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수신 Aug 07. 2018

Design과 De-Sign

혁신의 안내자로서의 디자인

예전 학교 다닐 때 은사에게서 Design은 실제로 De-sign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전에도 또 후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또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 이야기가 디자이너로서의, 또 디자인 교육자로서의 저의 자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Design과 De-Sign, 그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사인: Sign


우리가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이유는 sign이 있기 때문입니다. Sign이란 우리 모두가 약속한 것, 또 익숙한 것을 말하는 겁니다. Sign에는 두 가지 - 원천적인 sign과 인위적인 sign이 있습니다.


자연적인 (또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sign 이란 빨간색을 보면 뜨거운 것이나 피를 연상하고 금색을 보면 비싸고 고급스럽게 느끼는 것 같은 것을 말합니다. 자연적인 sign을 이용해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의 색과 정지신호는 빨간색을 사용하고, 고급품은 종종 금색의 치장을 합니다.


Photo by NON on Unsplash


인위적인 (또는 인위적으로 생성된) sign은 주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에 따라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들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만드는 sign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누구인가, 또 어떤 환경, 기술, 문화에서 만들어진 sign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이 서구에서는 으뜸, 우수, 동의의 뜻을 나타내는데 반해서, 중동에서는 성적인 모욕감을 주는 것은 문화에 따른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sign의 차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연적인 sign과 문화를 반영한 sign들은 디자인의 개발에 상당히 유용한 재료가 됩니다. 이런 sign들을 무시하고 디자인한다면 나쁜 디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위험한 디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나 정지 신호등의 색을 파란색으로 한다면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또 지역에 따라 그 지역에 맞는 디자인을 하려면 그 지역이나 문화에서 받아들여지는 sign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스커트를 입은 사람 모양을 여성 화장실 심벌로 쓴다면 종종 남자들이 들어올 수도 있겠지요.

cartoonstock.com


브랜드의 디자인에도 사인은 매우 중요합니다. 브랜드의 상징인 로고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자연적, 인위적인 사인을 사용해서 그 브랜드의 제품과 서비스의 성격과 수준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시각 디자인, 특히 wayfinding 디자인에 있어서 사인은 결정적입니다. 우리나라의 wayfinding이 이 사인을 잘못 사용해서 길을 못 찾게 만드는 건 물론 사고를 유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기술적인 패러다임이 변화하면 그 전까지의 sign은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다이얼 전화기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전화를 걸다'를 영어로 'dial the number"라고 말했고, '전화를 걸게'라는 말을 엄지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귀와 입에 대는 모습을 하는 것으로 표시했습니다. 당시의 전화기가 다이얼과 송수신기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손가락 제스처로 만든 sign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위적인, 특히 기술에 따라서 만들어져서 우리가 익숙해진 sign은 디자인의 진보를 막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서 현재의 sign에 매어 있다 보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최초로 태양전지만을 사용하는 비행기 Solar Impulse를 만들어 세계를 한 바퀴 돈 Bertrand Piccard 가 말했듯이, 대부분의 우리는 패러다임에 갇힌 죄수 prisoners of our paradigm입니다. 혁신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Solar Impulse 2



디자인: De-Sign


모든 제품이 다 혁신적이라면 그건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혁신적이라는 건 완전히 새롭다는 뜻인데, 만일 모든 것들이 혁신적이라면, 즉, 이전에는 없던 것, 이전에 사용하지 않던 방식의 물건들이라면  평생 뭔가에 익숙해질 수도 없고, 늘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일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혁신의 연속입니다. 정치, 사회도 혁명적인 사건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이러한 혁신, 혁명적 사건들이 없었다면 늘 살던 대로 살고 있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사회보다도 수십 배 더 문제가 많았던, 왕, 황제 같은 한 사람만을 위한 사회에 여태 살고 있을 겁니다. 중국 역사 드라마 사마의를 최근 정주행 하면서 이 드라마는 사마의의 일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정시대의 모순된 패러다임에 묵여 살던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황제들도 비극적으로 살았거나 죽었으니 모두가 비극적이었던 거지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사회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혁신, 혁명적인 사건이 있었던 결과입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야금야금 뭔가를 개선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큰 개선, 뚜렷한 가치를 만드는 디자인을 하려면 design이 아니라 de-sign을 해야 합니다. Design을 하는 기업과 De-Sign을 하는 기업은 쉽게 구별됩니다. 애플은 과거의 모든 ‘sign’들을 대체해버리는 ‘de-sign’된 물건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애플 컴퓨터, 매킨토시,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튠즈, 이 모든 것들은 de-sign 된 물건들입니다. 애플 컴퓨터는 ‘컴퓨터란 기업이 사용하는 집만한 설비여서 개인은 사용할 수도 없고 사용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뒤집어 놓은 de-sign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품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름도 IBM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즉 국제사무기기회사) 같은 기업형 이름이 아닌, ‘사과’로 정한 겁니다. 로고도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천재적이었지만 불행했던 한 과학자를 기리는 뜻도 있기는 하지만.


애플 2 컴퓨터를 소개하던 광고 영상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즉 미래의 암울한 세상을 주제로 사용하여 한 여자가 망치를 가지고 이를 부수는 장면을 사용합니다. 이전까지 정부, 대기업 같은 빅브라더가 시장과 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하던 장비인 컴퓨터를 개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새 세상을 연 것을 임팩트 있게 보여준 겁니다. 그 후의 애플의 성공 스토리는 우리가 다 아는 대로입니다.


iPhone의 초기 프로토타입


애플이 만든 이런 것들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다른 기업들은 비슷한 제품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애플이 리더라면 이들은 팔로어 들입니다. 이런 팔로어 가운데에도 속도나 규모, 품질 등에 따른 수준 차이가 있다 보니, 그중 더 빠른 회사들을 fast follower라는 배지를 달아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팔로어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팔로어 회사 디자이너들이 design을 할 때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de-sign을 합니다. 물론 잡스 이후의 애플은 점점 design 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쓰는 것 같기는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design을 하다 보면 애플도 어느 순간에 팔로어가 될 수 있고, 이미 여기저기서 그런 조짐이 좀 보이긴 합니다.


1908년에 발명된 진공청소기를 만드는 회사로 설립된 Hoover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진공청소기 회사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hoover를 동사로 사용해서,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다’라는 뜻으로 쓰기도 할 정도로 시장을 지배했었습니다. 이걸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지배력을 즐기는 동안 많은 팔로어들이 시장의 파이를 나누었고, 또 특히 Hoover는 다른 제품을 de-sign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국 Royal College of Art에서 디자인 공학을 공부한 James Dyson이 만든 Dyson도 de-sign을 하는 기업입니다. 과거의 모든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vacuum bag에 모으고 이 백이 다 차면 버리는, 그런 패러다임의 청소기였던 것에 반해 Dyson은 사이클론 현상을 응용한 공기의 흐름을 사용한 백이 없는 청소기 bagless vacuum을 만든 겁니다. 백만 없는 것이 아니라 막힘이 없는 청소기로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시켜서 이전의 청소기들보다 한참 비쌌음에도 Dyson은 꿈의 청소기가 됩니다.


Dyson’s first ball 진공청소기 초기 프로토타입


물론 많은 팔로어들이 다이슨과 유사한 청소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 팔로어들 중에는 과거 청소기의 왕이었던 Hoover도 있었는데, Hoover는 1999년 다이슨의 특허를 침해한 사실이 인정되어서 4백만 파운드의 벌금을 무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De-sign을 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Dyson (왼쪽) 과 Hoover


재미있는 것은 - 사실 슬픈 것은 - 다른 유명 기업들이 이러한 현상과 결과를 보고도 전혀 배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회사들 가운데에는 이름의 이니셜만 봐도 알만한 회사들이 즐비합니다. Dyson이 여세를 몰아 개발한 여러 품들 - 다른 여러 가지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손 말리는 드라이어 - 은 수많은 팔로어 모델들을 낳았습니다. De-sign을 하는 기업과 디자이너들도 열심히 일하지만, design을 하는 회사와 그 디자이너들도 열심히 일하는 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요. De-sign을 하는 회사는 시장을 지배하고 가격표도 마음대로 붙이고 또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며, 그런 일을 하는 디자이너들은 긍지와 더 나은 능력, 그리고 거기에 맞는 연봉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에 design을 하는 (사실 이런 식으로 부르기도 아까운) 회사는 시장에서 남은 부스러기를 가져가고 늘 가격표는 남들이 정해주며, 그런 일을 하는 디자이너들은 달마다 월급이 들어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살게 됩니다. Design과 De-Sign의 차이입니다.


미시간 북촌에서 최수신


표지사진 by Jessica Lewis from Pexel




이전 01화 우리는 왜 디자인 하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