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 오백 살,
돈화문 옆 은행나무

궁궐을 걷는 시간X창덕궁 나무 산책

by 궁궐을 걷는 시간

내일모레 오백 살, 돈화문 옆 은행나무


돈화문 옆으로 한눈에 봐도 나이가 무척 많을 것 같은 ‘어르신’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돈화문과 창덕궁관람지원센터 사이인데요. 나무에 굳이 어르신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옆에 있는 안내문 내용 때문입니다. 이 나무는 197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 나오는데, 이때 나이가 이미 425살이라고 표기되어 있어요. 이 글을 쓰는 2022년 기준으로 치면 475살이 되는 셈이죠. 이제 어르신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겠죠?



2022년에서 475년을 빼면 1547년이 나옵니다. 명종(13대) 때쯤인데요. 나무의 수령을 잴 때 약간의 오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임진왜란 이전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돈화문 앞을 지날 때마다 이 나무를 처음 이곳에 심었을 때를 상상하고는 하죠. 분명 이 은행나무는 전쟁으로 훼손되기 전의 돈화문과 창덕궁의 모습을 봤을 거예요. 그때는 지금처럼 키가 크지 않았겠죠. 작은 몸으로 궁궐 정문 주변을 지켜봤을 테고요. 때로 길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차여 흔들거리기도 했겠죠. 그 숱한 시간을 견디고 비켜 지금 이렇게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놀랍고 대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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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행나무 집안의 내력을 알게 되면 500여 년 이 나무의 나이 앞에 ‘어르신’이란 수식을 붙이기 살짝 민망해집니다. 은행나무가 지구에 처음 나타난 때는 자그마치 2억 5천만 년 전이라고 해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아득한 옛날입니다. 모든 나무가 오래 사는 건 아니지만 은행나무는 장수 나무에 속하는데요. 천년 이상 사는 은행나무가 제법 있다고 하니까요. 그러니 이 나무는 은행나무 무리 사이에선 중년쯤에 해당한다고 할까요.


은행(銀杏)나무 씨앗은 살구(杏) 씨앗을 닮았습니다. 색깔이 은색을 띠어 나무 이름에 ‘은(銀)’ 자가 붙었죠. 나무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부채꼴 모양의 은행나무 잎은 대개 알아보는데요. 잎 모양이 오리 발을 닮아 은행나무를 오리 ‘압(鴨)’ 자와 다리 ‘각(脚)’ 자를 써서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합니다. 이제 은행나무를 볼 때면 오리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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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는 암수나무가 따로 있습니다. 가까운 자리에 수나무가 있어야 암나무에 열매가 맺힙니다. 2022년 초여름쯤 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지에 달린 동그란 은행들을 봤어요.(8월말 현재, 적갈색으로 변한 은행이 익어가더라고요.) 가을에 익어서는 바닥에 후두둑 떨어질 테죠. 역한 냄새가 날 테니 가을에 은행나무 밑을 지날 때면 조심해야 하겠죠. 그러고보니 돈화문 옆 은행나무는 암나무가 확실합니다. 근처에 분명 수나무가 있을 테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475년을 살면서 이 나무는 지금까지 몇 번의 열매를 맺고, 떨어트리기를 반복했을까요. 노랗게 물들인 은행 잎을 몇 장이나 바닥에 떨구었을까요. 은행나무가 지구에 온 2억 5천만 년의 시간을 물론, 475년이라는 세월도 제게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순간 이 나무가 좀 외로워보이네요. 500여 년을 이렇게 홀로 서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말이죠. 그런데 백수십 년 전쯤부터 친구가 된 동생 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그 나무들을 보러 이제 돈화문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은행나무를 두고 가면서, 이 나무의 500살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일었습니다. 25년쯤 후의 일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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