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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chroid Dec 16. 2015

최은미의 소설 '너무 아름다운 꿈'

 2013년 4월 1일, 나는 황토고원으로 갔다. 
 고원의 허공 위에 꽃이 피었다고 했다.
 꽃이 공중에 피다니, 그것은 비유입니까.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짐을 꾸린 것은 꽃을 따기 위해 열기구를 띄운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황토고원은 서쪽에 있었다. 나는 편서풍을 거슬러서 갔다.

- 최은미, '너무 아름다운 꿈', [너무 아름다운 꿈], 83쪽, 2013


 하늘에 피는 꽃은 없다. 그건 져서 떨어지고 있는 꽃을 의미한다. 이 단도직입적이면서 시적인 도입부는 굉장하다. 열기구는 공중에 핀 꽃을 따기 위한 것이 아니라 2013년의 모든 것을 부옇게 덮어버린 황사를 채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고원의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 '공중화'인 걸까? 


메이멍. 나는 침을 삼켰다. 美夢인지 迷夢인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리가 환호 속에서 마무리짓는 것은 꿈 얘기였다. 우리는 다 같이 리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꿈속에서는 무엇을 해도 진실이 아니야. 그 꿈을 깨야지. 꿈을 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뭔지 알아? 바로 뛰어내리는 거야.'
 영화의 제목은 '공중화空中華'였다.

- 같은 책, 113쪽


 아시아의 아이콘인 배우 리는 장국영이다. 장국영은 자신의 감독 데뷔작을 준비하던 도중 돌연 24층에서 투신하여 '공중화'가 되었다. 그의 죽음은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 투성이었다. 그의 사망으로 동성애인이었던 당학덕은 460억원을 상속 받고 행방이 묘연해져 사람들은 그가 살인자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삼합회에 의해 둔기로 살해되었다고 믿기도 했다. 그가 투신자살했다는 유일한 증거는 그의 시신이 호텔 앞에서 발견되었다는 것과, 그가 우울증을 앓았고 평소 죽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투신이라고 말했다는 조카의 증언 뿐이었다. 정작 그가 영화와 삶 속에서 보여준 고독과 허무가 그가 스스로 '공중화'가 되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어떤 곳을...... 지옥이라고 하나요?"
 묻고 나자 나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묻기 위해 란저우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그림에서 몸을 돌려 나를 정면으로 쳐다봤다. 속눈썹 안쪽이 깊었다. 
 "사방이 막혀서 빠져나갈 기약이 없는 곳. 문헌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같은 책, 111쪽


 이 능란한 단편은 2003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일지처럼 나열하며 삶은 지옥이냐고 묻는다. [원각경]에서 허공에 핀 꽃이라는 구절은 이 세계가 꿈이고 환幻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2013년을 강타한 더스트 바이러스는 실제로 눈병을 일으키고 허공에서 꽃이 보이는 증상을 일으킨다. 비유였던 지옥이 현실이라면 삶은 '무서운 꿈'인 동시에 현실이 된다. 삶이 '무서운 꿈'일 때 죽음은 과연 '너무 아름다운 꿈'인가.


나는 쥔이 이 실험에 실패하길 바랐다. 어떤 인과관계도 밝히지 못하기를, 고통의 개연성을 찾기 위해 고통 받지 말고 무난하게 학위 받고 무난하게 자리잡기를 바랐다. 
 나는 몸을 돌려 뒤로 걸으며 쥔에게 손짓을 했다. 등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투 다가오던 쥔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고는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상공으로 무엇인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열기구야."
 쥔이 낮게 탄성을 뱉었다. 열기구는 점점 높이 떠오르며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해왔다. 바람을 탄 열기구는 비닐봉지처럼 가뿐하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쥔과 나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 같은 책,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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