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홍 Feb 18. 2022

저것도 책이라고

쓰지 않는 자의 자기 고백

해당 사진과 글은 아무런 연관이 없음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된
 에세이 책들을 보고 있자면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젠 유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몇 년 전부터 서점을 장악한 그것들은 인정 욕구와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말장난일 뿐, 문학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여겼다.

-

 연초 들어 나는 글이 다시 쓰고 싶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때때로 사치하는 일을 즐기지만 그 어떤 일도 글을 썼을 때의 기쁨과는 비할 바가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건 오래전부터 꿈꾸던 일이었으므로

-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메모장을 열어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소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이전만큼은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스스로 정한 기준만큼은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애꿎은 키보드만 두들기다 노트북을 닫았다. 일을 하고 있으니 핑곗거리가 많아 좋았다.

-

 얼마 전에 시작한 sns에 달린 댓글들을 보다 버스를 놓쳤다. 어쩌다 보니 취미가 된 요리가 재밌어서 만든 계정에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니 좋았다.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없으니 편했다. 편한 건 물건이든 사람이든 자주 찾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버스를 떠나보냈다. 약속시간에 늦을까 싶어 몇십 번은 다녔을 법한 길을 뛰어가며 깨달았다. 아, 지금껏 내가 글을 쓰지 못한 건 다 내 오만함 때문이구나.

-

 글은 어째야 되는 건데, 니가 정한 테두리 안에 있는 것들만 문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래서 너는 지금까지 무얼 했느냐고 내 속의 내가 다그쳤다. 읽지도 않고 꽂아둔 책들 위로는 먼지가 쌓여있었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래서 네가 지금 작가라도 되느냐고, 지금껏 뭘 두려워하고 있던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던 찰나에 그토록 싫어하던 에세이 작가들이 떠올랐다. 사실 내가 우습다 여긴 그 작가들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바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제와 한 문장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내가 지금껏 가졌던 오만과 건방을 깨닫자 나는 어떤 실마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책을 좋아하던 어린시절과 글을 사랑하게 된 10대의 어느날을 기억한다. 맞아, 잘쓰진 못할거야. 그렇다하더라도 오늘만큼은 그 어떠한 것도 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웨딩드레스를 입은 너를 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