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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 Sep 21. 2024

열등한 하루

한없이 작아진 나의 '오늘'에 관하여

문득, 타인에 비해 내가 쓸모없이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밖에선 나이스한 척, 혼자서도 잘 사는 척하며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와 소파에 몸을 기대었을 때, 뭐라도 챙겨 먹어야지 하며, 냉동음식을 덥혀놓고 애꾿은 밥알만 젓가락으로 휘저을 때. 문득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사랑하는 가족일 수도, 오래된 친구일 수도, 인연이 다한 그녀일 수도.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그렇게 대단하고 특별한 삶을 바란 것도 아닌데 내 욕심이 과한 건지.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싶은 순간. 오늘 하루를 복기해 본다.


이른 아침, 이유 모를 불안감과 함께 출근길에 몸을 맡겼다. 다들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나 역시 그들과 같이 발걸음의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 허나 어딘가 텅 비어버린 마음 한구석은 점심시간 다 되도록 채워지지 않았다. 


직장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때우는 중, 한 동료가 전에 사귀던 남자의 흉을 보았다. 스몰토크의 소재로 이용하기 나쁘지 않은 정도. 다들 깔깔대며 웃음으로 맞장구칠 때, 어딘가 씁쓸해지면서 괜히 혼자 쓴웃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 전에 사귀었던 그녀가 떠올랐을 거다. 


더 이상 그녀의 프로필은 볼 수 없었지만, 친구의 말로 전해 들은 바 객관적인 지표가 나보다 괜찮은 사람과 연애 중에 있다고 들었다. 후회와 열등감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나보다 좋은 직장, 나보다 뛰어난 외모, 나보다 괜찮은 성격, 나보다 좋은 집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상상 속의 그 사람은 나를 몇 번이고 찔렀다.

 

금요일 오후, 쓸데없는 잡념들을 뒤로한 채 다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았고, 시간이 지나 퇴근 무렵이 되었다. 각자 좋은 약속이 있는 모양인지 분주한 모양새다. 몇몇 여직원들은 화장을 고쳤고, 술 약속이 있는 남직원들은 마음만은 이미 술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다들 꽤나 괜찮을 하루를 살아가고 있구나. 나를 제외한 내 주변 모든 생이.


집에 돌아와 이직을 위해 공부한다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활자를 쳐다볼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인스타를 보니 다들 행복해 보였고 각자 멋진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예쁘게 포장된 순간만 쳐다보고 있는 나만이 존재했거나.


복기를 마치고 난 뒤, 열등한 하루의 문제는 결국 '나'로 밝혀졌다. 쿨병에 걸려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지 않았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죄다. 오늘 하루동안은 행복할 수밖에 없는 상상 속의 타인을 만들었고, 그들과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한 죄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을 살며 이런 어리석은 순간들을 맞이한다. 나를 기준으로 남을 보는 것이 아닌 남의 기준에 맞춰 나를 본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은 과학이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언제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원래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이 글은 사실 오늘 내가 했던 바보 같은 짓의 고백이다.


그렇지만 내가 느낀 열등한 오늘 하루도, 내 인생이란 여행의 일부이고, 지나가는 잠시라 여기려 한다.

바꾸려 하기보단 받아들이는 편이 마음 편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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