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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Feb 04. 2022

켜켜이 쌓인 먼지를 마주하는 일

3년 만에 부모님을 찾아뵌 이야기

집을 나오고 나서 3년이 넘도록 부모님께 연락드린 적 없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준 독립이라는 선택지를 받아들인 날부터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나오던 날까지, 그 사이에 응어리진 마음은 물랑해질 생각이 없었다. 


나는 살갑게 사람들과 연락을 하는 성격이 아니다. 가족과도 마찬가지여서 명확한 용건도 없이 연락을 주고받는 건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하다는 이유로 자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홀하다. 


자식이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부모는 연락하기가 더 힘들다고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해도 결국은 부모님이 먼저 연락해 주기를 자꾸 바랐다. 이런 연유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족과의 단절을 자처했다.


한때 호감을 갖고 만나던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찾아봬.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 사실은 그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독립한 후 주변 사람들에게 주야장천 들었던 말이다. 친오빠와 남동생, 알고 지내는 언니, 선배, 오래된 친구, 심지어 당시 다니던 대학원의 지도 교수님까지. 


다들 나를 걱정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긴 해도 용기가 잘 나지 않았다. 부모님과의 마지막 대면은 너무 무서웠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 대수롭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정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숨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랬는데, 그 친구의 ‘후회한다’는 말에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어쩌면 그저 때가 되어서, 그런 마음이 든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말이 계기가 되어서 나는 용기를 얻었다. 마침 두 번째 설날이 다가올 즈음이라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너머의 엄마 목소리는 나를 내치는 매정함이나 뜻밖이라는 놀라움 따위는 없었다. 그저 내가 전화를 걸었구나,라는 정도의 평범한 다정함만 느껴졌다. 함께 지낼 때도 엄마와 나는 가끔 친했고 가끔 멀었다. 딱 그 정도의 멀고도 가까운 마음이 밴 목소리였다. 그제야 3년 전의 응어리가 물렁해지는 것 같았다.


부모님과 나는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은 창고, 그래서 먼지만 켜켜이 쌓여 있는 관계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시작할지 무던히도 망설여졌다. 가족이라도 대화하지 않으면 멀어지는 건 매한가지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과 어색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나는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둔갑했다. 그 바람에 설날 아침, 차례상에 올릴 탕국을 옮기다가 바닥에 쏟고야 말았다. 


오랜만에 본 아빠에겐 없던 게 생겼는데,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분명 이마 쪽에 머리숱이 거의 없었는데…. 엄마더러 아빠 얼굴이 젊어 보인다고 했더니 엄마가 아빠에게도 말해준다. 조상님을 모시는 일을 끝내고 가족끼리 아침밥을 먹었다. 아빠는 나더러 한 5년은 지나서 집에 올 줄 알았더니,라며 농을 던졌다. 


그 후로 매년 두 번의 명절이 되면 부모님의 집으로 향한다. 명절이라고 해서 친척들이 오진 않는다. 그저 우리 다섯 식구만 모여 시끌벅적하지 않는 명절을 보낸다. 함께 아침을 먹고 과일도 먹으며 뉴스나 드라마를 본다.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살아가는 이야기를 짧게 부모님에게 해드린다. 공부도 하고 가르치는 일도 하며 살고 있다는 나의 말을 가만히 들어준다. 이제는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다.


명절은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서 동시에 가족들이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건네는 풍경으로 자주 묘사된다. TV에는 명절에 부모가 자식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질문 리스트를 떠들어댄다. 사람 사는 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르겠지만 멀리서 보면 꽤 비슷하다. 우리 부모님도 어쩔 수 없이 결혼이니 취업이니 하는 얘기를 내게 꺼낸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스트레스는 적다. 부모님은 부모님의 질문을 하는 거고, 나는 자식으로서의 대답을 할 뿐이다. 이제 그 질문들은 부모님이 내게 주는 관심 표현이고 나아가 유머와 위트로 승화된다. 몇 번의 명절이 반복되면서 내 대답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결혼은 할 수도 있고 안(못) 할 수도 있어요.”라고 했다가, 다음엔 “한 마흔 살쯤에 할 생각이에요.”라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니가 연예인이냐며 핀잔을 줬고, 아빠는 돈 많으면 혼자 살아도 좋지,라고 했다.


별것 아닌 말들이 오가는 그 시간이 소중해졌다. 나를 포함해 부모님의 모든 자식이 독립했고 부모님도 오롯이 당신들의 삶을 꾸려간다. 그걸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다. 나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강요가 없어진 부모님을 보며 역시나, 가족은 자주 보지 않아야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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