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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훈 Jul 29. 2018

멜로가 담기엔 큰 평행우주이론, 하지만...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ぼくは明日,昨日のきみとデ-トする)'는 나나츠키 타카후미 원작이다. 이 책은 2015년 12월, 일본에서 6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후쿠시 소우타, 고마츠 나나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계획도 비슷한 시기 발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명의 영화는 2016년 12월 일본에서 개봉됐고 국내는 지난해 10월에 개봉됐다.


이 영화는 극장보다는 여타의 다른 매체를 통한 수요가 많다고 한다.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을 통해 입 소문으로 괜찮다는 평이 퍼지면서 뒤늦게 뜨거워진다는 소문이다. 이 영화의 평점을 살펴보면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전문가 평가에서는 6.0으로 깔끔하게 별 3개다. 반면 일반인 평가에서는 네티즌이 8.58, 관람객이 8.4를 줘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다. 판타지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청춘 멜로물이고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인기 배우가 출연했다는 점, 또 원작의 인기에 기댄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과 사전 정보만 접한 경우가 조금 더 좋은 평가를 한 이유다. 개봉 전 점수가 9였다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개별 리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영화의 스토리와 멜로에 관심을 보임을 알 수 있다. 좋게 평가한 대부분이 슬퍼서 좋다는 내용이다. 반면 나쁘게 평가한 소수는 전혀 슬프지 않고 너무 뻔한 스토리라는 것이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My tomorrow, your yesterday, 2016)

이들 리뷰를 살펴보면 이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에미(극중 고마츠 나나 분)의 입장을 생각해 봤다. 

잠깐 여기서부터 스포일이다. 


영화를 보면 울었다는 사람들은 주인공 두 사람이 서로를 공유한 단 30일의 기억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을 곱씹었을 것이다. 누구나 평생을 살면서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지 앉은 기억의 책장을 열 때의 그 포근한 '슬픔'말이다. 반면 다소 논리적으로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는 못내 불편한 진실 하나가 있다.



平行宇宙理論


에미는 어린 시절 다른 우주에서 우리가 사는 우주로 건너왔다. 그녀의 우주는 이 우주와는 다르게 시간이 반대로 흐른다. 보이는 현상만을 놓고 보면 그녀가 5살 때 타카토시는 35살이다. 반대로 타카토시가 5살 때 에미는 35살이다. 그 둘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두 우주의 시간 주기가 일치하는 달이 차고 기우는 30일이다. 그것도 5년 주기이니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80년을 산다 해도 480일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한 것이 에미는 5살 이전에는 다른 우주에 살았고 다카토시는 에미가 40살 때 태어났다. 실제로 그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간은 둘의 나이가 같은 해 30일뿐이다. 영화는 그 30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미는 늘 전철을 타고 어제로 떠난다.

이 설정을 다시 살펴보자.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 불편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청춘 멜로물로는 충분하지만 판타지로서는 매우 불친절하다. 또 배경 구성이 아쉬운 것은 너무나 큰 세계관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평행우주 이론, 영어로 Multiverse 또는 Parallel world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 가장 최근의 우주 이론이다. 그 큰 의미를 몇 줄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극중 에미의 설명을 빌리자면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우주가 나란히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두 우주가 간혹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추측이다. '타임머신'은 이런 이론적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되는 좋은 사례다. 또 다시 에미의 설명의 따르면 두 우주는 나선구조(나선 우주 이론을 차용한 냄새가 난다.)로 5년에 한번 30일 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그때 둘의 운명이 만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을 극적으로 갈라놓기에 너무나 어울리는 신의 섭리다. 하지만 이미 이 우주로 이사(?) 온 에미가 이전 우주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부딪히는 설정이 하나 둘이 아니다. 


왼쪽부터 동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시월애

차라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처럼, 주인공의 의식과 기억은 그대로 인체 신체시간만 반대로 흐른다면 오히려 간단하다. 심지어 극중에서 주인공 벤자민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설명하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해도 빠르다. 아니면 동감(2000)과 시월애(A Love Story, 2000)처럼 주인공들은 각자의 시간을 따르고 편지와 전파만이 서로의 시공간(時空間)을 넘나드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의 감성은 살아있지만 그것이 그들 주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The Time Traveler's Wife, 2009)는 어떤가? 이 영화는 오히려 마구 휘저어 놓는다. 기억이 아련해질 무렵 찾아오는 죽은 남편의 존재는 슬프기보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반면 이 영화 '나는 내일...'의 상황은 복잡하다. 그러나 감독은 이 상황에서도 두 주인공 사이의 문제에만 집중한다.


타이틀이 올라가기 전 40분, 그들의 연애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에미의 입장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에미는 타카토시가 겪을 상황을 배려해 자신의 겪을 새로운 상황, 예를 들면 그는 알고 그녀는 모르는 상황에 대처한다. 타카토시 입장에서는 배려심 많은 여자로 보인다. 이를 위해 그녀는 30일간의 일정을 기록한 수첩을 사용하는데 이건 마치 신이 정한 운명을 답습해야 하는 인간의 굴레로 보인다. 극중에서 남자가 '정해진 대로 해야 하냐'라고 화내는 이유다. 이미 영화의 내용을 아는 이라면 여기서 잠깐 실소(失笑)를 금치 못한다. 하지만 답은 뻔하다 그렇게 해야 한다. 에미의 시간은 여전히 우리와 반대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 우주의 연결이 끊어지거나 또는 두 사람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른다. 에미 자신의 존재 자체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 여기서 인간 지성의 합리성을 들이대거나 그것에 의존한다면 이 세계관 자체가 붕괴된다. 

에미가 만일 타카하타와 만나는 그 순간 자체에 몰입해 즉흥적으로 행동했다면 그것은 에미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줄 것이다. 수많은 타임머신 영화에서 보지 않았던가? 그것은 심지어 그녀 자신의 나이 35살에 5살의 그 남자를 구할 것이라는 운명(?)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축구와 만화 사이에서 고민하던 10살의 타카하타도 없을 것이고 35살에 유원지에서 5살 여자아이를 구하는 멋진 아저씨도 없을 것이다. 그럼 또 에미 자신은 어찌 되겠는가?

나는 감독이 영화의 배경이 된 평행우주 이론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닌가? 라는 다소 시니컬한 질문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사실 전문가를 무시한 생각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왜 이렇게 표현했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질문이다. 눈에 띄는 서술은 없지만 너무나 큰 세계관을 단순히 배경으로만 쓴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어찌할 바를 몰라 따라야 했다고 하면 너무 쉬운 결론을 내리는 것일까? 에미의 행동이 이에 대한 답이다. 그녀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감지했고 그것에 따랐다. 그 끝이 무엇이든 자기 삶에 불쑥 찾아온 어떤 단서를 믿고 따르는 것이 바른 길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게 슬픔이라도 말이다. 


平行價値觀理論


에미의 가족이 다른 우주로 건너왔을 때 그들의 시간이 이 우주의 것에 맞춰졌다면 이들의 슬픈 사랑이 달라졌을까?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믿고 싶은가?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같은 우주 안에 살아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산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평행 가치관 속에 산다. 그래서 세상에는 슬픈 사랑의 사연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에미처럼 산다면 그것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이고 삶으로 남지 않을까? 얼마전 끝난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에서' 주인공 지호는 이렇게 말한다 '겪어내는 거예요. 왜냐면 다들 인생은 처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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