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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신 Dec 29. 2017

배려하는 디자인 -
인클루시브 디자인

디자인의 본질은 배려.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인의 본질: 배려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인을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디자인의 본질은 배려다. 사용자에 대한 배려는 물론이고, 그 제품의 개발, 생산, 유통, 관리, 심지어는 그 제품이 수명을 다하고 '퇴장'을 할 때까지 관여되는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거꾸로 말해서, 배려가 빠지면 제대로 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좀 과격하게 들리긴 하겠지만,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자동차 디자이너로, 가구 디자이너로, 또 다른 제품 디자이너로 바쁘게 지낸 시간 동안 디자인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또 내가 디자인하는 제품들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많이 기울였지만, 정작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다양성에 대해서는 그 정도의 노력을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통일성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상황도 그렇고, 단일 민족이라는 구성과 또 효율을 중시하는 가치관에서도 항상 통일성(unity)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다른 생각이나 여건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예전에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 중국집에서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시키자 주문을 받던 친구가 같은 걸로 '통일'하면 빨리 나온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통일성을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종교요 문화가 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가치는 통일성이 아니라 다양성(diversity)이다. 어차피 미국인들이 여러 나라,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이고, 유럽인들은 서로 혈통이 섞여서 살다 보니, 각각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같이 사는 법을 배워서 일수도 있다. 다양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을 나온 후 같은 대학교의 대학원을 가는 일이 아주 드물고, 게다가 자신이 졸업한 학교에 교수가 되는 경우도 드물다. 왜냐면 다른 학교에서 공부를 한 사람을 교수로 영입을 해야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각이 배려하는 디자인, 즉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바탕이 된다.



디자이너들은 일반적으로 그 제품을 사용할 사람들을 가정해 놓고, 이 잠재 자용자들의 행동을 관찰, 분석하고, 이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퍼소나 (Persona)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퍼소나가 특정한 시나리오 상황에서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낸다. 물론 디자이너에 따라, 디자인 프로세스에 따라, 또 제품에 따라 많은 다른 형태가 있지만, 대략 이런 식으로 사용자들을 배려하는 디자인을 한다.


퍼소나는 대략 이런 식이다. "32살인 Mark Taylor는 두 아이를 가진 아빠로, 은행의 투자상담 직원이고, 아내는 도서관에서 일한다.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Mark의 연봉은 75,000불이고, 교외에 살고 있으며, 주말에는 주로 아이들을 축구 시합에 데려다주고 응원을 한다.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내와 같이 저녁 요리를 하고,." 이러한 퍼소나를 통해서 주된 사용자층의 평균 나이, 교육 수준, 생활환경, 라이프 스타일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해당하는 제품을 사용하게 되는 경험을 기술하기 위한 시나리오는 대략 이런 식이다. "Mark는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4시 30분에 퇴근을 하는 길에 식품점에 들려서 저녁 재료를 구입한다. 식품점에서는 그날 저녁 메뉴를 생각하면서 재료를 구입하는데, 때로는 이미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료를 또 사기도 하고,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보려는 날에는 어떤 재료를 얼마나 사야 하는지에 꽤 신경을 쓰느라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이 시나리오에는 이미 디자인 문제가 잘 나타나 있어서, 이런 내용들을 잘 연구하면 획기적인 쇼핑 경험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재료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 수 도 있고, 식품점 입장에서는 새로운 메뉴와 레시피를 제공해서 매출을 늘일 수도 있다. 


이러한 퍼소나와 시나리오를 만드는 방법은 디자인 작업에 큰 도움을 주는 반면, 그 퍼소나에 반영되지 못한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하거나 불가능한 디자인을 만들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 디자인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 예를 들면 신체적 혹은 정신적 차이, 언어나 문화적 배경의 차이, 교육이나 경제 수준, 성별과 나이 등의 다양성을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은 퍼소나에서 열거하는 특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 즉 exclude 하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디자인은 배제하는 디자인이다. 다만 우리가 이미 익숙한 나머지 잘 모르고 지나칠 뿐이다.

배려하는 디자인과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

흔히 볼 수 있는 문 손잡이는 오른쪽에 있는 것과 같은 동그란 모양이다 (도어 놉 door knob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모양의 손잡이를 사용하는데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손잡이를 사용하려면 적어도 한 손은 자유로워야 하며, 손잡이 부분을 단단히 잡아서 돌릴 수 있을 정도의 악력이 있어야 하고, 손목의 움직임이 자유로와야 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이 조건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사용을 배제된 디자인이다. 설사 그 조건을 충족했다 하더라도 마침 손에 비누가 묻었거나, 양 손 가득 중요한 것을 들었다거나, 사고로 손가락이 없는 경우는 문을 열 수 없고,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의 대가는 때로 참혹하기까지 하다.


왼편의 손잡이는 일반적으로 도어 핸들 door handle이라고 부르는데, 손가락이 없어도, 손이 미끄러워도, 양 손 가득 물건을 들었거나 심지어 양 손이 다 없는 경우도 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배려하는 디자인이다. 배려하는 디자인은 편리한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살린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전형적인 사례다.




잠시 디자인이 발달해 온 과정을 보면 디자인이 관심을 가져온 것이 변화해 온 과정을 볼 수 있다. 디자인이 전문적인 분야로 만들어지기 전 시기를 프리 디자인 pre-design이라고 부르자. 산업 혁명이 막 이루어진 때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이때의 모든 관심사는 아름답고 즐거운 물건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르누보의 장식적인 넝쿨 조형이 그랬고, 내가 어릴 때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Singer재봉틀에 그려진 꽃과 다양한 장식이 그랬다. 우리나라 디자인 교육을 시작한 학과의 명칭도 장식 미술과, 응용 미술과, 공예과 등으로 불렸다. 잘 그리고 잘 만들면, 즉 손재주가 좋으면 좋은 '디자인'이 만들어지던 시절이다. 


바우하우스 이후 단순히 물건을 아름답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능을 형태에 제대로 접목하는 노력이 많아지고 산업디자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험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디자인이 인간공학, 마케팅 등 주변 분야를 다루기 시작하고 이어진 대규모 전쟁과 시장에서의 경쟁이 디자인이 더욱 사용자의 경험을 중요시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점차 디자이너의 관심이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닌 사람들의 경험으로 넓혀지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즉 장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경계를 극복하게 도와주는 Barrier-free design, 그리고 연령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기 위한 연구 DesignAge 등이 등장한 것이 이 무렵이다. 


Barrier-free design은 North Carolina 주립대에서 Universal design으로 발전하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건축물의 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법 (ADA 혹은 Americans with Disability Act)도 제정이 되었다.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Universal design 개념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반면 영국 Royal College of Art에서 시작된 DesignAge는 Inclusive design으로 발전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의 개발에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인클루시브 디자인과 유니버설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과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지향하는 바가 상당히 비슷해서 유사한 의미로 종종 사용되지만, 뉘앙스면에서는 아래와 같은 차이가 있다. 특히, 유니버설 디자인은 '(거의)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반면,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한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공용성을 강조하는 반면,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다양성을 추구한다.

인클루시브 디자인과 유니버설 디자인의 비교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원칙과 방법


유니버설 디자인의 원칙은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의 유니버설 디자인 센터 가 개발한 Universal design principles에 잘 정리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쉽고 직관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정보, 실수에 대한 용인, 적은 힘을 들여서 사용할 수 있으며, 그리고 적당한 사이즈와 충분한 스페이스의 일곱 가지이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에도 이와 유사한 원칙들이 사용된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원칙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프로세스는 일반적인 디자인 프로세스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각 단계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려하는가가 다르다. 영국 Design Council이 개발한, 흔히 Double Diamond Process라고도 부르는, 디자인 프로세스에 인클루시브 디자인 과정을 얹으면 아래와 같이 될 것이다.


인클루시브 디자인 프로세스

첫 번째 - Discover, 즉 문제의 발견 단계에서는 디자인될 제품의 사용 환경, 현재의 문제점들, 잠재 사용자들의 행동방식 등을 발견하는 것인데, 특별히 여러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차이와 그 이유에 집중한다. 두 번째 - Define, 즉 문제와 가능성의 정의 단계에서는 다양한 문제들과 그 원인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만들어질 디자인의 방향을 정의하는 것인데, 특별히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도입함으로써 개인들과 사회, 그리고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다. 세 번째 - Develop, 즉 디자인 개발단계에서는 여러 가지 디자인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 구체화 나가는데, 특별히 inclusive design performance measure를 사용해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한다. 마지막 네 번째 - Deliver, 즉 완결 단계에서는 최종 디자인의 특징을 시험하고 결정하게 되는데, 특별히 최종 디자인의 inclusivity, 즉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 없이 쓸 수 있는 정도를 확인한다.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의 사례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적용되지 않은, 즉 익스클루시브 디자인의 사례는 앞에 예를 든 문 손잡이 외에도 무수하게 많다. 디자이너라면 눈을 크게 뜨고 이러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디자인들을 찾아내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디자인을 해야 할 것이다. 

출장이나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호텔 비치용 헤어케어 및 바디케어 제품의 거의 대부분은 약간의 장애만 있어도, 아니 전혀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쓰기 어렵다. 위 슬라이드에 보는 것처럼 대부분은 호텔이나 헤어케어 제품 브랜드를 크게 쓰고, 정작 샴푸 등의 표기는 아주 작다. 그것도 영어로만 되어 있어서 영어를 모르거나 작은 글자를 읽기 어려운 사람, 욕실에 안경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사람 등은 읽을 수가 없다. 설사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손에 비눗물이 묻은 다음에는 동그랗고 작은 뚜껑을 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걸 힘들여 열어보려고 하다가 미끄러운 욕조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여행은 거기서 끝이다. 별거 다닌 샴푸 용기 하나 때문에 여행을 망치거나 심지어는 다칠 수도 있는 것이다.


북유럽처럼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잘 발달한 지역에서도 여기 등장하는 기차처럼 무거운 가방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의 탑승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스마트 폰도 시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예전 휴대전화 보다도 못하다. 이런 식으로 신체적이나 정신적 장애, 언어, 문화, 경제 등등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나 일시적인 장애, 예를 들면 극장에 들어가자마자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는 것 같은 장애, 두터운 장갑을 끼면 터치 스크린을 쓸 수 없는 장애 등등의 경우를 가정하고 보면 생각보다 많은 제품들이 배려하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사례


인클루시브 약병

위스콘신 대학교 디자인 학과에 재학 중이던 Deborah Adler는 어느 날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약을 복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병은 왼쪽에 있는 것과 같은 오렌지색의 원통형이고, 약 이름과 복용자 이름이 인쇄된 라벨은 원통을 감싸고 붙여져 있으니 쉽게 읽기가 어렵다. 게다가 할아버지의 이름 Herman과 할머니의 이름 Helen은 이니셜도 H로 똑같으니 혼동하기가 너무나 쉽다. 사실, 상당히 많은 미국인들이 다른 가족의 약을 실수로 먹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는 통계도 있다. 게다가 원통형의 약병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열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Deborah의 디자인은 사실 간단하다. 약병을 뒤집고 (토마토 케첩 병 등, 뒤집어진 모양으로 만들어진 용기는 이미 꽤 있다), 약병의 양면을 평평하게 만들어 라벨이 잘 보이게 하고, 여러 개의 약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일일이 꺼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도록 약병 상단에 이름이 보이도록 하였다. 평평한 모양의 약병과 큼직한 뚜껑은 열고 닫기가 쉽다. 무엇보다도 개개인에게 다른 색상의 링을 사용하도록 해서 다른 사람의 약을 먹을 일이 없어졌다. 미국의 대형 약 소매상인 Target Store가 이 디자인을 채택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약병에 약을 받기 위해서 Target으로 거래 약국을 옮길 정도였다. 필자도 이 약병 때문에 Target의 약국으로 옮겼는데 처음 약을 받던 날 어떤 색의 링으로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부터는 언제나 같은 색상의 링이 끼워진 약병을 받았다. 이 디자인은 미국 산업 디자이너 협회가 선정한 10년간의 디자인 Design of the Decade 에 유일하게 선정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약병의 디자인 때문에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바로 일반적인 약병을 사용했더라면 약을 잘 못 먹을 수도 있었을 수많은 사람들이다. 배려하는 디자인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최근 Target Store 이 약국 운영권을 다른 약국 체인인 CVS에 팔면서, CVS가 일반적인 약병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약 판매가 줄고 Target Store의 주식 가격까지 내렸다. 이것은 inclusive design의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인클루시브 약병 2

현존하는 약병들 - Target 약병 포함 (왼쪽)과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

신시내티 대학교의 필자의 제자인 Alex Broerman (산업디자인 전공)과 Ashley Ma (시각디자인 전공)은 Target의 약병이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들여다 보고, 더욱 인클루시브한 디자인을 하기로 하였다. 이들이 발견한 문제는 현존하는 모든 약병들이 - Target의 약병을 포함해서 - 시각이 아주 약한 사람들이나 없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안된다는 점이다. Target 약병의 개별적인 색도 쓸모가 없고, 라벨에 적인 내용을 읽을 수도 없다. 

Alex와 Ashley가 연구한 것은 사람의 촉각을 사용하는 것으로, 약병 뚜껑을 만지는 것으로 구별이 가능하게 하고, 힘들여 뚜껑을 돌려서 열지 않아도 되며, 약병을 뒤집어서 약을 꺼내지 않아도 되고, 뚜껑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약의 설명을 듣게 할 수도 있다. 라벨은 점자가 같이 인쇄되어 있어서 시각 장애자나 장애가 없는 보호자가 같은 정보를 읽을 수 있다. Alex와 Ashley는 다양한 프로토타입들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로 텍스처를 강하게 해야 차별이 가능한지를 연구하였다. 이 디자인은 생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인클루시브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좋은 시도였다.


인클루시브 운동기구

휠체어 사용자의 휘트니스 센터 이용 시나리오 (왼쪽) 와 일곱 가지로 정리된 문제점들

역시 신시내티 대학교의 학생으로 내 인클루시브 디자인 수업을 들었던 Ryan Eder는 어느 날 자주 가던 휘트니스 센터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게된다. 사실,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휘트니스 센터에 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서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가지고 온 가방에서 붕대 같은 것들을 꺼내서 운동 기구 손잡이에 자기 손목을 고정시키고 (하반신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상반신에도 장애가 있는 경우가 있다), 휠체어도 고정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운동을 할 때 휠체어가 움직여서 운동이 되지 않거나 위험할 수도 있다) 하는 등의 상당히 불편한 과정을 거치면서 운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에서 Ryan은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적용해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운동기기는 없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고, 졸업 과제 프로젝트로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적용된 운동기기를 디자인한다.


첫 단계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관찰, 휘트니스 센터의 운동 코치들과의 인터뷰, 장애를 치료하는 의사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수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해내고, 이 문제들을 사용자 시나리오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발굴된 문제점들을 일곱 가지의 유형으로 정리하였다. 이 문제의 유형들은:

휠체어의 고정의 어려움

무게 추 조절  어려움 (손가락이나 손이 부자연스러운 경우 무게 추를 빼고 넣기 어렵다)

패드의 조절 어려움

운동 형태의 조절 어려움 (하나의 운동기기내에서 운동의 형태를 바꾸기가 어렵다)

손잡이 사용의 어려움

부가장치 사용의 어려움

의자에 관련된 어려움 (의자가 이미 포함되어 있는 운동기기의 경우,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

각각의 문제 유형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 개발 (왼쪽) 과 완성된 디자인


Ryan은 각각의 문제 유형과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을 스케치, 컴퓨터 모델, 그리고 실제 모형을 만들어 가면서 전개시켰고, 이 디자인 유소들을 한데 모아 최종 디자인을 완성하였다. 완성된 디자인의 몇 가지 요소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의자는 필요한 경우 돌출되고, 휠체어 사용자의 경우에는 운동기기 본체에 수납된다

운동기기 베이스 부분에 휠체어 바퀴를 고정하기 위한 브래킷이 있다

무게추의 선택은 큼직한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조작이 된다

악력이 약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손 고정장치가 제공된다

이 디자인은 국제적인 디자인 공모전인 IDEA에 2007년에 학생부문으로 출품되어 학생부문 금상, 전체 부문을 망라한 대상, 그리고 일반인들이 선정하는 People's Choice 상까지 세 개의 상을 휩쓴다. IDEA 역사상 이 세 가지 상을 다 받은 디자인은 없다. 게다가 학생 부문 과제로 전체 대상을 받은 적도 없다. 

졸업 과제와 IDEA 출품 당시의 디자인 (왼쪽. 2007년)과 실 제품으로 개발이 완료된 디자인 (2017년)

Ryan이 상을 수상하기 위해 세 번 무대로 올라가고, 그때마다 상영된 디자인 의도와 개요를 담은 비디오를 본 사람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곧 여러 단체에서의 후원금과 기금이 모아져서 Ryan은 이 디자인의 실제 개발을 위한 회사를 설립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제품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완성된 제품은 원래 디자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실적인 해결을 망라하고 있으며, 각각의 사용자가 자신의 운동 이력을 기록할 수 있고 또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는 클라우드 기능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 인클루시브 운동기기가 (Ryan의 회사 이름은 Include Fitness이다) 보급이 되기 시작하면 과거에는 운동을 하지 않던 여러 가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휘크니스 센터를 찾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많은 개인들의 건강이 좋아지게 되며, 고객의 숫자가 더 늘어나게 되는 휘트니스 센터들은 비즈니스상의 이익을 보게 되고,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운동기기 산업에도 새로운 활로가 생기는 것이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비즈니스와 산업을 건강하게 해 주는 것이다.

http://includefitness.com


환자용 병원 가운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어떤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측면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존엄성, 품위, 귀중함 등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으로 시각을 넓혀서 보면 그 적용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추구하는 바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미국 디트로이트에 소재한 College for Creative Studies, 줄여서 CCS 의 제품 디자인 학과의 학생들은 헨리 포드 종합 병원 Henry Ford Hospital의 의뢰를 받아 병원에서의 디자인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몇 개의 팀으로 나누어 병원의 곳곳을 관찰한 학생들 중 한 팀은 환자용 가운이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병원 가운의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을 제시해 왔지만, 이렇다 할 변화가 만들어지지는 않은, 그런 분야다. 간단한 제품이면서 의사, 간호사, 환자의 요구사항이 각기 다르고, 게다가 제작 원가가 수 백원대로 아주 낮아야 하기 때문에 설사 기발한 디자인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현실성이 없는 상태에 머무르고 마는 것이다.


병원 가운의 여섯가지 문제 영역 (왼쪽) 과 아이디어 스케치


CCS 의 3학년 학생들인 Patrick Houin, Frantz Mondesir, 그리고 Carrie Clark 은 환자, 의사, 간호사, 병원을 관리하는 직원 (특히 가운 구매, 관리, 세탁 등)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환자용 가운에 대한 여섯 가지의 문제점들을 규명하였는데, 이들은 각각:

Accessibility - 의사나 간호사가 치료나 진찰을 하기 용이할 것

Comfort - 가운을 입었을 때 신체적, 정신적으로 편안할  것. 특히 등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을 것.

Price - 현재 병원 가운의 가격보다 높지 않을 것

Intuitive - 설명이나 보조가 없이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을 것

Warmth - 병원 복도 등에서의 이동시에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을 것

Fit - 각기 다른 신체 사이즈의 환자들에게 잘 맞을 것


이어진 디자인 과정에서는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시각화하고 또 스터디 모델을 제작하면서 디자인을 구체화해 나갔으며 프로토타입들을 병원에서 실제로 환자들이 착용해 보는 검증을 통하여 어떤 디자인이 여섯 가지 문제점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지를 관찰하면서 디자인을 완성하였다.

스타디 모델 (왼쪽) 과 가운을 착용하는 과정 일러스트레이션


Henry Ford Hospital의 Innovation Institute에서는 이 디자인을 계속 발전시켜서 Model G라는 명칭으로 개발을 완료했으며, 대형 의료장비 회사를 통한 보급 단계에 들어가 있다.


OXO Good Grips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전설과도 같은 OXO Good Grips은 아주 사소한 일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주방기기 사업가이면서 디자이너이기도 Sam Farber가 프랑스 여행 중에 아내가 관절염 통증이 있는 손으로 감자를 힘들게 깎는 것을 보고 관절염이 있는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감자 껍질 벗기는 도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당히 많은 디자인들이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찰에서 나온다. Sam Farber는 뉴욕의 디자인 용역사인 Smart Design와의 협업을 통해 Good Grips라는 이름의 감자 깎기를 개발하고 OXO라는 회사를 세워서 큰 성공을 거두고 다른 많은 주방기구 회사들의 롤 모델이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전의 평범한 감자 깎기는 감자 껍질을 벗기는 기능에 포커를 둔 반면, OXO의 디자인은 이 도구를 잡는 손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손을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요리 도구에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적용해서 Good Grips라는 브랜드가 완성이 되었다. 이것은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개개인에게 더 나은 경험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제품의 혁신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의 창출까지를 이루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교과서적인 프로젝트로 인정받고 있다.


Hablamos Juntos: 유니버설 의료 심벌 디자인


인클루시브 디자인이나 유니버설 디자인이 제품이나 건축물의 디자인에만 적용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신시내티 대학교의 교수인 Oscar Fernandez와 Mike Zender는 영어를 몰라도 이해가 되는 의료용 심벌의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이는 미국 국민의 40% 정도가 영어를 읽지 못하고, 또 의료 장비들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Oscar와 Mike 교수 팀은 Hablamos Juntos라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학생들과 같이 400개 정도의 아이콘들을 개발하였다.


Hablamos Juntos팀은 이 심벌들을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의 환자들에게도 보여주고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의 차이에 따라서도 심벌들을 이해하는 내용이 달랐다는 점인데, 테디베어가 그려진 심벌을 미국인들은 아동 진료로 이해한 반면, 어떤 나라에서는 동물 병원으로 이해했다는 식이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


인클루시브 디자인에 대한 오해도 다양하다. 가장 흔한 오해는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노약자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다. 또 하나는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사용자들만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사용자, 사회, 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디자인이다.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비싸고 또 매력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특별히 비싸거나 못생길 이유가 없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혁신적이지 못할 것라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제품 혁신의 계기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요약하면 인클루시브 디자인과 유니버설 디자인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개개인의 다름을 포용하는 살기 좋은 사회가 되도록 만들어주며, 기업들이 혁신적인 제품의 개발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경제의 발전에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서 시민들에게 해택이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 더 좋은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제품, 건물,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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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lideshare.net/choi276/inclusive-design-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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