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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신 Feb 15. 2018

좋은 디자이너:  "노"가 입에 달린 디자이너

착한 디자이너가 좋은 디자이너는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좋은 디자인도 나쁜 디자인도, 심지어 추한 디자인까지 모든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머리에서 시작해 오장육부를 고루 거쳐 디자이너의 손끝에서 나온다. 즉 디자이너 그 자신이 디자인에 녹아 들어있다. 따라서 그 디자이너가 어떠한 디자이너인가 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좋은 디자이너란 어떤 디자이너 일까.


좋은 디자인, 나쁜 디자인, 그리고 추한 디자인이라는 글에서 이 세 가지 유형의 디자인이 결국은 디자이너의 의도와 실력에 달렸다고 이야기했었다. 즉, 좋은 의도가 좋은 실력에 의해 좋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좋은 의도 + 좋은 실력 = 좋은 디자인

좋은 의도 + 나쁜 실력 = 나쁜 디자인

나쁜 의도 + (좋든 나쁘든) 실력 =  추한 디자인

https://brunch.co.kr/@sooshinchoi/4

물론 이 외에도 수많은 변수들이 있겠지만, 결국에는 이 두 가지로 정리된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조금 해 보고 싶다.


좋은 의도 - Good intention - 첫 단추 이상의 의미


의도라는 뜻의 Intention과 젓 시작이라는 의미의 Inception이 비슷하게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 왜 (그것을) 디자인해야 하는가 하는 등등의 질문이 의도를 만들고, 이렇게 해서 생긴 의도가 결국은 모든 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는 좋은 디자인의 출발이다"라는 이야기는 몇 번을 반복해도 부족하다. 좋은 의도는 '첫 단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A. 좋은 의도를 가지려면 첫째 호기심이 많아야 한다.

호기심이 없다면 사실 의도가 생기기도 어렵다. 따라서 호기심 없는 좋은 디자이너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전에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지하철역의 광고를 보는 것이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동안 철길 반대편 벽에 붙어있는 엄청난 크기의 포스터에는 종종 마음에 새겨둘 만한 메시지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에는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와 같이 앉아 있는 뒷모습에, Curiosity and Experience라고 적힌 포스터가 있었는데,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좋은 의도가 좋은 디자인의 출발이라면, 호기심은 좋은 의도의 출발이다. 미국의 디자인 리서치 회사인 Lextant의 캐치프레이즈 중의 하나는 Seriously Curious인데, 디자인 리서치가 디자인 의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보면 참 적절한 문구다. 라이밍도 좋고.


출처: www.pri.org


아쉽게도 나이가 드는 만큼 또 공부를 하는 만큼 호기심은 반비례적으로 줄어든다. 호기심 대신에 잘 나가는 경쟁 메이커의 제품,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참고" 제품, 그리고 윗사람이나 클라이언트의 지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90%쯤은 될 거다. 호기심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보니 좋은 의도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을 수 없다. 다른 잘 나가는 제품을 보고, 윗사람 또는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듣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고 저런 의견을 들으면서 자신의 호기심이 없는 것이 문제인데, 즉 왜 이런 디자인을 했을까 또 왜 이런 생각을 할까 라는 질문을 해보지 않는 것이 결국 호기심이 없다는 증거다.


잠깐 옆가지로 빠지면, 한국의 대학에 초청을 받아서 특강을 하고 나면 질문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겸손해서 또는 수줍어서일 수도 있고, 또는 강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해서 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특강 주제나 내용에 대해 호기심이 많지 않아서다. 호기심이 있다면 강의 내용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할 수도 있고 의문이 들 수도 있으며, 또 질문이 없을 수 없다. 호기심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을 하는 것은 참 맥 빠지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일은 호기심 없는 디자이너들이 무슨 디자인을 할까 하는 암담한 생각이 드는 일이다.  


호기심, 즉 Curiosity이 중요한 이유는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뿐만이 아니라, 상상, 즉imagination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Curiosity가 "why?"라는 질문이라면 imagination은 "why not?"이라는 질문을 만들어 내기 따문이고, 디자인의 출발은 why not이기 때문이다.


사실 호기심이 중요한 분야는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인류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I have no special talent. I am only passionately curious."라고 했는데, 물론 우리가 아는 그는 "special talent" 가 엄청난 사람이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호기심이 없다면 아무리 대단한 능력도 별 쓸모없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출처: inspiraquotes.com


B. 좋은 의도를 만드는 두 번째 요소는 많이 아는 것이다. 

호기심이 충만한 어린아이들이 뭔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는 것이 부족해서이다. 호기심만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옳은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심지어는 내 호기심의 방향이 옳은지도 알기 어렵다. 게다가 지식은 호기심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애초에 몰랐다면 지나칠 것을, 내가 가진 지식에 비추어 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호기심과 지식을 둘 다 많이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소위 전문가들이 창의적이기 어려운 이유는 많이 아는 덕분에 호기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이건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같은 자세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될수록 소위 "요령"이 많이 생기는데, 이 요령이야 말로 디자이너에게는 없어야 되는 적과 같은 존재이다.


지식, 특히 창의적인 지식 creative knowledge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 가지 팁은 자기 분야의 것을 많이 알고, 인접 분야와 먼 분야의 지식도 많이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대부분의 전자제품 디자이너들은 전자제품 전시회에,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오토쇼에, 가구 디자이너들은 가구 전시회에서 디자인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새로운 디자인의 방향을 공부하는데,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이러한 전시회에 가서 얻을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이미 알아야 할 것은 다 알고 있는 데다, 그러한 전시회에 공개된 디자인과 아이디어들은 이니 수년 전에 개발된 것이므로 미래의 디자인을 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전자제품 디자이너는 자동차 전시회에, 가구 디자이너는 결혼 박람회에, 자동차 디자이너는 현대미술관 같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넓은 지식과 영감을 얻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크든 작든 여러 분야의 건문가들과 협업을 하게 마련인데, '디자인 밖에 모르는 디자이너'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협업에 가장 큰 장애다. 내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한다. 재료 공학자는 아니지만 사용하고자 하는 재료에 대해서 한참 떠들 수 있어야 한다. 코드를 직접 쓰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코드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정도는 알야야 한다. 경영자는 아니더라도 그 회사의 경영에 디자인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헤 한시간 정도의 세미나는 할 수 있어야 한다.


C. 좋은 의도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부정하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 호기심과 지식 - 만으로도 디자인 의도를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 한데, 이 의도가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부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부정하는 거라고 해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다. 디자인은 우리가 아는 것을 부정하는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배운건 1973년, 처음 디자인을 배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이야기를 하면 "꼰대"로 불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


디자인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던 교수님이 Design은 사실 sign이라는 단어에 부정의 의미가 담긴 de가 접두어로 붙어있다는 것이다. Sign이란 우리가 약속한 것들 또는 익숙한 것들인데, 디자인의 출발은, 그리고 결과는 우리에게 익숙한 약속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현재 우리가 익숙한 것에 대한 부정이 없다면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4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설명을 듣던 때의 기억이 선명할 뿐만 아니라, 나의 디자인 철학의 기둥이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디자이너들이 부정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없어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고, 따라서 더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낼 기회를 잃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좋은"과 "착한"을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 아마도 흥부전, 심청전 등의 이야기의 영향으로 - 착한 사람 신드롬 때문에, 착한 디자이너가 되려고 하다 보니 부정하는 것에 대한 생각과 능력이 없거나 약한 것이다. 좋은 디자이너와 착한 디자이너는 다르다.


우리가 익숙한 것에 대한 것을 부정하는 것은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데 어떠한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가. 그 이야기를 해보자.


- 지금 존재하는 디자인 또는 기술을 부정하기: 아무리 좋아 보이는, 도저히 그 이상의 것은 나올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디자인이나 기술이라고 해도 반드시 그것을 뛰어넘는 디자인과 기술이 나온다. 나의 디자인이 단순히 "또 하나의 디자인"이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이 되게 하려면 절대적이고 궁극적으로 보이는 디자인들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십 년 전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싶어 하는 iPod라는 물건이 있었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보지 못한 물건일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누구나 가지고 있었고, 새로운 UI를 사용한 매끈한 디자인은 우리를 매료시키기게 충분했다. 애플은 그 인기에 힘입어 iPod Mini, iPod Nano, iPod  Shuffle, iPod Touch 등을 연이어 개발했었다. 내가 가르치던 대학의 수업시간에 지금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iPod이나 MP3 플레이어들이 수년 내에 없어질 거라고 했더니, 학생들에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때 내가 iPod이 없어질 거라고 예측한 가장 큰 이유는 그 태생적인 폐쇄성 때문이다. 아무리 큰 용량의 iPod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듣고 싶은 모든 노래를 담을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고 나에게만 들리는 기술과 서비스가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년 뒤 iPhone이 iPod의 모든 기능을 흡수했을뿐더러, Pandora, Spotify나 Sirius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하드웨어에 국한된 폐쇄성을 극복하고 어디서나 어떤 음악이든 듣게 해 주고 있다. 물론 그 수많은 iPod들은 서랍 속에서 자고 있고.

iPhone이 등장하기 이전의 스마트 폰들. 디테일은 달라도 다 같은 아키타입을 가지고 있다.


후발 주자였으면서도 스마트 폰의 판도를 바꾸어 스마트 폰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애플은 그전까지 지배적이었던 스마트 폰의 아키타입 (architype: 전형) - 기기의 반은 스크린, 반은 키보드 - 을 부정하고 기기 전체가 스크린인 iPhone을 만들었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디자인의, 그리고 인간공학적인 연구를 담은 키보드를 디자인하는데 참으로 많은 노력을 쏟았다.


불과 수년이 지나 키보드가 사라진 iPhone이 등장한 이후, iPhone과 같은 구성, 즉 전면이 스크린인 스마트 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동안 크기가 커지고 베젤이 얇아지는 등의 변화를 빼고는 이 구성이 변하지 않아서 iPhone이 새로운 아키타입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스마트 폰 시장에서 10년 전의 애플이 만들어낸 혁신을 다시 만들고자 한다면 이 아키타입을 정면으로 부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메이커와 디자이너는 평생 남이 만든 것 따라 하기 바쁠 수밖에 없다.

Apple iPhone. 2007년
Apple iPhone이 만든 아키타입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스마트 폰 디자인들


- 클라이언트나 상사의 요구를 부정하기 (최소한 적극적으로 의문을 가져보기):  상대적으로 나보다 위에 있는 클라이언트나 상사, 또는 교수의 지시나 요구를 부정하기란 우리나라의 정서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인 디자인의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나 지시를 부정하거나, 아니면 최소한도 적극적으로 의문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그러한 요구가 묵과했거나 빠뜨리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디자이너의 생각을 처음부터 제한해 버리기 때문이며, 셋째, 이러한 요구나 지시가 나쁜 의도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첫째, 디자이너가 지시나 요구를 부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험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인데, 사실 아무리 경험이 많거나 지식이 많다고 해도 생각 못하고 지나치는 것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유교에서 비롯된 우리나라 정서중 하나인 장유유서가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데에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둘째,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본 다양한 생각이 디자인 과정에서 빠지면 중요한 기회를 잃을 수도 있고, 당연히 창의성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디자인 프로세스를 divergence(확산)와 convergence (수렴)의 반복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상사나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지시에 '순종적'이라면 불행하게도 discover 단계에서의 수많은 발견의 기회를 놓치기 마련이다.

Double Diamond 디자인 프로세스. Discover와 Develop 단계에서는 확산이, Define과 Deliver 단계에서는 수렴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만일 클라이언트나 상사의 요구 또는 지시가 나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하면, 본의 아니게 나쁜 디자인, 추한 디자인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추구이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위 "잘 나가는 디자인"을 도용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는 게 문제다. Design and Designers: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서 이야기한 추한 디자인은 100% 이러한 상황에서 출발한다. 디자인 교육을 잘 받고 실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들 까지도 추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데 참여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잘못된 요구나 지시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디자이너들이 나쁘고 추한 의도에 동의했다기보다는 한국적인, 혹은 동양적인 정서상 부정하기를 피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결과적으로 스스로가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Series 7 의자.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디자인 도용 제품이 있다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Arne Jacobsen이 디자인하고 Fritz Hansen사가 제작한 Series 7 의자는 일체 합판 성형의 간단한 구조이면서도 우아한 자태로 1955년 처음 생산된 이래 60년이 넘도록 아직까지도 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의자 디자인의 명작이다.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이었던 3차원 합판 성형 프로세스로 제작되어서 가녀린 모습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실용 강도를 지녔다. 그러다 보니 합판 성형 기술이 보급됨에 따라서 디자인 도용의 타깃이 되어버렸고, 안타깝게도 우리가 볼 수 있는 Series 7 의자는 대부분 디자인 도용품이다.

다양한 환경에 잘 어울리는 Fritz Hansen Series 7 Chair

물론 나도 가구 메이커에서 일할 때 이 Series 7 의자와 같은 디자인의 의자를 '디자인'하라는 요구를 수도 없이 받았고, 그때마다 거절을 했었다. 하긴, 만일 별로 따지지 않고 만들었었다면 이런 글을 쓰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대우자동차 회사에서 일할 때, 아직 20대 중반의 '어린' 디자이너 시절, 회사 대표가 멋져 보이는 미국 자동차의 테일 램프를 직접 가지고 와서 당시 진행 중이던 모델의 램프를 그 디자인처럼 하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다. 그 대표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멋져 보이는 디자인을 우리도 만들자는 정도의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나쁜 의도에 의한 추한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모습이 되는 것이다. 결국 그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그 대신 당시로서는 최고급 모델인 로얄 살롱을 맡아 진행했고 다른 동료가 이어서 그 디자인처럼 만든 램프를 달고 로얄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나중에 기아자동차에서 일할 때에도 종종 마주하게 된 그 많은 '나쁘고 추한' 지시들을 그대로 따랐더라면 이 글을 못 쓸 뻔했다.

대우 로얄 살롱의 렌더링. 81년 8월 21일이라는 날자가 보인다.


- 나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기: 사실 이게 가장 어렵다. 대부분의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때문에 일단 자신의 디자인 의도가 좋다고 생각되면 그 이상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가 불가능해진다. 표현이 좀 과격하긴 하지만, 나 자신이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려는 나의 가장 강력한 장애물인 셈이다.


글 쓰기에 있어서도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안 나오던 오자, 탈자가 다른 사람이 읽으면 금방 발견되는 것도 비슷한 이치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생각, 의도, 디자인을 부정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색안경을 끼고 자기를 보면 된다. 자기가 만든 것들을 마치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디자인인 것처럼 한번 정도는 부정해 보는 것이다. 나 스스로 브레인스토밍을 하되, 브레인스토밍의 기본 원칙인 반론 금지를 무시하고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손잡이는 왜 여기 있지?" 하고 묻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는 식이다. "이건 XX 디자인과 너무 닮지 않았나?" 하는 식의 질문도 아주 바람직하다. 약간 짜증이 섞인 식의 비판은 더욱 좋다. "한글을 못 읽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하는 식이다.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 선수촌의 스마트 스위치 시스템이 뉴스에 오른 이유가 일반적이지 않은 '스마트'한 기능 때문에 각국에서 온 선수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그 스위치가 한글로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디자이너가 "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어쩌라고!"라는 비판을 한 번만 했더라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평창 동계 올림픽 선수촌의 스마트 스위치

2018년 초 일하던 대학교를 그만두게 되면서 여러 가지 바쁜 일로 글쓰기가 많이 늦었습니다. 다음 번부터는 때맞추어 올리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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