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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신 Jul 15. 2018

디자인의 포르노

움베르토 에코에게 배우는 디자인 - 1

"여러분은 포르노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중략) 어떤 영화가 포르노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하나 있다. 쓸데없이 늘어지는 공백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중략) 예를 들어, 어떤 포르노 영화에 질베르토라는 사내가 질베르타라는 여자를 겁탈하기 위해 코르두지오 광장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로까지 가는 장면이 나온다고 할 때, 이 영화는 질베르토가 빨간 신호등을 하나 하나 거치면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중략) 요약하자면 이렇다. 영화관으로 들어가라. 만일 배우들이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면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늑장을 부린다면,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포르노 영화이다." - 움베르토 에코 저 세상의 모든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중에서 포르노 영화를 식별하는 방법에서 옮김.
“I don’t know if you’ve ever happened to see a pornographic movie. (...) Well, there is a criterion for deciding whether a film is pornographic or not, and it is based on the calculation of wasted time. If Gilbert, in order to rape Gilbertina, has to go from Lincoln Center to Sheridan Square, the film shows you Gilbert, in his car, throughout the whole journey, stoplight by stoplight.(...) I repeat. Go into a movie theater. If, to go from A to B, the characters take longer than you would like, then the film you are seeing is pornographic. - Extracted from How To Recognize a Porn Movie from How to Travel With a Salmon: and Other Essays by Umberto Eco.


제목이 좀 거칠어서 놀랜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작고한 움베르토 에코는 제가 생각하기에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지식, 미학, 언어, 논리력, 해학, 문장력 등등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푸코의 추, 장미의 이름 등등으로 친숙한 분이지요. 특히 세상의 모든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명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산문과 에세이를 모은 책인데, 에코 특유의 지식과 촌철살인의 해학이 넘쳐납니다. 디자이너들도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종종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포르노라고 하면 살색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를 연상하실 겁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십수 년 전 포르노 파일을 식별해서 검열하기 위해서 만든 프로그램의 알고리듬이 전체 화면에서 살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이상이면 의심을 하도록 만들어졌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꽤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우리가 생각하는 포르노가 대개 어떤 것인지는 굳이 더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데 에코가 보는 시각은 역시 다릅니다. "쓸데없이 늘어지는 공백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포르노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포르노 영화에 질베르토라는 사내가 질베르타라는 여자를 겁탈하기 위해 코르두지오 광장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로까지 가는 장면이 나온다고 할 때, 이 영화는 질베르토가 빨간 신호등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라는 부분에서 설명하듯이, 플롯은 "겁탈"인데, 전혀 관계없는 부분으로 나머지를 채운다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에코 다움'을 잘 보여줍니다. 설명하려는 내용에 별 중요하지 않은 질베르토와 질베르타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고, 한 장소와 다른 장소의 이름도 등장합니다. 이렇게 설명함으로써 포르노 영화는 주제에 별로 관계도 없는 내용으로 채운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외설과 예술을 넘나드는 영화도 종종 관심의 대상이 된 적 있지요. 예술과 외설은 그 비슷한 발음만큼이나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는데, 움베르토는 살색의 정도가 아니라 별 스토리가 없으면서도 마치 제대로 된 영화처럼 보이기 위해서 대부분을 쓸모없는 것으로 채우는 것이 포르노리고 외설이라는 이야깁니다. 에코가 쓴 글에는 여기에 옮기기에도 좀 쑥스러울 정도록 적나라한 예도 여러 가지 들고 있습니다. 필요한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고.


이게 디자인과 무슨 관계가 있냐구요? 엄청나게 많지요. 별 내용이 없으면서 겉만 번지르르한 디자인,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장된 디자인, 눈길은 확 끄는데 막상 들여다보면 허무한 디자인, 뭐 이런 것들이 디자인 포르노라고 할 수 있지요. 없는 것을 있게 보이게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하는 디자인입니다. 어떤 기능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어떤 재료가 아닌데 그 재료처럼 보이게 하는 것, 사실은 약한데 강하게 보이게 한 것이나, 부드럽지 않은데 부드러운 것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속이는 디자인, 즉 fake design입니다. 실제로 이런 디자인, 우리 주변에 널렸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fake design의 사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고성능의 자동차는 엔진, 브레이크, 기타 장비가 과열되기 쉽기 때문에 필요한 곳마다 공기가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air intake, air scoop, air outlet 등을 만들게 됩니다. 자동차에 따라서 엔진을 식혀주는 라디에이터가 뒤에 달려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식혀주려면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소위 슈퍼 스포츠카에서 보는 것처럼 차체의 옆에 커다란 에어 인테이크 또는 아웃렛이 필요합니다.


이러다 보니 에어 인테이크가 고성능 자동차의 아이콘처럼 되어 버려서 전혀 그렇지 않은 차에도 여기저기 에어 인테이크를 만든 디자인의 자동차가 난무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기가 들어갈 곳이 없거나, 있더라도 많은 공기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자동차의 에어 인테이크를 자세히 보면 전체가 또는 거의 막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이 전형적인 fake design입니다.


Mitshbishi 3000GT

제가 기아자동차에서 한참 열심히 일할 무렵에 발표된 Mitsubishi의 스포츠 카인 3000GT는 역동적인 형태와 자세를 가지고 있어서 스포츠카로서는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 차를 실제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디자인의 중요한 부분인 사이드 에어 인테이크가 막힌 에어 인테이크더군요. 아마 이 자동차를 베이스로 한 레이싱 모델에는 더 큰 엔진과 더 큰 냉각 성능이 필요한 브레이크가 달리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커스텀으로 만들었던 에어 인테이크의 모양만 가져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기는 어쨌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fake design의 전형입니다.

3000GT의 레이싱 버전. source: http://www.rpmjunkies.net/mitsubishi-gto

이런 fake 에어 인테이크를 디자인에 슬쩍 끼워 넣는 일은 너무도 많이 벌어집니다. 아래 사진들은 실제로는 막혀있는 fake 브레이크 에어 인테이크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사례입니다.


미국 가구산업의 빅 스리 중 하나인 Herman Miller 의 Caper 의자를 포르노성 디자인에 포함시키는 데에는 반대를 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Herman Miller는 그저 그런 가구회사가 아니거든요. 이 회사의 제품 가운데에서도 Aeron 의자는 메쉬를 사용해서 스펀지를 없앤 친환경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수많은 가구 회사들이 그 뒤를 이어 메쉬를 사용한 의자를 만들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회사입니다. 가구의 명가라고 할 수 있지요.

Herman Miller 의 Caper 의자

약 20년 전에 발표된 이 의자의 디자인을 보고 필자로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곡선에 투박하지 않은 등판과 좌판으로, 앉은 사람의 몸과 다양한 움직임을 부드럽게 받쳐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몇 년 후 Caper의자 두 개를 구입해서 기쁜 마음으로 박스를 열고 앉아보았습니다. 한데 웬걸, 딱딱하기 그지없는 등판, 좌판은 나의 움직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뻣뻣하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의자가 내 신체의 움직임을 배려하는게 아니라, 내가 의자의 생긴 모양대로 앉아 있어야 하는 거지요. 전혀 부드럽지 않은 의자이면서 부드러운 것처럼 보이는, 전형적인 fake design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계속 사용하고 있기는 한데 오래지 않아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과 그 바로 아래를 지나가는 파이프의 구조상 좌판 앞부분 양쪽이 금이 가더니 지금은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이 의자를 디자인 한 사람은 듣기 싫겠지만 Fake design과 그 결과입니다.   


제가 퍼시스에서 일할 때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의 Reinhart Butter 교수와 같이 디자인한 Prego라는 의자는 정 반대의 사례입니다.


Prego stacking chairs. source: Fursys Inc.

전체적으로 곡선을 사용하여 부드러워 보이게 하고, 등판 중앙에 있는 여러 개의 수평 오프닝이 척추의 부드러움을 연상시킵니다. 만일 실제 경험이 이런 시각적인 평가와 반대라면 fake design이 되겠지요. 하지만, Prego에 사용된 플라스틱은 연질 polypropylene이고, 의자 바닥과 등판 뒤에 있는 글라이딩 메커니즘, 그리고 다리 프레임의 탄성을 이용해서 사용자의 몸의 움직임과 자세의 변화를 부드럽게 받쳐줍니다.


유연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Herman Miller의 Caper와 유연해 보이고 또 실제로도 유연한 Fursys Caper의 차이는 보기보다 큽니다.

Prego 의자의 글라이딩 기능


디자인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과장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아름답게, 더 쓸만하게 만들려다 보니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더 쓸만하게 “보이게” 하는 겁니다. 이러다가 지나치게 과장되면 움베르토 에코식 관점의 포르노에 가까워지기 쉽습니다. 3류 인터넷 신문 기사에 "헉" "경악" 등을 붙여서 소위 낚시를 하는 것과 같은 것과 같은 겁니다. 지나치게 과장을 하는 디자인은 대개 필요 이상으로 번쩍번쩍하게 도금된 부품을 사용하거나, "super..." "ultra.." 등으로 성능을 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 움베르토 에코 관점에서의 디자인 포르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 SUV의 공통점은 뒷 범퍼 하단 디자인입니다. 원래 SUV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오프로드 4륜 구동차는 험로 주행이 목적이고, 험로 주행 시에 차량 하부, 특히 앞뒤 범퍼 아래에 돌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금속 보호대가 필요합니다.  이러다 보니 SUV가 강인해 보이게 하기 위해서 범퍼 중앙 아래 부분을 마치 금속 보호대처럼 디자인합니다. 물론 재질은 플라스틱이지만 금속처럼 보이게 하는 표면처리를 합니다. 물론 재질도 금속도 아니고 금속 보호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을 리 없지요. 따라서 넓은 범주에서 볼  때 디자인 포르노에 가깝습니다.


전자제품에도 지나치게 과장된 디자인, 허다합니다. 대부분 부족한 성능을 눈가림하기 위한, 원래의 가치보다도 더 값나가게 보이게 하기 위한 디자인의 포르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로 싸구려 물건인 것을 더 강조하게 될 뿐이지요.




미시간 북촌에서

최수신


Sooshin Choi

Northville, Mich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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