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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신 Sep 11. 2018

디자인. 그리고 네가지 아름다움.

Design. And Four Kinds of Beauty.

디자인에 있어서 아름다움은 뭘까요.


신시내티 대학에서 한참 산업디자인을 가르칠 때, 한 10년쯤 전의 이야깁니다. 하루는 늦은 저녁까지 학교에 있다가 졸업반 학생들 작업실에 잠깐 들렀는데, 한 학생이 다른 학생한테 지금  생각해 보니 학교를 5년 다니는 동안 (신시내티 대학교의 디자인 학부는 5년제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하는 겁니다. 그  친구 이야기는 학교에서 내내 디자인 연구, 기능, 사용성, 사회적  책임, 등등에 대한 것만 생각했지, 정작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데에는 신경을 쓴 적도 없고 딱히 그런 것을 배운 적도 없다는 겁니다.


아마 그 학생은 스타일링 작업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을 말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교육 과정이 예전보다는 생각과 연구 등이 더 많아지고 비례적으로 스타일링에는 적은 시간이 할당되고, 또 직관적, 심미적인 접근보다는 논리적, 과학적인 해결에 더 비중을 두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디자인의 개발에 디자이너 개인의 예술적인 능력보다는 종합적인 사고 과정이 중요시되다 보니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예술적인 감각과 능력이 예전보다는 빛을 덜 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자동차 디자인 같은 조형성을 중요시하는 분야에서는 아직도 아름다움이 중요하게 취급받기는 하지만.


디자인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무언지, 왜 필요한지, 또 어떻게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하라 켄야는 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책에서 디자이너가 정보에 관여하는 부분은 '질'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정보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움, 특히 정보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 갈래가 있다는 거지요. 켄야는 물론 이 세 가지 외에도 많은 방법이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이 세 가지라는 겁니다.

쉬운 이해: 정보가 가진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면 결코 질이 높다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독창성: 신선하고 창의적으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흥미를 높이고 감동을 받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깁니다.

해학: 지극히 높은 정밀도를 가지고 이해를 성립할 수 있도록 해서 새로운 각도에서 내용을 이해하고 웃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겁니다. 정보의 전달을 해학의 경지에 이르게 할 있는 디자이너는 이미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겁니다.

켄야는 이 세 가지가 정보의 미, 즉 아름답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들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필자의 브런치 첫 글인 좋은 디자인, 나쁜 디자인, 그리고 추한 디자인에 소개한 Franco Mantegazza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의 세 가지 - Good style, Good engineering, 그리고 Sense of humor - 와 어떤 면에서는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는 같은 글에서 소개한 제가 보는 좋은 디자인의 세 가지 - Logic, Magic, 그리고 Music - 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1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아름다움은 '예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상대, 특히 여성을 보고 예쁘다고 하면 신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 미국 같은 곳에서는 큰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연인이나 가족이 아닌 사람, 예를 들어서 직장 동료에게 "You look great today"이라고 하면 괜찮지만 "You are pretty"이라고 하면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예쁘다", 심지어는 "섹시하다" 같은 이야기가 칭찬으로 받아들여지던 적이 있습니다. 예전 한 한국의 TV 방송에서는 동물들도 예쁜 사람을 선호한다는 - 제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 실험을 하는 것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 방송은 평범하게 생긴 여성과 예쁜 외모의 여성 두 사람이 각각 어떤 동물을 부르면 어떤 쪽으로 동물들이 가는가를 보는 것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예쁜 쪽으로 더 많이 가는 것으로 나타나기를 했었습니다.


어쨌든, 인간인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쁜 사람, 예쁜 물건에 눈길이 갑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것은 즐거움을 줍니다. 루이스 설리반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즉 형태는 기능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합니다. 그 여러 가지 중의 하나가 눈을 기쁘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극의 70 이상이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눈이 즐거워지는 것은 그 물건의 원래의 기능을 더 잘하게 하게 되기 때문에 좋은 형태는 기능을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나가게 해준다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Round Chair, Model no. JH 501. Hans J. Wegner

잘 만들어진 식기에 담긴 음식과, 유려한 글라스에 부어진 와인은 대충 만들어진 그릇과 잔을 쓰는 것 보다 음식과 와인의 맛을 훨씬 더 좋게해 준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 결과 아주 더 멋진 저녁 식사가 되겠지요. 시각적인 아름다움의 힘입니다. 


위의 의자 디자인은 beech나무의 목질을 잘 느낄 수 있게하는 유려한 곡선, 위보다 아래가 약간 넓어서 느낄 수 닜는 안정감, 등받이에서 팔걸이로, 다시 다리로 가는 부드러운 연결 등의 요소가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몇몇 사람들이 이런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연상이 될 정도입니다.


다만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은 디자이너들에게는 고민 거리가 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름답게 생각되는 물건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집집마다의 '집밥'이 다르기 때문에, 집밥이 맛있는 이유는 자신이 어려서 먹던 것에 익숙해져서 이기 때문인 것처럼, 자신이 가진 주관적인 입맛에 맞으면 맛있고,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으면 아름답게 보이는 거지요. 


자동차 역사상 가장 못 생긴 디자인 중 하나로 꼽히는 Pontiac Aztec을 아름답다고 하는 디자이너는 못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를 담당한 디자이너들 눈에는 충분히 아름답게 느껴졌었겠지요. 



2

아름다움은 '가득 참'이라고 생각합니다. 꽤 믿을만한 이론에 따르면 아름다울 '美'자가 제사나 잔치에 쓸려고 잡은 양이 큰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론에는 두 팔로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를 안았을 때 느끼는 포만감, 만족감이 우리말의 '아름'다움의 어원이라고도 합니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족'이라는 단어의 足은 발이라는 뜻이 아니라 '채우다'라는 뜻이니까, '가득 차다'라는 뜻이 됩니다.


즉 원하는 것을 다 얻었을 때 또는 그 이상을 얻었을 때의 느낌이 아름다움이라는 의미이지요. Denys Lasdun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서 "our job is to give the client... not what he wants but what he never even dreamt he wanted", 즉 "디자이너의 역할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한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주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에 따르면 원하지도 않았던 것을 얻게 해 줄 수 있는 디자인이야 말로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David Zacher가 디자인한 Bradley timepiece


RISD 학생이던 David Zacher가 디자인한 시계 - Bradley timepiece - 는 시계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계입니다. 그는 이 시계를 watch라고 부르지 않고 timepiece라고 부릅니다. 물론 timepiece도 시계라는 뜻이기는 합니다만, Zacher는 이 시계는 시간을 'watch'하지 않고도 시간을 알 수 있는 시계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Bradley 라는 이름은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폭발물 때문에 시력을 잃은 Bradley Snyder라는 군인의 이름에서 가져온 거라고 합니다. Bradley는 전쟁이 가져다 준 장애의 어두움 속에서 살지 않고 2012년 런던 장애자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땁니다. 이 디자이너는 Bradley처럼 원하지 않는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그 장애를 딛고 넘어 설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시계 판을 따라 돌아가는 두 개의 볼 베어링을 만져서 시간을 알 수 있는 이 시계는 시계를 볼 생각도 못했던 시각장애자들에게 시간을 '보여'줍니다. 물론 시각이 정상적인 사람들도 시간을 읽을 수 있고, 멋지기도 합니다. 이 디자인은 2014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Design of the Year상을 수상합니다.


사용자 조사를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디자인은 아름다운 디자인입니다. Bradley timepiece 처럼 그들이 원한다고 말하지 못한 부분까지 알아서 해 주는 디자인은 더 아름다운 디자인입니다.


 

3

가을철 길 가에 피는 코스모스가 어떤 연유로 우주를 뜻하는 단어를 이름으로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cosmos의 의미는 order or world, 즉 세상의 질서, 또는 우주의 질서라는 뜻으로, 우주의 질서있는 모양을 가르킵니다. 인간의 숫자로 셀 수 없이 많은 천체가 각각의 질서를 따라서 존재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서있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디자인을 가리켜서 coherent whole, 즉 일관된 전체를 만드는 작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질서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말입니다. Buckminster Fuller가 "When I am working on a problem, I never think about beauty but when I have finished, if the solution is not beautiful, I know it is wrong.", 즉 "나는 작업할 때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지만, 완성된 결과가 아름답지 않으면 잘못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는 말에 등장하는 beauty와 beautiful의 의미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염두에 두지 않지만, (질서있는) 아름다움이 없다면 잘못 된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4

눈이 즐거운 것 보다도, 또 가지고 싶고 하고 싶었던 것을 만족스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 보다도, 더 기쁜 것은 나 자신이 멋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 나도 괜찮은 사람인가 봐하는 생각이 들 때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 디자인을 만지고, 쓰고, 사용하는 사람이 스스로가 멋지다고 생각이 들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해 주는 디자인이야 말로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사용하는 제품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디자인보다도 사용하는 사람이 돋보이는 디자인이 더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뜻입니다.


2001년에 DEKA R&D 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일할 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전동 휠체어인 iBot 의 디자인을 개발하면서 만든 디자인 컨셉트의 몇 부분을 인용합니다.


iBot의 컨셉트 모델


"... The design should NOT appear to be a medical device or a piece of rehabilitation equipment - rather it should be designed as a “personal mobility system". It should be designed to indicate that it is a sophisticated mechanical product but not over-engineered so that it looks too high tech and unapproachable."

"... 이 디자인은 의료용 기구나 재활용 기구로 보이지 않아야 하고, 개인용 이동 수단으로 보이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고도로 잘 만들어진 기계 제품으로 인식되어야 하지만, 지나치게 엔지니어링 되어서 하이 테크 장비로 보이거나 접근하기가 꺼려지는 물건으로 여겨지지 말아야 한다."

이 내용은 대부분의 휠체어 디자인이 사용자들로 하여금 의료용, 재활용 기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로 보이게 만드는데 반해, 우리가 개발하는 iBot은 다른 많은 개인용 이동 수단과 동일한 차원의 물건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사용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해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또 일반 휠체어보다 훨씬 첨단적인 물건이기 때문에, 그러한 특성을 보여주어서 신뢰성을 주기는 하되, 그렇다고 마치 로봇처럼 겁나게 니껴질 정도로 수준으로 테크놀로지를 내세우지 말자는 뜻입니다.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의 멋짐을, 엔지니어들은 기술의 뛰어남을 나타내도 싶을 때가 많다보니, 그 바람에 정작 멋지고 뛰어나 보여야 할 사람들이 묻혀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밸런스 모드에서 작동중인 iBot

이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 중에 프로토타입 시험에 초청된 일반 휠체어 사용자들이 두 바퀴로 '올라 선' 밸런스 모드에서 같이 온 배우자를 처음으로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맞추고, 마주 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기술과 디자인이 사용하는 사람을 멋지게 보이게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신시내티 대학교로 돌아갑니다. 대학 다니는 동안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서로 해 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는 스타일링에 의한 아름다움을 중시해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 각도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그들을, 그들의 삶을 멋지게 하려고 열심히 디자인 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그 학생 - Adam 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Adam, I have seen all the designs you made since you were a sophomore. I've seen you staying late, thinking over and over, revising your designs to make them better. You made beautiful designs." 그 친구 눈이 빛나는 것을 본 것 같았습니다.


제 옆에 짧은 머리의 밝게 웃는 친구가 Adam입니다.

Adam과 그 친구들이 졸업식을 마친 다음날 저녁에 굳이 저희 집 근방까지 와서 밤 늦게 까지 이야기하다 아쉬워하면서 돌아갔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때 가장 보람찬 때가 이런 때지요.




이제 마무리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디자인은 사람들의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생기게 하는 디자인입니다.




 표지 사진: Aldo Bakker의 Collabcu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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