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that Changes the World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만들어진 것은 인류의 역사 거의 끝 부분에 이르러서지만, 디자인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디자인은 마치 공기처럼 주변 어디에나 있고, 물처럼 우리의 삶을 신선하게 만들어주고, 땅처럼 안전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런,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표현으로서의 디자인
디자인적인 예술
인류 역사의 시작과 같이 시작된 예술은 관찰, 느낌, 그리고 생각의 주관적 표현이 그 본질입니다. 그렇게 표현된 예술품은 그 예술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에게만 공감을 얻습니다. 이 주파수는 시대, 민족, 사상, 문화에 따라 변하기도 합니다.
예술이 디자인이 발생하면서 주관적이던 관점이 객관적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는데, 내가 가진 영감을 표현하는 것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자 하는 목적이 더해지면서 표현으로서의 디자인이 태어나게 됩니다. 종교적인 신념, 교리 등을 많은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종교 예술들은 넓은 의미에서 표현으로서의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감을 표현하는 것은 예술, 의도를 표현하는 것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초기에 응용 미술 또는 의장(일본식 단어인 意匠은 '의도를 가지고 고안해서 만들다'라는 의미)이라고 불렀던 것은 다분히 이러한 속성으로서의 디자인을 부른 것입니다. 인쇄기술의 발달, 제조 공법의 발달 등으로 과거의 예술이 대중화될 수 있는 기술이 마련되어 '가진 자'들만이 누리던 아름다움이 대중이 소유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적인 예술이 보편화되고 윌리엄 모리스의 Arts and Craft나 Arts Nuveau, De Stijl, Art Deco 등의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적인 예술이 활발하게 된 것입니다.
Bauhaus를 기점으로 시작된 조형으로서의 디자인 작업도 예술과 기능이 합리적으로 결합된 디자인에 의한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디자인적인 예술에 그 기반을 두고 자라온 것입니다.
디자인적인 예술이 그 요지를 이루는 제품들은 미학적인 가치가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자동차, 가구, 의류 등이 여기에 속하는 것들로, 디자인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 미학적인 표현입니다. 디자이너를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러한 뿌리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은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이상, 목표, 가치를 물건이나 서비스를 통하여 표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성공적이라면 그 표현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패한다면 그 표현이 사람들이 원하는 표현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요.
세상이 다양한 표정을 가질 수 있고, 우리가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즐기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다분히 표현으로서의 디자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결로서의 디자인
디자인적인 생각
주어진 기능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역할을 하던 디자인이 그 '소극적'이던 자세를 바꿔서 물건의 기능 자체를 좋게 만드는 '적극적'인 작업으로 진화하면서 문제의 해결이 디자인의 중요한 역할이 됩니다. 디자인의 범위도 넓어져서 디자이너들은 심리학, 인간공학, 재료와 공법 같은 것들도 배우고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이유를 직접 발견하기 위한 디자인 연구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디자인은 문제 해결 행위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 입니다. 표현으로서의 디자인이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하는 디자이너의 주관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사람들이 어떤 것을 불편해하는가, 또 어떤 것이 있으면 좋을까 하는 것들을 파악하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이 됩니다.
디자이너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을 엔지니어에게 주어서 생산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그리고 마케터가 동시에 문제를 발견하고, 들여다보고, 해결안을 만드는 과정을 거칩니다. 표현으로서의 디자인에서는 디자이너의 눈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는데 쓰였는데, 해결로서의 디자인에서는 문제를 발견하는 데에도 쓰입니다. 물론 디자이너들만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 특유의 감각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안 보일 수도 있는 문제를 감지해 내기도 합니다. 또 이렇게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디자이너들은 엔지니어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표현으로서의 디자인에 필요한 creative thinking을 담당하는 오른쪽 뇌뿐만 아니라, 문제를 논리적, 합리적, 분석적으로 생각하는 critical thinking을 담당하는 왼쪽 뇌가 동시에 동작을 해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디자이너들이 생각을 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에서 디자인 싱킹 Design Thinking이라는 사고방식이 탄생하고, 왼쪽 뇌를 주로 사용하는 엔지니어링이나 비즈니스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도 디자인 싱킹을 이해하고 익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더 편리해지고 개선되어가는 것은 해결로서의 디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결로서의 디자인
디자인적인 사회
과거 왕이 모든 것을 정하던 전제주의, 독재자가 모든 결정을 하던 독재, 당이 권한을 가지고 있던 공산주의, 모든 국민이 같은 생각을 강요받던 전체주의 등이 아닌 정상적인 국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같이 존재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얼핏 평등해 보이지만, 빈부의 차이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주의 사회는 그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산업의 각 분야가 발달하고 사회가 더욱 다면화 될수록 예전에는 없던 문제들이 더 많이 발생합니다.
물건을 아름답고 쓸모 있게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던 이러다 보니 디자인적인 생각과 접근 방법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데에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를 발견해서 아름답고, 효율적이고, 만족스러운 해결안을 찾는 디자인이 사회 전반에 널린 모순, 비효율, 불합리함, 격차 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물론 디자이너 외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사회 여기저기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합니다. 여기에 디자이너들 만이 가지는 독특한 시각, 전문적인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비즈니스를 활발하게 하고, 소비자와 사용자에게도 더 이익이 가는 방법들을 연구하는데, 서비스 디자인 Service Design, 폴리시 디자인 Policy Design, 사회적 디자인 Socio-Design 같은 분야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디자인적인 사회를 만드는 일에는 디자이너들 뿐만 아니라, 서비스, 정책, 사회 시스템 등을 주종목으로 하는 전문가들도 함께 합니다. 디자인적인 사회에는 디자인적인 기업, 디자인적인 환경, 디자인적인 교육 등이 포함됩니다. 북구의 여러 선진국들, 특히 핀란드 같은 곳에서는 디자인적인 사고방식이 모든 초등학교 교과과정부터 포함됩니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디자인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진 시민으로 자라나게 되고, 모든 의사결정 - 개인이나 공공 차원 - 을 놓고 가장 합리적이고, 혁신적이며, 아름답고, 모두를 배려하는 결론으로 유도하게 됩니다. 디자인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4차 산업의 본질도 연결입니다. 전에는 각각 따로 존재하던 것이 서로 연결되어 이전에는 불가능하던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해진 데에는 인터넷, 인공지능 등의 기술적 진보와 학제적 연구에 대한 관심의 증가 등이 있지만, 원래부터 연결을 통해서 아름다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주기능인 디자인의 역할이 더욱 커졌습니다.
우리 세상이 점점 더 가치있는 사회로 만들어져가는 데에는 연결로서의 디자인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