양, 남자와 여자, 북한과 남한, 흑과 백, 뭐 이런 식의 이분법에 익숙하던 나에게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것은 꽤 낯선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어려서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다. 한데..
최근 중국과 한국의 대학에 디자인과 디자이너, 그리고 좋은 디자이너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특강을 준비하다가 퍼뜩 그 예전 영화 제목이 떠오른 것이다. 좋은 거 나쁜 거 잘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글리 한 디자인, 어글리 한 디자이너란 뭘까. 갑자기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만 보던 디자인에 새로운 물꼬가 생긴 것은 다분히 그 예전 영화 덕분이다. 엔니오 모리꼬네 작곡 주제가의 휘파람 소리가 입술을 간지릴 정도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생각을 정리했는데, 그 이야기를 해본다.
1993년. Royal College of Art에 유학할 당시 친구들과 같이 이태리의 carrozzeria (자동차 디자인과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디자인 용역사)들을 졸업여행 삼아 방문한 적이 있다. 이태리의 자동차 디자인 용역사들인, 또 생산 능력까지도 있는 carrozzeria들이 지금은 사양길로 접어들어서 다른 회사에 인수되거나 이미 문들 닫은 경우까지 있지만, 이때만 해도 한참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때였다. 이때 방문한 곳은 Ital Design, Bertone, Pininfarina, I.DE.A 였는데, 모든 회사에서 우리 일행들에게 자신들이 디자인한 컨셉트카, 디자인 스튜디오, 생산 시설들을 보여주는 등, 상당히 환대를 받았다. 특히 Bertone에서는 잡지에서나 보던 컨셉트카들을 모두 다 전시하고, Stratos와 Blitz는 직접 주행을 해 볼 수 있게 하는 등의 드문 기회도 있었다. 그 중, I.DE.A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I.DE.A의 창업자인 Franco Mantegazza와의 브런치를 겸한 대화 중에 내가 굿 디자인을 만드는 것들에 대한 정의를 물었는데, 그의 답이, 굿 디자인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답이 이어진다. 첫째는 Good style. 즉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둘째는 Good engineering. 즉 기능과 성능을 만족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것도 당연한 이야기. 한데 여기서,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아름답고 쓸만하면 다 된 거 아닌가? 사람들의 경우에도 멋지고 사람 구실을 하면 된 거 아닌가? 뭐가 더 필요하지? 사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분법의 논리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몸과 마음, 형태와 기능 ("Form follows function" 에서와 같이), 보수와 진보 등등. 따라서 아름답고 기능이 만족스러우면 완전한 것이라는 생각에 이미 충만해 있던 나는 그가 세 번째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매우 궁금해졌다. 아마도 원가나 가격 같은 것을 말하려나?
그가 말한 세 번째는 "Sense of humor".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답이었다. 유머 감각이라니. 진지하게 좋은 디자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의 설명은 아무리 아름답고 기능이 좋아도 즐겁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흐음.. 그렇지. 사람들 가운데에도 멋지고 또 능력도 있지만 같이 있어도 즐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 역시 즐거움을 추구하는 이태리 사람다운 시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여자들이 자신들을 잘 웃게 만들어 주는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Good style, Good engineering, Sense of humor. 이 세 가지가 잘 만나야 할 것이다. 굿 스타일에 유난히 치중된 디자인이라면 그저 모양만 예쁘지 쓸모는 없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Beauty is skin deep이라는 이야기도 이런 것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굿 엔지니어링만 돋보이는 디자인은 곧 따분해 지거나 아예 쳐다보기 싫을 수도 있다. Sense of humor 에만 몰두한 디자인이면 가볍거나 우스운 디자인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난 2003년, 신시내티 대학에서 교수 초빙을 받고 인터뷰 차 대학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저녁에 호텔에서 TV를 보는데, 그전에도 또 그 후로도 보지 못한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제목도 좀 민망스러운 "Are you hot?" 부제는 더 민망한, The search for America's sexiest people. 케이블 방송도 아니고, 미국 대형 방송사인 ABC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인대회와 요즘 인기인 America's got talent를 합친 것 같은 방송이었다. 무대가 있고 그 앞에는 서너 명의 심사위원들이 앉아있다. 그리고 무대 위로는 남자 또는 여자가 한 사람씩 나름대로 매력적이거나 섹시한 의상을 입고 올라와서 나름 가장 자신 있는 포즈를 취하면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이런 식으로 점수를 매긴다. "얼굴은 10점 만점에 8.5점, 몸매는 10점 만점에 9점..." 여기서 나는 또 의문을 가진다. 외모를 보고 점수를 매기는 이런 프로그램에서 얼굴과 몸매면 다 된 거 아닌가..? 뭘 또 바라지?
이어지는 평가가 예상 밖이었다. "... 그리고 성적 매력은 10점 만점에 8점." 이런 식이다. 그렇지, 프로그램이 The search for America's sexiest people니까 당연히 성적 매력, sexual appeal을 따져야지. 한데, 재미있는 것은 얼굴과 몸매, 그리고 성적 매력이 언제나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얼굴은 10점 만점에 8.5점, 몸매는 9점, 성적 매력은 10점 만점에 2점" 같은 경우도 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얼굴과 몸매에 대한 좋은 평을 듣고 기뻐하던 출연자가 낮은 성적 매력 점수를 듣고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평소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기고 몸매가 좋으면 당연히 매력이 있다는 생각을 여지없이 부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다음 날 대학에서의 특강 시간에 이날 본 프로그램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어서, "흔히 디자인을 할 때 Form follow function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형태와 기능을 중요시하지만, 설사 이 두 가지가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사용자/구매자가 손을 뻗어서 잡게 만드는 것은 형태와 기능이 아닌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사람의 마음과 손을 끄는가. 무엇이 소위 Moment of truth를 만들어 내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빠지면 결코 굿 디자인에 도달하지 못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전날 밤의 3류 방송 프로그램이 좋은 특강 소재를 준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I.DE.A에서 이야기하던 sense of humor와 sex appeal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스타일과 엔지니어링, 또 얼굴과 몸매가 모두 그 제품 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라고 한다면, 유머 감각과 성적 매력은 그 제품 또는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의 gravity 같은 것이다. Sense of humor라고 해서 꼭 상대를 웃겨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상대과 코드가 맞지 않으면 절대 웃길 수 없는 것처럼, 상대와의 교감이 잘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라고 해석한다. 성적 매력이라고 해서 꼭 sexual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매력, 즉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과연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즐겁게 만드는가, 무엇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다가오게 만드는가. 디자이너들이 굿디자인에 도달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2007년 즈음의 일이다. 내가 산업디자인을 가르치던 신시내티 대학교의 건축과 학생 몇이 내게 산업디자인의 개요에 대해 10분간의 특강을 부탁한 적이 있다. 10분. 디자인에 대한 강의를 한두 번 한 것이 아니지만, 10분간, 그것도 디자인 전공이 아닌 학생들에게 디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특강을 하라니. 마치, "자, 당신에게 끝으로 10분을 줄 테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해. 후회하지 않도록. 마지막 기회니까."라는 느낌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할까, 방법을 이야기할까, 아니면 디자인 프로세스를 이야기할까. 며칠을 생각한 끝에 학생들에게 해 준 이야기는 제대로 된 디자인이라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학생들이 건축을 할 때에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Design as logic - Designs that do the job
망치라면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곳에 못을 박을 수 있을 것. 작업용 의자라면 편안히 앉아서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할 것. 휴대용 물병이라면 물이 쏟아지지 않고, 필요할 때 쉽게 열 수 있으며, 가지고 다니기에 적당하고 하는 등등의 목적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디자인을 말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들릴 것이다. 그렇지 않은 디자인도 있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디자인이 많다.
아직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헌법 1조 1항처럼 여기는, Louis Sullivan이 이야기 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라는 명제는 바로 이 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Sullivan이 이 당연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굳이 했다는 것은, 건축물을 포함한 당시의 대부분의 디자인들이 기능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의 반증이다. 인체의 비례와 치수를 기본으로 건축물을 설계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모듈로 (Modulo) 개념을 주창한 르 코르뷔지에도 건물의 디자인은 그 본질인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만족시키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설리번과 르 코르뷔지에가 말하는 기능이 “기계적인” 기능이라면, 기능을 다양한 각도에서 정의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가수를 이름 그대로 '노래 부르는 사람'으로 보는 것과, '연예인'으로 보는 것에 따라서 기대하는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 노래라도 음악성을 중시할 수도 있고, 상업성을 원할 수 있다. 제품의 경우에도 주된 기능을 무엇으로 정의하는가에 따라서 디자인의 방향도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자동차를 운송수단으로 보는 것과 나를 표현하는 도구 중의 하나로 보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
결과적으로 로직으로서의 디자인은 논리적, 합리적인 디자인, 즉 기대하는 기능과 목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말한다. 이러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방법은 많이 개발되어 있다. 인간공학, 시인성, 인지공학, 사용성, 사용자 조사 등등, 디자이너들이 이미 활용하고 있는 기법들은 수업이 많다. 이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기대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위험에 처하게 하는 디자인이 너무도 많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Don Norman이 Design of Everyday Things라는 책 (원래의 제목은 Psychology of Everyday Things)에 잘 적어 놓았다.
두 번째: Design as Magic - Designs that bring pleasant surprises
모든 것들이 합리적이기만 하다면, 즉 모든 것이 그저 기대한 만큼의 역할을 한다면 편리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즐거움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루하거나 꽤 따분할 수도 있다. 매직으로서의 디자인이란 기대하지 않은, 기대한 이상의 즐거움을 주는 디자인을 말한다.
일반적인 컴퓨터 마우스는 최소한 두세 개의 버튼과 휠을 사용해서 조작하도록 되어있는 반면, 애플의 매직 마우스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도 없는, 납작한 계란 같은 모양이지만, 모든 조작이 가능하다. 이 마우스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지만, 이내 다른 마우스로 하던 모든 일들을, 그것도 훨씬 부드럽고 우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다. 이 경우,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은 처음에 “이게 뭐지?”에서 곧 “아하, 이거로군!”으로, 즉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에 일어난다.
매직으로서의 디자인은 단순히 재미있는 물건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직까지 생각하지 못했고 따라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Chronicles of Narnia에 등장하는, 술래잡기하다가 잠시 숨으려고 들어갔던 옷장처럼,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것을 말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을 주는 디자인을 하려면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즉 기대되는 기능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또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을 주는 디자인을 굳이 매직으로서의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마술사들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사람들의 눈앞에서 전혀 눈치챌 수 없도록 해내는 정도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은 강조하는 의도도 있다. 즉 매직으로서의 디자인을 하는 데에는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능력과 그 인사이트를 디자인으로 완벽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모두가 필요하다.
세 번째: Design as Music - Design that moves people
음악은 참 신기한 능력을 지녔다. 모든 음악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음계의 조합을 목소리나 악기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어떤 음악은 우리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며, 어떤 음악은 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한다. 어떤 음악은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아주 잠깐 들었을 뿐인데 하루 종일 흥얼거리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음악은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에 기꺼이 나가게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음악은 죽음 후의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하기도 하고, 어떤 음악은 평생 잊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즉 음악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디자인이 사람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디자인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새로운 생각과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사람들에게서 잊히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런 디자인이라면 참 멋질 것이다. 아니, 사실 이런 디자인이야말로 디자인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신시내티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2003년에 부임해서부터 Inclusive Design Seminar 수업도 하고, Inclusive Design을 중점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수업도 많이 했다. Inclusive Design이란 한국과 일본에서는 주로 Universal Design이라고 불리는 개념으로, 신체적, 경제적, 문화적 등등의 차이와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을 말한다.
내 수업을 들은 학생 가운데 하나인 라이언 이더 Ryan Eder는 수업 후 피트니스센터를 자주 찾는 친구였는데, 하루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와서는 상당히 불편한 과정을 거쳐서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통한 해결을 생각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운동기구들은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휠체어 사용자들이나 다른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운동기구의 사용이 불가능하거나 아주 불편하므로 아예 피트니스센터에 오지를 않는다. 라이언은 그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서 휠체어 사용자들, 트레이너들, 의사들을 인터뷰하고 운동 상황들을 관찰해서 일곱 가지 유형으로 문제를 정리하고, 각각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해결방안들을 개발하였다. 문제의 발견, 해결 능력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스케치, 디지털 모델링 등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학생인 라이언은 이를 종합해서 완성한 디자인 졸업전에 전시하고, 이듬해인 2017년에 IDSA에서 주관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상인 IDEA (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에 출품, 학생 부문 금상, 공모전 전체의 대상, 그리고 사람들이 뽑은 People's Choice 모두를 석권하였다. 워낙 훌륭한 디자인이니까 학생부문의 금상을 받은 것은 예상했지만, 전 부분이 대상을 받을 것으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학생 작품이 대기업과 전문 디자이너의 작업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은 예는 없었다.
이러한 성과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수상을 하러 올라갈 때마다 장애인들에게 불평등한 환경을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노력을 영상과 함께 설명하였고, 이를 듣던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장면이었다. 결국 이 디자인을 현실화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기금이 모아지고, 갓 졸업한 젊은 디자이너이던 라이언은 곧 이 디자인을 제품화하기 위한 회사를 만들어 거의 십 년간 개발에 매진한 끝에 제품화가 거의 완성되었다.
전쟁에서 팔을 잃고 돌아온 군인들이 자기 손으로 포도를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개발한 Luke Arm,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름 사람의 도움 없이 이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iBOT Mobility System 등도 Design as Music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iBOT의 개발 과정 중에 일반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초청한 사용자 테스트에서 두 바퀴로 일어서는 기능, 즉 balance mode에서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비로소 눈높이에서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음악으로서의 디자인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데에서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https://www.ted.com/talks/dean_kamen_previews_a_new_prosthetic_arm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디자인은 꼭 이러한 거창한 디자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10년, 신시내티 대학교의 디자인 졸업반 학생이었던 Kathryn Holshouser는 졸업 디자인 과제로 직장을 가진, 어린아이가 있는 여성을 위한 유축기 breast pump를 디자인한 적이 있다. 단순히 기계적인 도구로서의 유축기가 아니라, 어린 아기를 집에 두고 온 여성이 마치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컨셉트의 디자인이다. 한나절 사랑하는 아기를 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그리고 수없이 많은 디자인 모형을 만들어 가면서 최적의 디자인 해결안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 과정까지도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해 졸업 전시회에서 학부장이 뽑는 Director’s Choice Award를 주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요즈음 디자인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된 Empathy, 즉 공감은 디자이너로 하여금 감동을 주기 위한 디자인의 가장 중심이 되는 passion 및 compassion을 가지게 해주는 첫 단계다.
http://www.coroflot.com/people/project?id=1340893&user_id=153558
좋은 디자인이 있다면 나쁜 디자인도 있다. 있어도 너무 많다는게 문제다.
Franco Mantegazza 가 이야기한 Good style, Good engineering 그리고 Sense of humor가 있는 것이 좋은 디자인의 조건이었으니, 이것들을 뒤집으면 일단 나쁜 디자인이 쉽게 정의될 것 같다. 즉, Bad style - 미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디자인, Bad engineering - 제 기능을 못하는 디자인, 그리고 Bad sense of humor - 즐겁게 해 주지 못하는 디자인이라면 나쁜 디자인일 것이다. 이 중에 하나만 제대로 되지 않아도 좋은 디자인일 수가 없다. 즉 나쁜 디자인이 되는 것이다.
Are you hot?에서의 기준 중의 하나인 '성적 매력', 즉 사람을 끄는 힘은 있어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디자인이라 해도, 제대로 기능을 못한다면 이것도 나쁜 디자인일 것이다. 아무리 멋지고 뛰어난 기술을 탑재하고 있더라도 휴머니티를 제대로 고양시키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도 결코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여기서 휴머니티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생태계, 사회 등, 디자인이 배려해야 할 모든 것이다. 즉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은 가장 중요한 것을 하지 않는 디자인이다.
좋은 디자인의 조건중 가장 기본적인 것인 로직으로서의 디자인, 즉 기대하는 기능을 만족하지 못하는 디자인은 나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들로 하여금 혼란을 주고, 실수하도록 하고, 다치거나 심지어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게 하는 디자인이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다. 길을 잃기 쉽도록 만드는 표지판, 켜고 끄는 것을 반대로 만든 스위치, 당겨야 열리는지 밀어야 열리는지 불분명한 문 (미국에서는 공공건물이나 방에서 나가는 문은 반드시 밖으로 열린다. 화재 시에 바로 밀고 나갈 수없으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 어떤 쪽으로 돌려야 더운물이 나오는 건지 잘 알 수 없는 수도꼭지, 샴푸인지 린스인지 알 수 없는 용기,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사진에 보는 호텔용 바디케어 제품의 용기 디자인의 경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제품 브랜드는 크고, 정작 중요한 제품 이름은 잘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중요한 것의 주와 객이 바뀐 것이다. 읽을 수 있더라도 영어를 모르면 사용할 수 없다. 비슷한 색이어서 구분도 쉽지 않다. 게다가 정작 샤워 중 손이 젖으면 예쁘고 동그랗고 매끄러운 뚜껑은 열리지 않는다. 힘주어 열심히 열려고 하다 보면 균형을 잃어서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져 다칠 수도 있다. 작은 용기 뚜껑 하나가 여행 전체를 망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타는 Isuzu Vehicross 의 경우, 연료 게이지는 계기판의 오른쪽 아래에, 연료 경고등은 왼쪽 아래에 있다. 그 차의 크루즈 컨트롤 레버는 누르면 크루즈가 켜지는데, 다시 누르면 꺼지는게 아니라 속도가 내려간다. 크루즈를 끄려면 레버를 아래로 내려야 한다. 위로 올리면 속도가 빨라지는데, 아래로 내리면 속도가 내려가는게 아니라 크루즈 컨트롤이 꺼진다. 이 차를 16년간 운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혼동스럽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런 걸로 혼동하게 만드니 아직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대견스러울 정도다.
자신의 작품 의도만 고집하고 그 디자인을 사용할 환경과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은 나쁜 디자인이다. 나쁜 디자인의 또 하나의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1998년쯤, 한국의 사무가구회사인 퍼시스에서 디자인 연구소장으로 일할 때의 일이다. 인천 국제공항을 짓기 위해 선정된 프랑스 건축가가 공항의 건축물을 디자인하면서 터미널 의자도 디자인을 했고, 퍼시스는 제조사로 지정되어 그 의자의 생산을 맡게 되었다. 따라서 나의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은 거의 없고, 그 건축가의 디자인을 생산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일만 하면 되었다. 문제는 그 디자인이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의 디자인은 양쪽 끝에 각이 날카로운 직사각형 화강석 테이블이 붙어있는데, 이대로 만든다면 종종 바쁘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리를 다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또 서로 등을 마주 댄 의자들을 너무 가깝게 배열해 두어서 사람들이 뒤통수를 서로 부딪칠 일이 자주 있을 것이 뻔했다.
이 두 가지 문제의 수정을 요구했지만 그 건축가는 자신의 ‘작품’을 고칠 수 없다고 맞섰고 나는 불 보듯이 예상되는 위험성을 그대로 안고는 생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언쟁 끝에 그 건축가는 손을 떼고 나와 우리 팀의 디자인이 새로 디자인한 의자가 오늘까지도 인천 공항에 있는 터미널 의자다. 자화자찬 일지는 몰라도, 세계 그 어느 공항의 의자들과 비교해봐도 가장 심플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공항 의자다.
한마디로, 제대로 되지 못한 디자인은 나쁜 디자인이다. 사용하기에 불편하거나 많은 노력을 해야만 익숙해지는 디자인들도 나쁜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그 반대는 어떤가. 사용하기 쉽고, 직관적이어서 쉽게 익힐 수 있고, 실수를 줄여주고 귀찮은 일 또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을 대신해 주는 그런 디자인은 어떤가. 모든 기술을 총망라해서 인간의 삶을 극도로 편리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인공지능,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을 탑재한 그런 제품은, 자동으로 운전해 주고, 자동으로 주차해 주고, 우리가 내려야 하는 수많은 결정을 스스로 내려주는 그런 제품들이 과연 좋은가 아니면 나쁜가.
딱히 나쁜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결과가 나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류의 기술 발전은 더욱 편리한 세상을 만드는 것인데, 문제는 모든 편리함에는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는 점이다.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Convenience comes with a cost. 문제는 이 대가가 때로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을 대신 기억해주는 스마트 폰이 더욱 스마트 해질수록 그 스마트 폰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우리는 점점 덜 스마트해진다 (이건 내 이야기). 내비게이션 맵의 기능이 탁월해질수록 길을 찾고 기억하던 능력이 사라져 간다 (이것도 내 이야기). 차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이 있는 자동차를 운전하면 차선을 지키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것 역시 새로 산 자동차 이야기). 자동차가 스스로 알아서 주차를 해주는 바람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주차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있다. 자율주행이 보편화되면 운전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검토해서 결정을 내려줄 인공지능의 시대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들은 점점 판단력조차 없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이 충분히 보인다.
다소 과장으로 들릴 수도 있는 이런 이야기들은 불행하게도 과장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우리는 이러한 편리함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 관심, 판단력 심지어는 도덕성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영화 Brazil (1985년)에 그려진 미래의 사회는 정보 가치의 극대화, 성형, 권력의 편중과 줄 서기 등을 통해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진 암울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돌이킬 수 없이 움직이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본다.
영화 Wall-E (2008)에서 미리보기로 보여주는 미래의 사회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기술의 진보와 자동화 등등이 지구와 인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아이들의 애니메이션이라기 보다는 어른들, 특히 디자이너들이 노트 필기 해 가면서 봐야 하는 메시지를 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앞으로 700년 후에 벌어질 모든 것이 고갈된,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된 지구와, 지구를 떠나서 모든 기술이 진보된 우주선에서 인간의 모습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있는 미래를 보여주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러한 환경이 되기에는 700년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출장 중 애틀란타 공항에 있는 델타 라운지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나쁜 디자인. 어떤 것이 스푼, 포크, 나이프인지 알아맞혀 보자. 실버웨어도, 또 그것들을 담아 둔 박스들도 각각은 좋은 디자인이다. 따라서 디자이너 레벨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한데, 어떤 게 어떤 것인지 일일이 꺼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도록 만든 라운지의 운영자 레벨에서 나쁜 디자인이 되어 버렸다. 나쁜 디자인이란 반드시 제품의 나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용단계에서도 나타 날 수 있다. 생각없는 디자인은 나쁜 디자인.
Ugly design, 즉 추한 디자인은 외모가 추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추한 디자인은 앞의 좋은, 그리고 나쁜 디자인과 어떻게 다른가. 좋은 디자인은 좋은 의도로 시작해서 좋은 결과물로 마무리된 디자인이라면, 나쁜 디자인은 의도는 좋았더라도 결과물이 좋지 못한 디자인을 말한다. 디자인 실력이 나빴거나, 디자인 연구가 부족했거나, 디자인 과정이 엉망이었거나, 그런 등등의 이유로 좋은 의도있었더라도 나쁜 디자인으로 마무리되는 일은 허다하다.
추한 디자인은 나쁜 의도로 출발한 디자인을 말한다. 당연히 결과도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나쁜 디자인이 제품으로서 멋지게 보일 수도 있고 또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추한 디자인은 더러 상업적으로 성공한다. 그 때문에 나쁜 의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나쁜 디자인보다도 추한 디자인이 더 많다.
1950년대, 미국 General Eelctric에서 처음으로 선풍기를 만든 이후로 60년이 넘도록 더 나은 모양의, 더 안전한, 더 조용한, 더 똑똑한 선풍기들이 만들어져 왔다. 그 오랜동안의 기술적, 디자인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의 이름은 늘 '선풍기'였고, 전기 모터와 날개, 혹은 blade도 없어지지 않았다. 선풍기에서 날개는 없어서는 안 되지만, 안전, 소음, 바람의 파동에서 오는 불쾌감, 위생 등, 늘 골칫거리를 안고 있는 요소다. 선풍기 디자이너라면 이러한 문제점을 모를리 없지만, 이것을 없애버릴 용기가 있는 디자이너는 불행하게도 없었다.
2009년, 이러한 용기 + 디자인 능력 + 엔지니어링 능력이 있는 디자이너인, 게다가 사업가적 능력까지 있는 James Dyson이 모터와 날개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제품을 디자인하고, 이름도 더 이상 선풍기, 즉 Electric fan이 아닌 Air Multiplier로 불리게 되었다. 인공적인 바람을 만드는 방법에 전환을 가져온 이 제품이 등장하자마자 중국에서는 수많은 유사제품이 만들어졌다. 똑같이 베끼기가 무안했던지, 나름대로의 '터치'를 더한 것이 더 가관이다. 다른 사람의 엄청난 투자와 노력의 결실인 혁신적인 제품을 죄책감없이 바로 약간의 모양만을 바꾸어 knock-off들을 만들어 낸, 바로 이런 것이 추한 디자인이다.
중국의 자동차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외국의 디자인을 모방한 자동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의 백미는 감각적인 아름다운 디자인의 SUV인 Range Rover의 Evoque의 모방 제품인 Land Wind의 X7이다.
자동차 모델의 개발에는 막대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들 고유의 창의력은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인 오리지널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복사하듯이 옮겨서 4분의 1도 안되는 가격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두말할 필요없는 추한 디자인이다.
추한 디자인의 사례는 끝도 없이 많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전자의 계열회사였던 금성통신에서 만든, 198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전화기가 있다. 당시 투박하고 묵직하고 무표정한 탁상용 전화기 디자인에 비해 유선형으로 매끈하게 '잘 빠진' 이 전화기는 정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응답하라 1988에 덕선이가 사용한 소품으로 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알만하다.
이 예쁜 전화기가 추한 디자인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은 국제적인 디자인 도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 전화기의 디자인이 등장한 1986년 Car Styling지에 "Design Imitation Today 오늘날의 디자인 모조품"이라는 기사로 부터다. 유고슬라비아의 디자이너인 Davorin Savnik 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유고슬라비아의 Iskra사의 ETA 80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의 디자인 상을 휩쓸었고 여러 나라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판매되었다. 탁상용 전화기의 역사상 이렇게 심플하고 감각적이며 만지고 싶고 괜히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디자인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여러 곳에서 모조품이 등장하는데, 소위 지적재산권의 선진국인 미국에서 2개사, 홍콩의 1개사, 그리고 한국의 1개사 - 금성통신 - 이 각각 복사한 듯이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Car Styling의 기사에 따르면 디자이너인 Davorin Savnik은 ICSID가 주최한 World Design 1985에 초청받아 왔다가 우수디자인 전시관에 버젓이 전시된 금성통신의 전화기를 보고 엄청나게 분노했다고 한다. 아주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추한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나쁜 의도는 종종 기업이나 클라이언트에게서 온다. 쉬운 성공을 위해서 다른 기업이 만들어낸 것을 도용하라는 지시를 디자이너에게 하고, 또 디자이너는 이러한 나쁜 지시에 No라고 말할 용기가 없으면 결과적으로 추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게 된다.
1980년 정도라고 기억되는데, 지금의 GM 대우 자동차가 새한자동차로 불리다가 막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꾸었을 시절의 일이다. 내가 1978년 10월 새한자동차에 입사했을때 대주주가 이미 GM 이었고, 경영은 대우 그룹이 맡고 있었다. 소규모이던 디자인실에서는 독일 Opel의 Rekord라는 중형 승용차를 로얄이라는 이름의 자동차로 국산화하는 작업이 막 시작되었고, 당시 사장으로 있던 분이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면서 Pontiac Firebird의 테일램프를 한 개 가지고 왔다. 당시 디자인실을 담당하던 기술부 부장을 통해서 내게 그 램프 디자인 그대로 테일램프를 만들라는 지시를 해 온 것이다.
하늘같은 부장이 전달해 온 더 높은 하늘같은 사장의 지시를 아직 어린 디자이너가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당시의 수직적 기업 문화에서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나는 내게 맡겨진 그 프로젝트를 포기하였고, 결과적으로 다른 디자이너가 '기쁜 마음으로' 그 디자인을 미제 램프와 유사한 모양으로 만들어 내어서 로얄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출시가 되었다. 추한 디자인의 탄생이다..
추한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디자이너의 상상력의 부재다. 1977년 경 Apple II 컴퓨터가 등장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삼보 컴퓨터가 만든 Apple "호환기종"인 TriGem 20은 마치 어릴 때 헤어진 쌍둥이처럼 닮았다. 이 TriGem 20의 디자이너는 이 디자인으로 디자인지에 소개가 되기도 했고, 또 유명 대학교에서 수십 년간 디자인을 가르치며 많은 디자이너들을 배출했다. 아직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이 디자이너는 학생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쳤을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추한 디자인이 쉽게 근절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다.
Designers are what they design
흔히 쓰는 말로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는 (또는 우리의 건강은) 우리가 먹는 것에 달렸다는 정도로 번역이 된다. 디자이너에게는 Designers are what they design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데, 이는 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것으로 보면 그 디자이너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당연히 좋은 디자이너이다. 의도도 좋고 디자인 과정과 능력도 좋은 디자이너들이다. 나쁜 디자인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은 설사 의도가 좋더라도 디자인 능력이 부족하고 과정이 좋지 못해서 나쁜 디자인을 만들게 되기 때문에 더 공부하고 노력해서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한다. 추한 디자인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은 의도도 악하고, 상상력도 없고, 능력도 없으며, 부끄러움도 모르는 디자이너들이다.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