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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홍 Sep 14. 2023

뭐 했다고 벌써 가을이냐

세월이 무정한 이들에게 바침

"뭐 했다고 벌써 9월이냐."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그러했다. 올해가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왠지 아득해지는 기분이 든다. 지금껏 그 이유는 누군가처럼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거나 한 해가 지나도록 이뤄낸 게 없기에 그렇다 여겼는데 올해 보니 원인은 다른 데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참 바쁜 상반기였다. 평생의 꿈이 글을 써서 책을 출간하는 것과 책과 음악이 있는 바를 여는 것인데 양쪽 다 기회가 찾아왔다. 전자는 내가 노력만 하면 한 단계 그 꿈에 가까워질 수 있었고(정확하게 말하면 역량을 키울 수 있었고) 후자의 경우엔 운이 닿아 정말 올해 안에 실현하게 될 예정이었다. 작가로서의 삶이나 연남동의 어느 북바처럼 내가 꿈꿔온 어떤 모습이 정말 현실이 될 수 있다니 그토록 행복할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진.

 직장과 사업 준비를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무리였다. 사업을 해본 적도 없고 배워본 적도 없는 나에게 떨어진 기회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아이에게 쥐어진 산악자전거와 같은 것이었고(난 산도 잘 못 타는데..) 거기다 지원사업까지 받아보겠다고 설치는 바람에 한 해가 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연가는 동나 있었다. 그렇게 있는 연가 없는 연가 끌어다 쓰고 주말까지 반납해 가며 말 그대로 겨우 따낸 지원사업은 사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지금도 얼렁뚱땅 진행 중이고.

이 문자 하나 보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던가. 난 개고생 사이에 찾아온 잠깐의 쉴 틈에 현역 작가의 소설 쓰기 강의 개설 소식을 접하고는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수강 등록을 해 버렸다. 거기다 숙원사업인 다이어트와 엉망진창인 영어 회화 실력을 키우기 위해 PT와 과외까지 시작하면서 나는 말 그대로 집에서 잠만 자는 환장의 스케줄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나태지옥에 빠진 인간처럼 쏟아지는 할 일을 몸으로 때우면서 여름을 보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가장 바쁘신 거 같아요."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한 달에 한 번 보던 친구들과 몇 있지도 않은 지인들을 보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대체로 시간이 없었고 어쩌다 시간이 나면 아팠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벌인 일이니까. 정말 괜찮지 않은 건 그런데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는 마음이었다. 난 이런 와중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소식이나 어떤 말에 쉽사리 흔들렸다. 더 할 수 없을 만큼의 일을 벌여놓고 불안해하고, 소화하지 못하는 일을 꾸역꾸역 삼키면서 다른 일에도 탐을 냈다. 몸은 바쁘고 마음은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고 그렇게 가을이 돌아왔다. 올 가을은 어떻게 해서든 벌인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마감일이 지뢰처럼 산재해 있는 결실의 계절이 되었다. 그 때문일까.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해내는 게 없는 것만 같은 요즘은 스스로의 욕심보다 기회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복에 겨운 핑계를 들고 싶어진다.


"단풍 보러 가자, 단풍."


 그러고 보니 단풍놀이를 갔던 때가 대체 언제였던가. 타는 듯한 가을 냄새가 나던 들판과 그 곳에 누워 바라본 파란 하늘 아래 붉은 단풍, 노란 물결이 든 산책길까지. 가을 하면 떠오르는 단풍놀이가 유난히 멀게만 느껴진다. 지나친 욕심으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탓이다. 그러니 무엇이 어찌 됐든 당분간은 마음을 내려 놓고 단풍을 보러 가야겠다. 그리고 오랜 시간 보지 못한 친구들과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이래도 되나 싶게 시간을 막 허비할 참이다. 어떻게든 지난한 여름은 지났고 가을이 돌아오고 있으니까. 가을엔 화담숲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사랑하는 이에게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결실의 계절이 왔으니 떠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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