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는 자의 자기 고백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된
에세이 책들을 보고 있자면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젠 유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몇 년 전부터 서점을 장악한 그것들은 인정 욕구와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말장난일 뿐, 문학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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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들어 나는 글이 다시 쓰고 싶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때때로 사치하는 일을 즐기지만 그 어떤 일도 글을 썼을 때의 기쁨과는 비할 바가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건 오래전부터 꿈꾸던 일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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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메모장을 열어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소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이전만큼은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스스로 정한 기준만큼은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애꿎은 키보드만 두들기다 노트북을 닫았다. 일을 하고 있으니 핑곗거리가 많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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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시작한 sns에 달린 댓글들을 보다 버스를 놓쳤다. 어쩌다 보니 취미가 된 요리가 재밌어서 만든 계정에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니 좋았다.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없으니 편했다. 편한 건 물건이든 사람이든 자주 찾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버스를 떠나보냈다. 약속시간에 늦을까 싶어 몇십 번은 다녔을 법한 길을 뛰어가며 깨달았다. 아, 지금껏 내가 글을 쓰지 못한 건 다 내 오만함 때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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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어째야 되는 건데, 니가 정한 테두리 안에 있는 것들만 문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래서 너는 지금까지 무얼 했느냐고 내 속의 내가 다그쳤다. 읽지도 않고 꽂아둔 책들 위로는 먼지가 쌓여있었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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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가 지금 작가라도 되느냐고, 지금껏 뭘 두려워하고 있던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던 찰나에 그토록 싫어하던 에세이 작가들이 떠올랐다. 사실 내가 우습다 여긴 그 작가들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바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제와 한 문장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내가 지금껏 가졌던 오만과 건방을 깨닫자 나는 어떤 실마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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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던 어린시절과 글을 사랑하게 된 10대의 어느날을 기억한다. 맞아, 잘쓰진 못할거야. 그렇다하더라도 오늘만큼은 그 어떠한 것도 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