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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나 신 Nov 01. 2020

해외취업,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홍콩, 태국, 싱가포르를 거쳐온 해외생활 10년의 단상

나는 조기 유학생도, 영어 천재도, 단지 경험이나 스펙을 위해 유학을 갈 만큼 부유한 집 자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무리한 유학길에 오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한국이 싫어서. 그래서 몇 년 전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너무나 통쾌했다. 과거에는 나의 선택을 손가락질했지만 이제는 해외로 떠날 궁리를 하며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되뇌곤 했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역시 외국이 답이라니까.




당신의 환상을 깨 드립니다

첫 1-2년까지만 해도 외국은 외국이니까 마냥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수평적인 기회의 땅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외국은, 적어도 내가 지난 10년간 겪은 외국은, 내가 염증을 느꼈던 한국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꼰대, 외모지상주의, 편견과 차별, 사교육 열풍, 지역감정, 집단 험담과 따돌림, 학연, 지연, 혈연, 비리 정부, 빈익빈 부익부, 그리고 미세먼지까지! 그 형태와 정도는 다양했지만 우리나라가 단연 최악이 아닌 부분도 많았다.


해외취업 후 초과 근무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어본 적이 있고,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물벼락도 맞아본 나로서는 해외 취업과 이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을 늘어놓는 요즘이 조금은 위험하게 느껴진다. 스타트업의 성지라서, 복지천국이라서,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1위라서 준비해서 이직해야 한다고? 한국 사람 모두가 공유나 전지현처럼 생기지 않은 것처럼, 한국에서의 모든 삶이 기생충 영화에 나온 반지하방과 호화주택, 이렇게 두 부류로만 나뉘지 않는 것처럼 해외 생활 또한 우리가 매체나 남의 시선을 통해 보고 듣는 것만큼 단편적이지 않다. 좋은 점이 있는 곳에는 분명 나쁜 점도 있다.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한국에서 당연했던 많은 것들이 외국에 나오면 더 이상 당연해지지 않는다. 간단한 인터넷 설치나 가전기기 수리도 신청 후 최소 2주는 기다려야 하고, 병원비는 터무니없이 비싼데 비해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도어록보다는 짤랑거리는 열쇠로 현관문을 열어야 하고, 온수기를 따로 켜지 않으면 온수를 사용할 수 없다. 실내 난방이 없어 영상 15도의 날씨에도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하고, 마음이 고단한 날 실컷 하소연할 친구도 가족도 곁에 없다. 물론 이제는 내게 일상적인 불편함과 외로움이지만 그래도 가끔 드는 생각은, 대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특히 나는 쭉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거나 공통 모국어인 나라들에서 일했기 때문에 회사 점심시간이나 회식 때마다 현지어가 주가 되어 이루어지는 동료들의 대화에 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항상 거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 하나 때문에 영어를 강요해야 하는 상황이 미안하고 불편했고, 현지어를 빨리 배워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회사 밖에서 맞닥뜨린 부당하거나 곤란한 상황에서도 직접 대처할 수가 없어 매번 현지 동료나 친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업무와 일상에서는 어려움 없이 쓰는 영어도 병원이나 약국만 가면 알 수 없는 외계어로 변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말까지 안 통하면 정말이지 울고 싶어 진다.




외국은 무엇으로의 지름길도,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처도 아니다. 나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해외생활이 한 번쯤 해볼 만한 경험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이루고 배우기 위한 필수 조건이나 평가의 잣대는 아니다. 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꼭 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해외 취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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