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수신 Jul 19. 2018

UBER DESIGN

과도한 디자인: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다

택시 대신 타는 우버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나친 디자인에 대한 이야깁니다. 


과유불급, 즉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보다 나쁘다는 좋은 사자성어가 있음에도, 디자인을 하다 보면 지나친 디자인이 되기 참 쉽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 지나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려고 처음부터 계획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시장에서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뭐, 이런 간절함을 탁할 생각은 없지만, 과한 디자인이 꼭 더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사실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더 많지요.


지나친 디자인, 영어로 하면 over design 혹은 excessive design과 그 반대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좀  멋있어 보이라고 제목을 독일어 반, 영어 반으로 uber design이라고 썼습니다. 




미국의 어떤 공장에서 제품을 종이상자에 포장을 하는 자동 설비가 있었다고 하지요. 한데 이따금 제품이 안 들어간 빈 상자가 출시되는 일이 생겨서 생산 설비 컨설팅 회사에 자문을 받아 포장 설비에 엑스레이 투사기를 설치하기로 하고 고액을 들여서 투사기를 주문했다고 합니다. 투사기가 제작되어 오는 동안 한 직원에게 포장 설비를 잘 보고 있으라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다음부터는 빈 상자가 출시되는 일이 없더라는 겁니다. 하도 신기해서 그 직원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집에서 쓰던 선풍기를 가져다 틀어 놓았더니 빈 상자는 바람에 날려서 쉽게 걸러지더라는 거지요. 수 억 원 들인 기계로 할 일을 푼돈의 선풍기로 해결한 겁니다. 


아니, 푼돈으로 하면 될 일을 수억 원 들여서 하게 될 뻔했던 거지요. 그야말로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뻔한 겁니다. 또 머리로 할 일을 돈으로 해결할 뻔한 거라고도 할 수 있지요.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인 Peugeot의 디자이너로 일하는 크리스티앙이라는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 일입니다. 파리의 몇몇 곳을 돌아보고 그 친구의 차로 개선문 근방에 있는 Peugeot의 본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주차 건물에 들어가는데 주차관리인이 상자에서 두꺼운 종이 카드 한 장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 종이는 G-35같이 알파벳 한 글자와 숫자가 써져 있었는데, 그게 주차할 위치라는 겁니다. 크리스티앙이 그 자리에 가자 당연히 그 자리는 비어있습니다. 방문을 마치고 나올 때 크리스티앙은 그 종이 카드를 주차관리인에게 주었고, 그 관리인은 그 카드를 상자에 다시 넣에 두었습니다. 그 관리인은 언제든 주차장에 빈 곳이 얼마나 있고 또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지요. 따라서 그 상자에 더 이상 종이 카드가 없으면 주차장에 차를 받지 않는 겁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의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어도 차량을 계속 받기 때문에 빈자리를 찾느라 주차장을 아래위로 돌아다녀야 합니다. 필요 없는 피로도가 쌓이도록 하는 거지요. 빈 공간이 있어도 엘리베이터나 계단에 가까운 곳을 찾느라 신경도 많이 써야 합니다. 이런 곳보다 더 나은 곳에는 컴퓨터를 사용한 첨단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도 합니다. 고객들의 피로는 줄지만, 큰돈을 들여서 설치하고 운영해야 합니다. 어쩌다 전기가 나가거나 컴퓨터가 오작동을 하는 경우에는 큰 혼란이 생기겠지요.  


앞의 Peugeot사의 주차장 관리 시스템은 인건비 빼고는 설치비도 0,  운영비도 0입니다. 완전히 아날로그이지만 완전히 체계적이기도 합니다. 


반면, 나중에 예로 든 곳들은 아날로그인 곳은 체계적이지 않고 (언더 디자인), 디지털인 곳은 체계적이긴 하지만 돈이 많이 드는 데다 (오버 디자인) Peogeot사 주차장에 비해 별로 더 나을 것도 없습니다. 




제품 디자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흔합니다. 한 가지 예만 들어 보도록 하지요.


잼이나 꿀 같은 것을 진공 포장한 병 (영어로는 jar)은 웬만한 힘으로는 잘 열리지 않습니다. 가죽 혁대를 감아서 열기도 하고 고무 밴드를 감아서 돌려 열기도 하는데, 이는 손과 뚜껑의 마찰력을 높여서 열 수 있게 하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큰 힘이 들고 잘 열리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여러 메이커에서 병뚜껑을 여는 도구들을 개발했는데 디자인이 대체로 이렇습니다. 


여러 메이커의 병 여는 기구와 기계들

꽤 거창하게 생긴 것과  모터의 힘을 이용하는 것 등 여러 가지입니다. 나름대로 모양을 낸 것도 있고, 흉하게 생긴 것도 있습니다. 굳이 생긴 모양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디자인의 한 가지 공통점은 힘을 이용한다는 겁니다. 뚜껑을 더 단단히 잡아서 아주 큰 힘으로 돌린다는 거지요. 부품의 개수도 상당하고, 가격도 다들 만만치 않습니다. 왼쪽 위의 제품은 5만 원 정도, 왼쪽 아래 Bosch의 제품은 16만 원 정도, 오른쪽 아래의 Black & Decker의 것은 무려 20만 원 정도입니다. 크기로 보나, 사용하는 힘으로 보나, 제품의 복잡도로 보나, 가격으로 보나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게다가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부엌 한쪽에 뻘쭘히 서 있겠지요.


덴마크의 디자이너 Helge Brix-Hansen가 만든 JarKey를 보면 극도로 단순합니다. 사진에 보는 것은 ABS 플라스틱이고 금속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두 가지 재료 모두 일체형, 즉 부품의 숫자는 하나입니다.

Brix JarKey. ABS 재질

사용하는 방법도 아주 간단합니다. 이런 종류의 병들을 열기 힘든 이유는 단단히 잠겨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병 내부가 진공이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온도의 잼을 병에 넣은 후 뚜껑을 닫으면 잼의 온도가 식으면서 잼과 뚜껑 사이의 공기가 수축하고 진공상태가 됩니다. 공기로 인한 변질을 막기 위한 거지요. 이 진공의 힘 때문에 뚜껑 안쪽에 있는 고무 코팅이 병의 테두리와 강하게 접촉하게 되기 때문에 열기가 힘든 겁니다.


필자가 사용하는 Brix JarKey. 알루미늄 재질. 살짝 들어올린 후 뚜껑 가운데 부분이 '뽁'하고 올라온 상태입니다.


Brix의 JarKey를 병뚜껑에 사진처럼 위치시키고 약간 들어 올리면 '뽁'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과 병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생기고 공기가 새어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주 약간의 힘으로 돌려도 스르르 열립니다. 힘을 쓸 필요가 아예 없는 거지요. 만일 더러워지면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거나 물로 닦으면 되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서랍 속에서 쉬게 해 주면 됩니다. 가격은 5천 원 정도입니다.


닭 잡을 때는 닭 잡는 칼만 씁시다.


미시간주 북촌에서 최수신

Sooshin Choi at Northville, Michigan

이전 05화 디자인의 포르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